[시론] 장준하 죽음과 긴급조치
[시론] 장준하 죽음과 긴급조치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3.03.2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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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월8일 차가운 겨울바람이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하는 그날 아침 박정희정권은 긴급조치 1호를 발동했다. 유신헌법을 선포한 후 헌정을 중단시켰던 박정권은 듣도 보도 못했던 1구2인 선거제를 만들어 여야동반 당선과 함께 국회의석 3분의1은 유정회의원으로 지명하는 역사상 초유의 폭거로 독재정권을 강화시켰다.

장준하는 당시 유신에 적극 반대한 양일동이 이끄는 민주통일당의 최고위원으로 있으면서 헌법에 규정된 개헌운동을 전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유신헌법을 개정하려면 유권자 100만인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개헌청원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이 틈새를 파고들기로 작정한 것이다. ‘73년12월초 장준하에 의해서 개헌서명운동을 전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에 호응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졌고 특히 교회는 열광했다.

1주일도 지나지 않아 30만 명의 서명이 완료되었다. 당황한 유신정권은 개헌운동을 하지 못하게 경고를 발했으나 서명운동은 마른 잎에 붙은 불처럼 번져나갔다. 교회는 조직적으로 서명을 받았으며 대학생들과 사회단체들은 은밀하게 운동을 확대했다. 100만인 서명이 금방 현실화할 찰나에 놓였다. 만일 이 청원운동이 성공한다면 헌법에 정해진 절차이기 때문에 아무리 유신독재정권이라고 할지라도 국민투표에 붙여야할 판이다.

이에 박정권이 비상수단을 발동한 게 이른바 긴급조치다. 긴급조치는 ‘74년도에 시작하여 ’79년 10.26사건이 터지며 종말을 고한다. 장준하는 긴급조치1호가 발동되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하여 개헌서명운동을 전개해 나갔고 즉각 체포되어 군법회의에 넘어간다. 긴급조치가 발동되자 정국은 싸늘하게 식었다. 모두 공포에 휩싸여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대학에서는 저항세력이 꿈틀거렸다. 이를 사전에 진압하기 위해서 꾸며낸 조직이 소위 민청학련이다. 민청학련은 전국 각 대학에서 운동권으로 이름 붙은 지도자급 대학생들을 망라하여 한 조직으로 엮어냈고 긴급조치 4호라는 이름으로 철퇴를 가했다.

이들에게는 가혹하게도 ‘사형’까지 가능한 조항을 삽입하여 엄혹한 분위기를 양성했다. 장준하는 15년의 징역형을 받았으나 모진 고문과 압박으로 젊었을 때 앓았다는 심장병이 도졌다. 20년 이상 잠잠하던 심장병이 도진 것을 보면 문초를 감행한 중앙정보부에서 어떤 고문을 가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어서 ‘75년도에는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된다. 1호와 2호에 비해서 9호는 독재체제 수호를 위한 완벽판이라고 볼 수 있다. 9호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세밀한 금지, 규제, 처벌조항을 삽입하여 어떤 식으로라도 저항하려는 조그마한 움직임이라도 가차 없이 잡아 넣을 수 있는 조항을 가득 실었다.

긴급조치 9호는 다른 긴급조치를 더 이상 필요 없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장장 5년의 세월을 유유자적하며 유신정권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처럼 보였다. 1호부터 9호가 해제될 때까지 2159일이 걸렸다. 그리고 세상은 변했다. 신군부에 짓밟혔던 민주화운동 세력은 ’87년 떨치고 일어났다. 직선제를 외치는 전국적인 운동이 야당과 학생 그리고 일반시민의 궐기를 야기했다.

최루탄으로 진압하는 경찰에 맞서 이 운동은 더 이상 진압이 어려운 상태까지 진전했다. 노태우를 후계로 삼았던 전두환은 마침내 백기투항하고 국민의 힘 앞에 무릎을 꿇었다. 6.29선언이다. 5.16으로 시작한 군사쿠데타 세력이 무너진 것이다.

직선제로 쟁취한 민주화 운동세력은 군사정권을 중단시킬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김영삼과 김대중은 서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분열하는 비열한 모습을 노정했다.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의 뜻에 반한 염치없는 행위였으며 결국 노태우정권으로 군사정권은 연장되었다. 그리고 역사는 물처럼 흐르며 이 나라의 민주화는 이룩되었다.

김영삼, 김대중은 앞뒤를 다투며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들이 대권을 쥐고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실현시킨 것도 많지만 자식들의 부정부패를 막지 못하고 비리에 휩싸여 구속에 이른 것은 천추의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노무현과 이명박을 거쳐 이제는 박근혜의 시대다. 때마침 긴급조치 1호, 2호, 9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위헌결정이 내렸다.

긴급조치에 의한 형사처벌을 받은 수많은 전과자들이 무죄가 되는 순간이다. 정부에서는 이들 피해자들에게 그나마 보상과 위안을 주려면 한 사람씩 일일이 재심을 통한 구제의 길을 기다리지 말고 특별법을 제정하여 일괄 구제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75년 8월17일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의 유골에 대한 정밀감식 결과가 3월26일 백범기념관에서 발표되었다. 서울대 이정빈교수를 비롯한 법의학자들의 소견은 아주 상세한 감식결과에 신뢰성을 더한다. 가격 후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정밀감식은 또 한번 장준하에 대한 국민의 감정을 아련하게 한다.

긴급조치의 위헌결정처럼 장준하 죽음의 진실은 이제부터 더더욱 접근해야 할 우리들의 사명으로 다가선다. 너무 오래 되었다는 얘기로는 변명이 안 된다. 양심선언과 관계부처의 문서공개, 관계자의 증언 등이 절실히 필요하다. 결국 역사는 옳고 바르게 정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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