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 ⑳] 북한 김영남과의 교제
[삼강만평(三江漫評) ⑳] 북한 김영남과의 교제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3.04.1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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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북경대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우리 반은 역사학과 학생들과 같이 중국통사를 배웠으며 선사(先史) 강의와 결합하여 1978년 10월의 어느 날 북경 서남에 위치한 주구점(周口店) 북경원인 산정동인(山頂洞人)의 유적지를 견학한 적이 있다.

이 북경원인은 약 50만년 전에 생활한 중국인의 조상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미국 유전자학에 따른 최근의 새로운 설에 의하면 인류는 약 10~14만년 전에 발원지 아프리카로부터 세계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산정동인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아프리카에서 온 인류에게 몰살당한 것인가? 많은 의문을 자아낸다. 또한 주구점에서 발굴된 산정동인의 두개골을 2차대전 때 잃어버려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어렵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쉬는데 반 학생들이 필자에게 말하였다.: “저기 당신 나라사람 한분 있는데 만나보지 않는가?” “그걸 어떻게 아나?” “김일성 빼찌를 달았으니 분명 당신 나라사람이다”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북경대 중문학과에 입학한 유일한 조선족이므로 필자를 북한사람과 착각하는 자가 많았다.

필자는 안내하는 데로 따라갔더니 과연 김일성 빠찌를 단 사람 한분이 나타났다. 키도 훤칠하게 크고 인물도 괜찮은 50대 정도의 남자였다. 필자는 조선족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며 그에게 인사하였고 그도 친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보니 조선대사관의 1등 서기관 김영남이며 필자와 같이 중국통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서로 말을 주고받다가 필자가 “지금 남조선이 북조선보다 잘 사는데 어찌된 영문인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이내 쌀쌀한 표정을 지으며 “세상에 ‘남조선’, ‘북조선’이란 나라 이름이 없는데 무슨 말을 하나?”라며 반문하였다.

하여 필자는 이내 “남조선이 조선보다…”라고 말을 바꾸었다. 그는 여전히 언짢아하며 “말을 하려면 바로 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반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반부보다… 이렇게 말해야 맞다”라고 시정해주고 이내 “그건 도대체 어떤 돼먹지 못한 선전기관에서 내놓은 관점인가?”라고 반문하였다.

필자는 지금 중국인들은 세계 각국의 신문, 잡지를 볼 수 있고, 방송도 들을 수 있으며 우리 조선족들은 남반부의 방송을 많이 들으므로 이런 것쯤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그 원인을 말하였다: “첫째, 남반부는 미국의 원조를 많이 받는다. 둘째, 그들은 자본주의이므로 경공업위주의 돈벌이를 맘대로 하지만 우리는 주체사상이 기본이므로 돈벌이가 안 되는 중공업위주이다. 셋째, 남반부에 미군이 있으므로 우리의 군비는 형제국가 중국에도 공개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다.”

“중국이 북반부를 많이 도와줄 텐데….” 필자의 말이다. “중국이 도와주기는 하지만 미국이 남반부를 도와주는데 비기면 새발에 피정도 밖에 안 된다. 중국이 얼마나 인색한지 아는가?”라고 답하였다. 1978년 그때는 한국이 북한보다 조금 앞선 정도이고 또한 중국 개혁개방 이전이므로 김영남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남의 시장경제의 우월성과 북의 계획경제의 병폐가 초래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중국통사는 매주 두 번 강의하는데 필자와 김영남은 평균 일주에 한번정도 만나곤 하였다. 하루는 강의 내용이 ‘당나라 시대 중국 변강의 소수민족 정권’이었다. 그때 북경대 중국통사교과서에 이미 ‘고구려는 중국역사상 지방소수민족정권’이라는 견해로 돼 있었다.

장전희(張傳熙) 교수는 앞에 김영남이 앉아있어서인지 고구려대목을 강의하지 않고 뛰어넘었다. 수업이 끝난 후 김영남에게 “장교수의 강의수준이 어떤가?”가고 물으니 그는 “학생이면 교수의 강의를 귀담아 들어야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면 못 쓴다”라며 핀잔을 주었다.

또 한 번은 북경동방가무단의 연출을 관람하였는데 김영남과 동석하였다. 연출이 끝난 후 “북반부에도 동방가무단처럼 전문 외국프로를 연출하는 가무단이 있는가?”라고 물으니 “필요시에 한다”고 답하였다. “아니, 이런 전문 가무단이 있는가, 없는가?”라고 반복 물으니 “필요시에 한다는데 더 묻지 말라”라며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몇 번 접촉하였는데 점점 더 쌀쌀하여졌다. 몇 년 후에야 그 원인을 알았다. 필자가 북한유학생과 쟁론할 때 625는 남침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며 이에 관해서는 다음 문장에 거론하려고 한다.

필자와 김영남은 1978년 9월부터 1979년 7월까지 1년간 중국통사과목의 동창인 셈이다. 김영남은 1928년에 태어났다. 김일성종합대학과 모스크바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줄곧 승승장구로 출세하였다. 1970년 노동당중앙위원, 1978년 정치국위원, 1983년 조선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 1998년부터 지금까지 조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며 2010년에 조선노동당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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