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불경기가 없는 식당
[Essay Garden] 불경기가 없는 식당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3.04.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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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채소뷔페 식당이 있다. 지난해인가 새로운 스타일로 고급 채소 몇 가지와 닭고기 조각을 조금 더 차려놓고 삼 달러 가까운 추가 요금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은 외면했기에 식당 관리팀은 원래의 소박한 채소 샐러드 바로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외식하고 쇼핑을 나오지만, 지갑을 잘 열지 않는 요즈음이다. 당연하다. 전처럼 직업도 많지 않고 수입도 없는데 그럴 수밖에. 미국사람처럼 돈 벌어 잘 쓰는 나라도 없었는데, 암울한 불경기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값도 좋고 건강에 좋은 신 나는 식당이 이웃에 있어 편리하다. 부엌일이 피곤하고 쌀밥이 실증이 날 때 수프랜테이션(Souplantation) 으로 간다. 저녁 시간 절정인 오후 6시경이면 식당 문 앞에는 사람들이 줄줄이 서 있다. 남편도 집에서는 상추쌈 외에는 채소를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채소뷔페식당에 가면 접시가 넘치도록 담는다.

다음 날 아침에는 화장실에 다녀와 뱃속이 시원하다며 콧노래까지 부른다. 한국에 살 때는 손님이 오면 으레 갈비요리를 하거나 불고기 집으로 대접하는 게 최고였다. 아니면 생선회를 먹는 일본 식당이었다. 직장이 끝나면 이 핑계 저 핑계 회식으로 자글자글 고기를 구워먹고 스트레스도 팍팍 받아서인지, 하마터면 남편도 미국에 이민 온 지 얼마 안 되어 대장암으로 세상과 하직할 뻔했다.

1978년 맨 처음 샌디에고의 미션고지 길에 문을 열었다는 채소뷔페식당(Souplantation)의 역사도 흥미롭다. 엘카혼 시에서 고기와 맥주를 파는 식당에서 일하던 데니스라는 한 바텐더가 두 친구에게 그의 아이디어를 말하여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 친구는 변호사이고 다른 한 친구는 보석금을 파는 직원이었다. 뜻이 같은 세 친구가 채소를 먹는 그린식당으로 1983년에 연쇄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다. 샌디에고 카운티에도 여러 개가 있지만, 전 미국 15주에 112개의 식당이 있다.

우리 동네의 식당도 250명이 넘게 들어가는 넓은 장소이다. 스무 가지가 넘는 싱싱한 채소와 스파게티 같은 국수요리가 있다. 콩 종류의 수프와 조개크림수프 등 다섯 가지가 넘는 따끈한 국물은 내가 즐기는 음식이다. 과일과 아이크림 등 후식이 푸짐하다. 머핀과 마늘 빵이랑, 구운 감자와 피자가 있지만, 우리는 배가 불러 아예 손도 못 대고 늘 식당을 떠난다.

식당 주변도 청결해서 좋다. 한번은 내가 먹는 국에 이물질이 들어 있어 신고했더니 매니저는 나의 식사 값을 정중한 사과와 함께 돌려주었다. 수십 명이 모일 수 있는 특별한 방도 있다. 한 사람당 세금을 포함한 식사비가 십일 달러 정도이지만 60세 이상의 고객은 항상 십 퍼센트 할인해 준다. 지난해 봄부터는 새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에 오는 60세 이상 어른에게는 이십 퍼센트를 깎아주고 가지가지 음료수도 무료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손님이 붐비지 않는 조용한 시간대에도 사업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박리다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이곳 식당은 불경기가 없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즐겁게 먹으면서 행복을 만드는 곳이다. 손님을 보아도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한 뚱보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몸매를 관리하려는 지혜로운 미국인들이 사는 우리 동네인 것 같다.

최근에도 한국식당이 문을 닫았다. 작은 이익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고객의 입장에 서서 장사해야 하는데 이익만 따지기 때문이다. 무제한으로 고기를 주는 불고기 한식뷔페 식당은 그런대로 운영된다고 한다.

종종 광우병 걸린 소가 축사 장에서 주저앉는 소식에도 육식을 즐기는 식도락가들은 상관없는 모양이다. 광우병은 30년쯤 지나서 증세가 나타난다니 불감증일 수밖에 없다. 우리 몸을 유지하고 살기 위하여 음식을 보약으로 먹되,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는 일은 중요할 것 같다.

한국에 가보니 다양한 값으로 맛있는 식당문화가 대단했다. 잘 먹고 사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죽고 있다. 최근 한 지인의 삼십 대 아들도 암으로 투병하고 있다. 채식으로 식단을 바꾸고 애를 쓰지만, 당사자와 가족은 고통의 나날이다.

 
가끔 나는 한국인들의 건강을 생각한다. 과도한 지식교육 위주의 학교와 과로하는 직장으로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한국 사회가 걱정된다. 대한민국을 길이길이 지켜야 할 후손들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오래 살아보니 가난하고 무지한 동네일수록 담배, 술과 고기를 사람들이 즐기는 것 같다.

이곳의 채소뷔페식당에서도 종종 음식을 접시에 가득히 남겨 놓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흙으로 구운 과자를 먹고, 굶주림으로 앙상한 아이들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일까. 또 손을 씻으며 물을 줄줄 흘려보내거나 화장실에서 마구 종이를 사용하는 아이들도 있다. 내 집처럼 아낄 것은 아껴야지, 우리가 사는 지구에 무서운 기후 이변이 계속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불경기가 없는 곳은 손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지혜로운 주인이 일하고 있었다.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을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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