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뉴욕에서의 첫 날
[Essay Garden] 뉴욕에서의 첫 날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3.05.2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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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추수감사절과 새해 아침을 맞으며 텔레비전 뉴스로 뉴욕의 맨해튼 거리를 만나곤 했는데, 내 일생에 처음 가보는 뉴욕 방문을 기다리는 일은 꿈만 같았다. 게다가 어릴 때 본 조카딸의 결혼식에 참여할 목적이지만, 이민 올 때 만나고 그동안 못 본 이종 동생 숙자의 얼굴과 사는 모습도 늘 궁금했다. 또한 그리웠던 대학 후배와 여고 친구들도.

얼마 전 항공관제사들이 감원되었고 까다로운 검색대을 통과해야 하니 국내선은 적어도 한 시간 반 전에 도착하는 게 좋다. 이른 아침 5시에 일어나 후다닥 세수하고 한국에서 날아온 딸과 비행기를 탔다. 검색대의 긴 줄에서 비행기가 출발하기까지 긴장의 시간이다. 200여 명의 승객이 앉아 있는 뒤쪽에 우린 앉았다.

옆에 앉은 여자 승객은 계속 업무 서류를 무릎에 펼쳐놓고 무엇인가 읽고 쓰고 있었다. 우연히 그녀와 내가 눈길을 맞추게 되어 인사를 나누니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부행장님이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금호 삼성 엘지 같은 회사에 돈을 대출해주는 일을 한다며 자기 업무를 소개했다. 미국 백인 은행간부의 입에서 한국의 굴지 회사 이름을 줄줄이 듣는 순간 우리는 얼굴이 상기되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동쪽의 작은 반도의 나라가 수천 년간을 외국에 짓밟히며 살다가 이제 우리의 재능과 기량을 활짝 펴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은행 업무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었고 샌디에고에 와 산지는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자란 뉴요커이다. 다음날 업무를 마치고 다시 샌디에고로 날아온단다. 헝가리와 폴란드의 이민 3세 부모님은 노동하면서 자식들을 대학 보내며 공부시켜 주셨다며 감사했다.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든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다. 그녀는 우리 모녀를 좋아하며 입에 침이 튀길 정도로 수다를 떨었다. 수 년 동안 은행에서 근무했던 딸도 반가워 열심히 사회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물가가 오르고 기름 값이 뛰어서인지 비행기의 서비스는 야박해졌다. 물이나 주스 정도만 무료이고 각자 밥을 사 먹어야 한다. 나이가 지긋한 비행기 여승무원은 별로 친절한 인상이 아니었다. 나는 바나나와 방울토마토를 집에서 가지고 와서 먹었다. 그녀도 간식을 가방에서 꺼내 먹는다. 한국처럼 음식을 사람에게 아무거나 권고하지 않는 게 미국의 예절이고 습관이다.

5시간 걸린다는 직행 비행기가 예정보다 반 시간 일찍 도착하였다. JF 케네디 공항을 빠져나와 화장실에 들른 후 가방을 찾는 길의 사인 판을 보며 긴 복도를 빠져나왔다. 대학교 후배의 전화가 걸려왔다. 미자 언니, 어디 계세요. 짐 가방이 뱅글뱅글 돌고 있는 저쪽에 작은 동양 아줌마의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이게 얼마 만이요. 나의 경북대학 졸업식 날, 교수님 딸 상현이랑 사진을 찍었고, 우린 중국집에서 점심을 한 후 헤어졌다.

그리고 두 번째의 나의 수필집에 후배 경숙이를 찾고 있다는 글을 나는 올렸는데, 뉴욕 퀸즈의 도서실에서 나의 수필집을 빌려본 후배가 나에게 소식을 보내온 것이다. 40년이 지나고서야. 지난 날 대학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던 경숙을 만나고, 내 글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기에 늘 보고 싶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고.

롱아일랜드 시에 사는 이종 동생은 복잡한 뉴욕비행장에는 와 본 적이 없어 나의 마중을 경숙에게 넘겼기에 동생은 저녁 식사를 집에서 마련해 놓고 우리 일행을 기다렸다. 모두 맛있게 저녁을 먹고, 비행장에서 나의 사촌 집으로 오는 길이 처음이라 운전에 자신이 없는 걸 보고 걱정되어 우린 경숙이가 퀸즈까지 무사히 돌아가도록 나는 동생의 차를 타고 뒤따라갔다.

미국에 오래 살아도 집 근처와 직장만 오고 갔다는 후배의 말이 이젠 이해가 된다. 뉴욕처럼 큰 도시가 복잡해서일까. 고속도로 운전을 겁내어 차를 타고 나가지 못하는 나의 여고동창도 겨우 한국 식당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비교적 운전을 좋아하는 편인 나는 50대까지만 해도 홀로 로스엔젤리스를 훨훨 날아다니곤 했다. 경숙이를 보내고 H 마트에 들렸는데, 연하고 싱싱한 열무가 있어 김치를 담그고 시래깃국을 한 냄비 끓였다.

동생이 사는 콘도는 60년쯤 되었다는데 굉장히 깨끗했다. 창문 너머로 밤하늘에 멀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보인다며 딸이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흥분되고 피곤한 첫날 밤에 잠이 들었는데, 괴상한 소리에 문득 잠이 깼다. 영화에서 보았던 귀신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 왔다.

딸이 바람 소리란다. 모르고 열어 둔 창문을 닫으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근처의 허드슨 강 위로 흐르는 강한 바람 소리였다. 휘, 휘. 소프라노처럼 가늘고 긴 바람 소리를 9층에서 들으니 누군가의 서러운 흐느낌처럼 내 귀에는 들려왔다. 딸이 무섭다고 하여 우린 애들처럼 장난을 치며 다시 꿈나라로 갔다.

▲ 뉴욕 맨하튼의 센트럴파크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www.sdradiokorea.com)에서 ‘최미자의 문학정원’을 매주 금요일 연출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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