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혼자만 꾸지 말고 다 같이 꾼다면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마틴 루터 킹이 말했던가요? 교민사회가 잘 되려면 이기심과 욕심에서 벗어나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겠고, 이상을 향해 마음과 뜻을 모두 함께 세우고 상통하는 게 중요해요. 그것이 한국민의 이념인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길이겠지요.”
신부가 되려고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온 뒤 성직자로 또 봉사자로 평생을 헌신한 정차랑 취리히 한인회장(66).
왜정시대인 1944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6.25전쟁을 경험했고, 광주신학대 재학중 군복무를 마치고 서강대에 편입했다가 신부가 되려고 스위스로 유학와서 지금의 스위스인 아내를 만났다. 슬하에 2남 2녀을 뒀고 맏아들이 이곳 ETH에서 박사하고 전임교수로 종사하고 있는 게 자랑스럽단다.
신학공부를 마치고 10년간 현지 성당에서 성직자로 종사했고, 정신장애자를 위해 15년간 복지사업도 펼쳤다. 대학기숙사 사감으로도, 여행사에도 일하는 등 안 해본 일이 없는 그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는 1,100명의 취리히 교민사회를 이끌며 봉사하고 있다.
올해도 연례행사인 야유회와 한글학교 소풍을 갔고, 행사기간중 마침 월드컵 경기가 열려 많은 교민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며 게임과 놀이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또 교민들을 위해 한국예술인단을 초청, 한달 동안 붓그림과 한국정서를 담은 서양화배우기, 진도씻김굿과 창 등 위로행사, 워크숍 등 많은 행사도 열었다.
특히 현지 공관과의 유대와 협력도 잘돼 광복절행사에는 모든 스위스 교민들이 모여 기념식을 갖고 대사관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Mission의 날 행사도 한국 합창단이 참가해 교민들에게 큰 위로를 줬다. 이제 11월 총회와 송년의 밤만 남아있지만 그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재외동포재단이 나름 각 국에 공평히 분할해서 지원을 하고 있겠지만 워낙 미미한 지라 한인회를 꾸려가는데 별반 도움이 안된다”며 한인회 스스로 재정자립을 해야겠지만 추진할 사업도 마땅치 않고 교민들 권익과 장래를 위한 비전도 제시할 수 없는 현실에 아쉬움이 많다고.
“왜 노후를 한가로이 즐기지 않냐구요. 제겐 봉사가 즐기는 것이지요.”
이제는 애써 짊어왔던 많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노후를 즐길 법도 한데 가족과 교민, 원주민들을 위한 박애와 희생정신, 남다른 조국애는 식을 줄 모른다.
여력이 있는 한 좀 더 아름다운 교민사회를 만드는데 힘이 되고 싶고, 장차 인격과 능력을 갖춘 연합회장이 나와 교민사회를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이끌어 주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가족이 자립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더 바랄게 없단다.
“인생의 최종 목표요? 허허 그야 천당에 가는 것이지요.”
언필칭 떼 논 당상이다.
<취리히=박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