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42] 한양도성
[아! 대한민국-42] 한양도성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3.06.01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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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현재 한양도성(한양성곽)이 복원되고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74년, 한양도성 복원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이래 지지부진하다. 박원순 시장의 부임을 계기로 2015년까지 전구간을 연결하는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운동이 전국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데, 아마도 한양도성이 모두 연결되면 한양도성은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고, 한양도성 걷기는 내국인과 관광객의 필수답사코스가 되지 않을까.

“태조 이성계가 수도 둘레의 원근을 결정짓지 못해 고민하던 어느날 밤,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바깥 쪽은 눈이 쌓이는데 안쪽은 곧 녹아 사라졌다. 태조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눈을 따라 성터를 정하도록 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성모양이다.”

조선조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그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한양도성의 유래를 소개한 내용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축조한 한양도성은 내사산(內四山, 북쪽 백악산, 서쪽 인왕산, 남쪽 남산, 동쪽 낙산) 의 정상과 능선을 따라 총 길이 18.6km 규모로 축조되었다. 원래 성안의 백성을 보호하겠다는 민본주의 정신을 반영하여 설계하였고, 동서남북에는 유학(儒學)에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네가지 덕목인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상징하는 4대문을 내고, 대문과 대문 사이에 4소문을 둬, 중앙과 전국 8로가 사통팔달한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때는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며, 성 안팍의 풍경을 감상하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이를 순성(巡城)이라 했다. 유본예(1772-1842)의 ‘한성지략’에 따르면 봄여름에 한양사람들은 짝을 지어 ‘순성’하곤 했는데, 성을 한 바퀴 도는데 대략 하루해가 걸렸다고 한다. 순성의 풍습과 전통은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도 이어졌다.

1916년 5월 14일자 「매일신보」에는 ‘순성은 목전성행(目前盛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여기서는 종로 상인들이 상점의 번영함과 운수대통을 빌기 위해 남몰래 순성한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순성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만에 마쳐야 기복(祈福)의 효험이 있다고 쓰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순성의 전통은 일제가 도로를 만들기 위해 성곽 곳곳을 헐어내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울시는 오는 2015년까지 끊긴 한양도성의 성곽 전구간을 연결, 관리하는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도로구간으로 도저히 원형 복원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형상화하는 방법으로 복원을 추진키로 했다. 즉 끊긴 성곽의 윗부분을 구름다리로 잇고, 아래로는 차가 다니는 상부형상화, 그리고 도로 바닥에는 성곽선을 따라 화강석으로 하부형상화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마침내 한양도성의 연결이 완성되면 이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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