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대통령이 한인사회의 기(氣)를 살리는 방법
[수첩] 대통령이 한인사회의 기(氣)를 살리는 방법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3.06.26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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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회장대회의 '대통령 시계'와 '단체 사진' 유감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발행인
‘상유십이척(尙有十二隻)’이란 말이 있다.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올린 장계에 쓴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는 동안, 원균이 지휘하던 조선 수군은 왜선을 맞아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이른바 치욕의 칠천량해전이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정한위략’이라는 일본의 기록은 거제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조선 수군과의 전투 결과를 이렇게 적고 있다. “일본 장수 시즈마는 160척을 격파하고, 도도는 60척, 야스하루는 16척을 격침시켰다. 목을 벤 자만도 수천에 이른다. 물에 빠져 죽은 자는 헤아리기 어렵다”

사실 이처럼 궤멸적인 상황에서 조선 조정은 이순신 장군에서 조서를 내린다. “지난날 그대를 백의종군케 해서 오늘 이런 패전의 욕됨을 입었으니 무슨 할말이 있으리오…. 그대는 부디 충의를 굳건히 해서 다시 나라를 구해주기 바라오.”

이때 이순신 장군이 올린 장계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尙有十二隻)”하는 내용이다.이순신 장군은 다시 한 척을 더 구해서, 모두 13척으로 일본 수군 133척을 대파하는 해전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명량(鳴梁)대첩이다. 진도와 해남을 잇는 지금의 진도대교 아래가 해전의 현장인 울돌목, 한자어로 명량이다.

이 전투에 참여한 조선 수군들은 승리를 확신했을까? 당시 이순신 장군을 따랐던 사호 오익창 선생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조선 수군은 이순신 장군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나는 이순신장군이 무엇을 하든 따를 것이다. 후회나 망설임은 없다. 설사 지더라도 나라에 충성했다는 명분은 남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 해전에 나서기 전에 병사들에게 죽기로 싸우자고 호소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라는 난중일기의 명언이다.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란 뜻이다.

이 해전으로 조선은 기사회생했다.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은 이후 곧 멸망했고, 조선을 도왔던 명나라도 청나라에 중원의 지배권을 넘긴 채 몰락하고 말았다. 오직 조선만이 그후 300여년을 더 지탱했다.

이순신 장군의 ‘상유십이척’을 떠올리는 것은 사기(士氣)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 때문이다.아직 열두척이나 남아있으니 희망이 있지 않느냐는 긍정적인 마인드, 그리고 필사즉생의 자세로 10배나 많은 적과 부딪쳐 싸움을 하는 조선 수군의 사기가 명량대첩을 이끌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 때문이다.

얼마전 세계한인회장대회가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렸다. 새정부 들어 처음 열린 세계한인회장대회였다. 세계 각지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380명의 한인회장들이 참석한 이 대회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참여해 격려사를 했다. 박대통령은 조국의 발전에 한인사회가 기여한 역할을 거듭 강조했고, 한인회장들의 노고를 치하했다.한인회장들을 단체로 불러내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적잖은 한인회장들이 기자에게 볼멘 소리를 털어놓았다. 대통령 시계는 왜 주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돈 가치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시계를 만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정부들이 늘 주던 대통령시계 대신 청와대 볼펜을 한인회장들한테 선물로 돌렸다. 과연 언제까지 그럴까?

세계한인회장 대회는 해외 각지에서 교민사회를 이끌고 있는 한인리더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아주는 자리다.한인회장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등을 두드리고, 기를 살려주는 행사다. 이들에게 대통령 시계 하나 나눠주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대통령이 시계를 드리니 이를 차고 남의 모범이 되도록 열심히 일해 달라고 격려하는 게 나을 일이다.

대통령과의 단체 촬영 사진도 그렇다. 대통령은 20-30명씩 불러내 함께 단체 촬영을 했다. 사람수가 많아서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한꺼번에 찍는 것보다 한명씩 찍어서 이들의 기를 살려주면 어떨까? 한인회장 자리에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액자로 걸어놓고, 대통령을 대신하는 마음으로 현지 한인사회를 살피도록 하면 어떨까? 한인회장들이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현지 주류사회 인사들에게 자랑하며, 대통령이 한인사회에 이처럼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소개하도록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렇게 하다보면 해외에서 현지 한인사회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세계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한 현직 한인회장들에게 대통령시계도 주고, 대통령과 둘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도 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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