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줄 잡아당기는
북청(北靑)의 검푸른 바람 떼가
허연 입김 하루 종일 물 뿜듯 불어놓아
문고리도 쩍쩍 어는
숯가마 속 같은 밤이다
제 몸도 못 녹이는 카바이트 야윈 불은
겨울의 한복판 향해 헛총만 쏘아대고
왕겨 속에서 얼굴 내민 가게 앞 꿀 사과들
감기 기운에 빨갛게 코가 달아올랐다
손자 얼굴이 사과 같고 사과가 손자 같아
주인 몰래 이쁜 놈 하나 금덩이처럼 감추고
겨울 풍속(風速) 보다 더 빠르게
달아나는 비틀걸음
빙판처럼 위태로운 할머니의 잰걸음을
종종종 뒤따라가 보던 옥상위의 조각달이
알았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빙그레 웃고 돌아 선다.
* 북청(北靑): 함남 북동부 지방. 매우 추운 곳으로 물장수 북청사자놀이가 있다.
(이용대 제1시집 /처음만나 그날처럼 78쪽)
때마침 옆 과일가게에서 보이는 홍옥은 주황색 전기 불빛에 더욱 먹음직스럽게 비쳤다. 손에 쥔 돈은 없었지만 그 것 하나 손자에게 주고 싶은 마음만이 굴뚝같이 피어올랐다. 가게주인이 한 눈 파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사과 하나를 집어넣고 얼른 어두운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돌아 와 이불 속에 넣어 두었던 사과를 할머니는 추위와 배고픔에 지처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 온 손자에게 내 밀었다.
손자는 할머니에게 사과 한 쪽도 드리지 않고 혼자 맛있게 다 먹어치웠다. 가난한 생활에서도 손자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었던 할머니의 마음. 창 밖 밤거리는 점점 더 혹한으로 기온이 내려갔지만 손자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얼굴은 가게를 생각하고 조금 붉어 있었다.
저작권자 © 월드코리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