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칼럼] 동심(冬心)
[詩가 있는 칼럼] 동심(冬心)
  • 이용대<시인>
  • 승인 2013.07.03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신줄 잡아당기는
북청(北靑)의 검푸른 바람 떼가
허연 입김 하루 종일 물 뿜듯 불어놓아
문고리도 쩍쩍 어는
숯가마 속 같은 밤이다

제 몸도 못 녹이는 카바이트 야윈 불은
겨울의 한복판 향해 헛총만 쏘아대고
왕겨 속에서 얼굴 내민 가게 앞 꿀 사과들
감기 기운에 빨갛게 코가 달아올랐다

손자 얼굴이 사과 같고 사과가 손자 같아
주인 몰래 이쁜 놈 하나 금덩이처럼 감추고
겨울 풍속(風速) 보다 더 빠르게
달아나는 비틀걸음

빙판처럼 위태로운 할머니의 잰걸음을
종종종 뒤따라가 보던 옥상위의 조각달이
알았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빙그레 웃고 돌아 선다.

* 북청(北靑): 함남 북동부 지방. 매우 추운 곳으로 물장수 북청사자놀이가 있다.

(이용대 제1시집 /처음만나 그날처럼 78쪽)

 
손자의 공부를 위하여 먼 산골에서 온 할머니가 있었다. 빠듯한 생활과 넉넉지 못했던 주머니 사정으로 달콤한 군고구마 하나 사 먹지 못했다. 문간 작은 셋방 하나 얻어서 생활했던 그들은 불도 제대로 들지 않아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그 때의 겨울 또한 어찌 그렇게 춥기만 했던지... 늦은 저녁 길 손자를 배웅나간 할머니는 차가운 밤바람에 얇은 옷으로 몸을 감싸며 버스정류장에 서서 기다렸다.

때마침 옆 과일가게에서 보이는 홍옥은 주황색 전기 불빛에 더욱 먹음직스럽게 비쳤다. 손에 쥔 돈은 없었지만 그 것 하나 손자에게 주고 싶은 마음만이 굴뚝같이 피어올랐다. 가게주인이 한 눈 파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사과 하나를 집어넣고 얼른 어두운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돌아 와 이불 속에 넣어 두었던 사과를 할머니는 추위와 배고픔에 지처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 온 손자에게 내 밀었다.

손자는 할머니에게 사과 한 쪽도 드리지 않고 혼자 맛있게 다 먹어치웠다. 가난한 생활에서도 손자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었던 할머니의 마음. 창 밖 밤거리는 점점 더 혹한으로 기온이 내려갔지만 손자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얼굴은 가게를 생각하고 조금 붉어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