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끝나지 않은 전쟁, 일본군 성노예
[Essay Garden] 끝나지 않은 전쟁, 일본군 성노예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3.08.2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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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일본이 우리를 강제로 끌고 갔고, 또 꼬임으로 데려 갔다는 그들의 양심적인 말을 죽기 전에 듣고 싶어요.” 나이탓인지 할머니들은 물질적인 보상도 이제는 포기해버렸다. 인간이라면 일본 정부가 최소한 양심적인 한마디 “잘못했다. 사과한다”라는 진심어린 말을 넋이 된 분들에게 말해야 한다며 외치고 있다.

인간적 권리를 유린당한 희생자들이 억울함을 밝히지도 못하고 거의 떠나버린 지금. 일본이 동아시아를 침략한 시대(1930년대)에 가난한 집에 사춘기로 자라던 죄밖에 없다. 각 가정의 귀한 딸자식들이었다. 성노예 할머니들의 억울함을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한국과 세계의 인권옹호단체 봉사자들을 향해 나는 깊은 존경을 표한다.

송신도(92세, 충청남도 대덕출신)할머니는 16살 때 중국으로 끌려가 위안부로 살다 다시 일본인에게 결혼하는 줄 알고 왔다 버림을 받았다. 자살하려는데 구해준 일본 사람이 한국사람을 소개하여 살았다. 용감한 그녀는 1993년 4월5일부터 일본정부에 정식 사과를 위안부에 하라며 싸웠지만 재판에 졌다. 1999년 10월 1일, 외국인으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여인이 스스로 일본 귀신이 되었다며 송장 같은 몸이 되어 패잔병처럼 누워있다. 텔레비전에 나온 지쳐있는 그 모습...

19살 때 만주로 끌려간 이수단 할머니(93세)는 중국 양로원에서 양자의 보살핌을 받으며 정신분열증 치료약을 먹고 있다. 억울한 밤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향 평안북도(속천) 생각만 하면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눈시울 적시는 주름진 얼굴, 차마 볼 수가 없다. 이용녀 할머니는 1995년부터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살며 일본군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앞장섰으나, 지난 11일 87세로 별세했다. 그도 열여섯 나이에 끌려가 미얀마 양곤에서 일본군 성 노예로 고초를 겪었다. 고맙게도 아직 건강히 살아서 비행기를 타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생생한 증언을 용감하게 들려주는 김복동 할머니(86세)는 우리의 희망이다.

동물보다도 못했던 감옥 생활. 날마다 협박으로 여인의 가리고 싶은 신체부위를 마구 짓밟혔다. 일본군과 업자에 의해 운영된 강간수용소(위안소)에서 도망치려고 얼마나 발버둥쳤을까. 공부하고 싶은 희망과 돈을 벌어 효도하려던 착한 마음이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 이십만명이 넘는 한국과 중국, 필립핀, 대만, 인도네시아, 네델란드의 어린 소녀들의 억울한 넋이여. 또 부모나 가족들은 행방불명된 딸과 누나를 찾으려고 서러운 눈물이 얼마나 메말랐을까.

이런 일이 역사에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기에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며 뉴저지주 고든 존슨(Gordon Johnson) 하원의원이 발의하고 여러 국회의원들이 나섰다. 2013년 3월21일 뉴저지주 하원의원회 제159호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일본정부에게 책임을 인정하고 후손들에게 진실한 역사교육을 시키라며 계속 촉구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호주, 네델란드, 대만, 필립핀, 일본 지방의회까지 총 55건에 달한다고 한다.

1998년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맥두걸 보고서를 채택하고 일본군의 만행을 규탄했다. 미국연방하원의원 마이클 혼다(2007년 위안부 발의안)는 일본 정부는 성숙한 지도자로서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미국 동부 뉴저지에 이어 로스엔젤러스의 글렌데일 시립 도서관 정원에도 위안부를 기념하는 조각이 금년에 세워졌다.

다행히 일본 주요 대학교에서 20년 넘게 위안부를 연구하고 있는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도 1938년 3월 당시 일본정부에서 위안부를 모집할 사람들을 관리했고 위안소는 군대의 전용시설이었다는 서류를 발견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도 1944년 일본군 심문보고서에 그런 자료들이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중일전쟁 당시 중국의 산시성에서 군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끌려 온 처녀들을 성노예로 삼았던 과거를 일본 군인 마쓰모토 마사요시(현재 91세, 일본군 위생병 출신)도 솔직한 체험담으로 고백하며 사죄했다.(KBS 파노라마 2013년 8월15일 방송) 일본에는 이렇게 양심적인 착한 사람들도 살고 있다. 우리 한국인처럼 서로 존중하고 문화를 교류하며 그들도 이웃나라로 잘 지내고 싶은 것이다.

1993년 일본정부의 고노 요헤이 관방 장관도 전쟁기간 중 위안소를 운영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했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도 국가에서 행한 일을 이제 와서 아니라고 부정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도 일본이 존엄성을 가진 나라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독일처럼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배상하고 사과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1946년 도쿄 전범재판에서도 강제 연행했다는 여러 문건들이 나왔다. 지금처럼 성에 대한 이야기를 떳떳이 말할 수 없던 세상이었는데, 강압적으로 기계처럼 하루에 수십 명을 기다려야 하던 감옥 생활. 시간표를 만들어 놓고 계급에 따라 생리적인 욕구를 채우던 일본의 군인들도 과연 행복하게만 살아왔을까.

아니면 군인들의 양심도 할머니들의 멍에처럼 지하에서 울고 있을까. 일본 정부는 비겁하게 온갖 변명으로 매춘부도 아닌 그들을 한국의 현대판 매춘부와 비교하다니! 억울한 할머니들을 두번 세번 죽이지 말라. 독일의 메르켈 여총리가 나치범죄에 영원한 책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반성했듯이, 세계의 흐름따라 일본의 아베 총리와 우파 정치인들도 절실히 자각할 일이다.

[필자 소개] 교포월간지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 역임, 수필집 ‘레몬향기처럼(2007년)’과 ‘샌디에고 암탉(2010년)’을 출간했고 한국문인 및 미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수필가. 샌디에고 라디오코리아에서 ‘문학정원’ 방송 연출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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