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30] 이름부터 제대로 짓자
[삼강만평(三江漫評)-30] 이름부터 제대로 짓자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3.09.1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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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침략군에게 성상납자로 충당되었던 한중 등 동아시아 각 식민지국가들의 여성들을 최초에 ‘여자근로 정신대(挺身隊)’라 불렀다. 1992년 제1차아시아연대회의(서울)에서 이 명사를 폐지하고 ‘위안부(慰安婦)’라 고쳐 불렀다. 최근에는 또 영어 ‘military sexual by Japan’에 맞추어 ‘일본군성노예’로 고쳐 부르기로 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이 역사사실에 대해 정확한 이름을 지은 셈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장장 68년 만에야 정명이 되었으니 너무 늦었다는 감이다. 우리사회와 정계가 너무나 한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명의 의의에 대한 중시가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르므로 이 글을 쓴다.

사실상 한국에는 이렇게 정명을 한 것이 적지 않다. ‘이조 李朝’라는 명사도 약 70년간 부르다가 ‘조선’ 또는 ‘조선왕조’로 고쳐 불렀다. 일한합방 이후 일본식민주의자가 저들이 멸망시킨 나라를 비하하여 ‘이조’라고만 불렀으므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따라 이렇게 불렀다. 20여 년 전 한국사학계에서는 이미 이를 정명하여 다시는 ‘이조’라는 명칭을 쓰지 않기로 하였다. 매우 지당한 처사이다.

일본군주를 일본과 중국 등은 ‘천황’이라 부르지만 한국만은 ‘일왕’이라고 부른다. ‘천황’은 ‘황제’, 뭇 왕국을 통솔하는 군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일본 본국과 조선총독부, 만주국, 대만 등 식민지를 망라하는 4개 ‘나라’를 통솔하는 황제의 뜻이 잠재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은 ‘일왕’이라 부른다. 필자는 한국의 이런 처사를 찬양하며 중국사학자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한국에는 아직 정명되지 않은 것이 많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국이 1592년 일본에게, 1636년 청국에게 당한 침략은 한국역사상 규모가 대단히 큰, 아주 잔혹한 침략이었다. 전자의 경우 명나라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 60만 국민이 청국으로 끌려가 노예로 되었으며 임금이 꿇어 엎디어 비는 치욕까지 감내했다. 그런데 한국은 이 두 차례의 침략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 칭한다. 한국사를 모르는 사람이 이 이름 자체만 들으면 마치 일본인이 변경에서 집적거리며 노략질이나 좀 한 것과 같은 감이다. 필자는 이 두 이름을 침략의 정도와 걸맞게 고쳐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일합방’에는 ‘한’자를 앞에 놓았기 때문에 한국이 주동적으로 일본과 합쳤다는 의미가 잠재해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항상 ‘일한합방’이라고 고쳐 불렀다. 얼마 전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필자의 칼럼집 <정인갑의 횡설수설>을 출판할 때 출판사 측에서 필자 문장 중의 ‘일한합방’을 아예 ‘일한병탄日韓倂呑(일본이 한국을 삼키다)’으로 고쳤다. 너무나 잘 고쳤다고 보며 한국도 적어도 ‘일한합방’이라 부르든가 좋기는 ‘일한병탄’이라 불렀으면 한다.

1950년 일어난 한반도의 전쟁을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하는데 물론 황당하기 그지없다. 1990년대 초에 중국정부는 단동에 중조우호기념탑을 세웠는데 그 외벽에 ‘1950년 6월25일 조선반도에서 내전이 일어났다…’로 씌어 있다. 중국의 입장에, 또한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남침전쟁’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내전’이란 애매모호한 말을 썼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전쟁을 ‘6·25전쟁’이라고 부른다. 중국이 지은 ‘내전’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필자가 보건대는 ‘6·25남침전쟁’이라 고쳐 불러야 적절하다고 본다.

지금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다문화가정’도 잘못된 이름이다. 1980년대 미국의 미래학자 헌팅턴은 냉전체제가 해소됨과 아울러 앞으로 세계는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없어지고 문화의 충돌로 변한다고 하였다. 그의 이론 및 현재 세계적 관례에 따르면 관형어 없이 ‘문화’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문명(황하문명, 중동문명, 인도문명 등)’과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유교 등)’ 정도만을 일컫는다. 한국의 다문화는 이미 1~2천 년 전에 형성되었다. 최근 10~20년간 외국인과의 결혼에서 생긴 가정은 오히려 다문화의 내용이 거의 없다. 그리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다민족가정’이라 부르는 편이 더 사물의 본질에 접근한다고 본다.

공자는 말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일이 성사될 수 없다(名不正…則事不成).’ ‘정신대’나 ‘위안부’라면 그녀들은 자원적으로 일본군에게 봉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일본군성노예’라 불러야 사물의 본질을 찌르며 문제해결의 방향이 바르게 된다.

한국사의 다른 명칭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바르게 짓는가 짓지 못하는가는 십분 중요한 문제이다. ‘재외동포’란 이름도 재조명의 여지가 있다. 거주국의 국적에 가입한 자, 가입하지 않은 자, 영주권 자, 2중국적을 찬성하는 거주국, 반대하는 거주국… 이렇듯 천차만별한 재외동포를 명칭상 구분해 부를 필요가 있는가 없는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부를 것인가 등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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