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49]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아! 대한민국-49]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3.10.03 0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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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이 스치운다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흔히 ‘서시(序詩)’로 그 이름이 알려진 이 시는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을 시로 적어놓은 것이다. 1941년, 윤동주는 자신의 시 열 아홉 편을 자필로 정리하여 손수 제본, 모두 3권의 시집을 만들었다. 윤동주는 그 세 권의 시집 중 하나를 후배 정병욱에게 주고, 다른 한 권은 당시 연희전문 문과교수였던 이양하에게 전하면서 시집의 출간을 의논했지만, 끝내 출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윤동주는 나머지 한 권을 자신이 가지고 1942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40년 봄 열 여덟의 나이에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한 전라도 광양출신 정병욱은 멀리 북간도 용정에서 온 2년 선배 윤동주와 만난다. 둘은 기숙사 생활도 같이 했고, 기숙사를 나와 하숙을 할 때도 함께 옮겼다. 두 사람은 문학과 예술을 자주 논했고, 윤동주를 따라 정병욱도 기독교 신앙을 가졌으며, 식민지 지식인의울분을 함께 나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윤동주는 1943년 2월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서 고종사촌 송몽규 등과 일본경찰에 잡혀 감옥에 갇힌다. 마침내 그는 1945년 2월에 후쿠오카 감옥에서 악형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 무렵 정병욱 역시 학병으로 끌려가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후송돼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학병으로 끌려나가기 전 그는 윤동주의 시집 원고를 고향의 어머니에게 맡기고 떠난다.

광복 후 경성대학(현 서울대) 국어국문과에 편입해 학업을 계속하던 정병욱은 윤동주의 가족들로부터 그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사실을 듣는다. 그는 고향집으로 내려갔을 때, 맨 먼저 윤동주의 시집을 찾았다. 어머니는 그것을 명주 보자기에 싸 정성스레 보관하고 있었다. 그 시집에는 ‘정병욱 형 앞에’, ‘윤동주 정(呈)이라는 육필 싸인도 들어있었다.

서울로 올라온 정병욱은 시집 원고를 윤동주의 가족에 보였고, 이 원고와 함께 윤동주의 다른 시 작품들을 조사 수집하여, 윤동주의 3주기를 앞둔 1948년 1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를 세상에 내어 놓았다. 시인 정지용은 이 시집에 이런 글을 썼다. “청년 윤동주는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7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이렇게 나왔다. 거기에는 윤동주와 정병욱의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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