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시장이해도·친화력에 후한 점수
"한국시장은 한국인이 제일 잘 알지요."
세계적 제약사의 한국지사 CEO 자리가 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고 있다. 총 32개 업체 중 19곳으로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3~4명에 불과했는데, 그 변화 속도가 빠르다.
1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세계 1위 제약사 화이자를 포함,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 32곳 중 한국인이 CEO인 곳은 19곳으로 집계됐다.
애초 다국적 제약사들은 본사가 외국인 사장을 지명해 한국으로 보내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그러다 몇 년 사이 내부 승진이나, 본사 근무경험을 한 한국인을 사장자리에 앉히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 한국인 사장은 이동수(한국화이자), 김진호(한국글락소스미스클라인), 현동욱(한국엠에스디), 최태홍(한국얀센), 박상진(한국아스트라제네카), 류홍기(한국애보트), 엄대식(한국오츠카), 강한구(한국노보노디스크), 박기환(한국유씨비), 안상점(베르나바이오텍코리아), 손지훈(박스터코리아), 오필수(한국룬드백), 홍윤기(프레지니우스카비코리아), 이상균(악텔리온 파마수티컬즈 코리아), 김형준(바슈롬코리아), 염윤수(세엘진코리아), 배경은(젠자임코리아), 정지문(지이헬스케어 에이에스), 피터 황(나이코메드코리아) 등 19명이다.
여기에 곧 한국지사를 설립할 예정인 일본 다카다제약도 한국인 CEO를 영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최근에 한국지사를 책임지게 된 사람은 지난 1일자로 임명된 박상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사장이다. 의사 출신인 그는 2002년 회사에 합류한 후, 영업마케팅을 경험하고 아시아태평양 마케팅 총괄 디렉터로 근무했다. 해외 경험을 쌓은 후 고향으로 돌아와 한국지사 CEO로 임명된 사례다.
이처럼 한국인 사장이 크게 증가한 요인은 다국적 제약사의 한국 시장에 대한 전략이 변화한 것과 관계있다. 외국 제약사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지 30년이 넘으면서 어느 정도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자신감에서다.
본사의 경영철학을 신입사원 때부터 익혀온 직원들이 '사장급'으로 성장하며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측면도 있다.
1세대 한국인 사장이 보여준 좋은 '선례'도 한 몫 했다. 일찌감치 CEO 자리를 꿰찼던 박제화 전 한국얀센 사장, 김진호 한국글라소스미스클라인 사장은 현지인 사장의 장점을 십분 발휘해 회사를 크게 성장시켰다. 후임 한국인 사장 임명에 길을 터준 셈이다.
한국 시장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도 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인이다보니 국내 시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해하고 친화력 또한 높다는 것이 강점"이라며 "한국이 다국적 제약사의 주요 전략지가 되면서 현지인을 통한 공격적 영업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좀 더 흥미로운 시각도 있다. 최근 정부가 제약산업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는데, 외국인 CEO 입장에서 정부 당국자와 의사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결과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