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모의투표' 제도개선 시급하다
'재외국민 모의투표' 제도개선 시급하다
  • 조규일-현성식-최영석 기자
  • 승인 2010.11.1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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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수 229만명...부족한 투표소, 신원확인 등 대책 절실


투표율 레바논-스페인-사우디아라비아 순
日 투표율 63%…선거 주요변수될듯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14~15일 이틀간 전 세계 21개국 해외 공관 26곳에서 재외국민 선거 모의투표가 실시됐다. 첫날 평균 투표율은 20.6% 정도로 다소 저조했지만 레바논, 스페인, 사우디아라비아, 일본의 도쿄, 오사카 등은 상대적으로 투표열기가 뜨거웠다. 지역편차가 컸던 이번 모의투표를 통해 턱없이 부족한 투표소, 신원확인 절차의 허점, 조직선거 가능성도 제기되는 등 부작용이 예상돼 제도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주요 국가별 투표상황을 통해 문제점을 진단해봤다.

중앙선관위 모의재외선거 상황실 전경
일본 도쿄 요쓰야에 소재한 주일 한국대사관 2층. 14일 교민 565명이 투표를 마친 데 이어 15일에도 아침부터 투표 행렬이 이어졌다.

일본 태권도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이기백 감독은 국제우편을 통해 서울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도쿄의 집으로 우송된 투표용지를 여권과 함께 투표소 관계자에게 제시했다. 본인 확인절차를 끝낸 뒤 기표소에 섰다.

기표대 왼쪽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명단이 게시돼 있었다. 정당과 후보자의 이름을 보고는 슬쩍 웃음이 나왔다. 1번 동해당, 2번 서해당, 3번 남해당, 4번 태평양당. 오른쪽에는 지역구 국회의원선거 후보자명단이 지역별로 예시돼 있었다.

일본에 오기 전 거주했던 경기도의 후보자를 찾았다. 1번 동해당 김금강, 2번 서해당 이덕유, 3번 남해당 박청계, 4번 인도양당 정소백 후보자 중 한명을 선택했다. 투표용지를 반송용 봉투에 담아 투표함에 넣는 것을 끝으로 투표를 마쳤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기존 정당명을 사용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중앙선관위가 정당명과 후보자의 이름을 산과 바다의 명칭을 이용해 작명했다.

 
지역편차 큰 재외선거 투표열기

일본에서는 도쿄 주일한국대사관과 오사카 총영사관 등 두곳에서 모의투표를 실시했지만 주변 지역은 물론 홋카이도에서까지 찾아오는 재외 국민이 있을 정도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틀간 933명이 투표해 투표율 63%를 기록했다.

강제 이주해 온 후손들로 모국에 대한 참여 욕구가 높아 투표율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도쿄에서는 80대 재일동포 1세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모의투표장에 왔는가 하면,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비행기를 타고 투표를 하러 오는 이들도 있었다.

미국과 유럽은 지역적으로도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어 한국정치에 대한 체감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일본은 바로 이웃해 있어서 한국 정치에 특히 민감하다.

2012년에 실시될 총선과 대선에서 일본 동포의 높은 투표열기가 주요 변수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는 사실을 이번 모의투표가 입증해 보인 셈이다.

홋카이도에서 온 김태훈(61·재일민단 홋카이도본부 단장)씨는 “홋카이도 거주자 중 5명이 신청해 3명이 오늘 도쿄에 왔다.”며 “모의 선거이긴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투표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 한 걸음에 달려왔다.”며 감개무량해했다.

가나가와현 쇼주에서 온 박경자(61)씨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투표권을 꼭 행사하고 싶어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쿄에 온 뒤 아침 8시 30분부터 1시간 30분을 기다렸다가 맨 처음으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미국 전역에서도 재외국민 모의선거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일부 동포들은 휴일인 14일에도 자동차로 9~10시간씩 운전해 모의투표에 참여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동포들의 관심 결여와 홍보 부족 등으로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했다.

사전 등록을 마친 689명의 등록인 가운데 모의 선거 첫날인 14일 94명(13.6%)만이 투표에 참여한 데 이어 둘째날인 15일에도 100명 안팎이 투표를 할 것으로 예상돼 참여율이 25% 안팎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투표한 이들은 영사관과 유엔대표부 소속 직원과 가족, 뉴욕·뉴저지 지역 지상사 파견 주재원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사전 등록자 가운데 절반 가량이 영사관과 유엔 대표부 직원 및 지사상 주재원들인 점을 감안할 때 일반 영주권자나 유학생 등 실질적인 재외국민들의 참여는 수십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의선거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김응중 영사는 "실제 투표가 아닌 모의선거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거의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그러나 실제 선거가 치러지면 선거운동 열기 등이 고조돼 관심이 커지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의 경우에는 재외동포들이 밀집해 생활하고 있어 모의 선거라도 투표율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미국의 경우 자동차로 몇시간씩 걸려서 총영사관까지 찾아와 모의투표를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투표율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일부 등록인들은 여권을 소지 않고 투표장을 찾아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어 외교통상부 및 선관위의 홍보부족 단면을 보여줬다.

투표율은 낮았지만 투표 진행과정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고, 투표 참여자들도 처음 실시되는 재외국민 참정권 행사라는 점을 의식한 듯 정장을 차려 입고 투표장에 찾아오는 등 진지한 모습이었다.

뉴욕주 플러싱에 살고 있는 정진송씨는 "해외에 거주하는 영주권자나 유학생들은 그동안 정치적 무국적자 상태에 있었다"며 "이번 참정권 행사로 본국에 대한 귀속력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투표 열기가 다소 떨어졌다.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둥팡둥(東方東)로 주중 한국대사관 별관 1층에 설치된 투표장에는 유권자들의 발길이 간간이 이어졌다. 모의선거인 데다 평일이어서인지 일부 가정주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투표장을 찾았다.

상사 주재원인 남편과 함께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주부 김정숙(42)씨는 “투표용지에 직접 후보자 이름이나 기호를 써넣어야 하는 것만 다를 뿐, 한국에서의 투표와 비슷해 어색하지 않다.”면서 “외국에서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북경대 유학생인 이경호(27)씨는 “2012년 대통령선거 때 중국에서도 소중한 한표를 적극 행사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현재 재외국민 유권자수는 미국 87만 9083명을 비롯해 일본(47만 3598명), 중국(33만 754명) 등 229만 5937명으로 집계됐다.

 
부족한 투표소, 신원확인 등 대책 절실

이번 모의선거를 통해 여러 문제점들이 제기됐다. 투표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제일 많았다. 공직선거법에는 투표함 관리 문제로 대사관이나 영사관에만 투표소를 설치하도록 했다. 영토가 넓은 미국, 중국 교민들의 투표율이 이 때문에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원확인 절차도 문제다. 투표 신청자는 외국인 등록증 사본이나 여권을 제시할 경우 호적과 여권정보 등을 통해 확인작업을 벌이지만 230여만명의 재외동포를 확인하는 데 상당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등 일부 지역의 경우 많은 재외국민이 모국어를 전혀 몰라 투표 요령 등에 영어와 한자 등을 병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우선 재일동포 1, 2세 중 상당수가 주민등록번호나 여권을 갖고 있지 않아 모의투표에 참가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애초 선관위는 최근에 일본에 온 사람에게는 여권과 주민등록번호, 오래전에 정착한 사람에게 여권과 외국인 등록부 등본을 모의투표 참가 조건으로 요구했다.

동포들이 "평일에 일본 행정기관에서 외국인 등록부 등본을 발급받아 공관에 사전 등록을 하고 투표를 해야 하는 등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고 불만을 제기하자 선거 당국은 외국인 등록부 등본을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외국인 등록증 앞.뒷면 사본으로 대체하는 걸 허용했지만, 여권조차 없는 동포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또 한글을 몰라 정당이나 후보 명칭을 한자나 일본어로 함께 적어달라고 요구하는 동포들도 적지 않았고, 선거를 처음 경험하는 동포들은 기표 방법을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투표소 설치 장소를 확대해달라거나 우편 투표를 허용해달라는 요구도 제기됐다.

도쿄 모의선거 책임위원인 김승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기관은 "여권 외에 주민등록번호나 외국인 등록부 등본을 요구한 것은 본적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 본적을 확인하기 어렵거나 여권이 없는 재일동포 1,2세의 선거 참여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서기관은 또 "현행 선거법상 기표는 기호나 한글로만 하게 돼 있지만 재외국민 선거가 허용된 만큼 이 또한 개선점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단 관계자는 "오래전에 정착한 사람에게만 등본을 제출하라고 요구할 경우 선거권을 침해한다는 불만을 살 소지도 있는 만큼 외국인 등록증 등본을 허용해야 할 것"이라며 "여권이 없는 동포들을 위해서는 앞으로 민단 자체적으로 '여권 갖기 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따라 선관위는 일본이나 미국의 2, 3세대 재외국민을 위해 각종 홍보 자료를 영어나 일본어로 제작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선관위는 여권번호, 생년월일, 부모 성명, 국내 최종 주소지 등 유권자 필수 정보를 잘못 기록해 선거인 명부 확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나 투표 신청자의 필수정보를 공관에서 사전에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해외 선거 관리는 소수의 선관위 직원만 파견하고 나머지는 해외 공관 외교관과 직원이 맡다 보니 업무 과중으로 인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한편 무엇보다 본 선거가 실시되면 교민사회가 정치화되고 분열될 수 있고, ‘과잉 열기에 따른 탈법행위’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존의 각종 친목단체나 향우회가 투표 과정에서 정치에 휘둘릴 우려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당락이 각각 39만표와 57만표로 갈라진 만큼 조직선거 등 선거운동이 과열될 가능성이 크다.

윤원구 중앙선관위 재외선거국장은 “부정선거 감시활동이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본국보다 오히려 더 많은 탈법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국장은 또 “정치적 의견 차이로 동포사회에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라며 “재외국민 선거가 해외동포 사회의 분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국내와 달리 정당이나 특정 단체들이 선거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러도 해외 교민은 처벌할 방법이 없는 것도 맹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양승태 중앙선관위원장은 “주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은 선거법 위반 처벌 등 권한 행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해외동포 스스로 선거가 과열되지 않고 부정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규일-현성식-최영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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