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이주 150주년 특별연재-20] 2차대전의 한인 전투영웅들
[고려인 이주 150주년 특별연재-20] 2차대전의 한인 전투영웅들
  • 월드코리안뉴스
  • 승인 2014.05.2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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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45년 동안의 2차세계대전 시기에 한인들은 소비에트 당국의 부름에 당당히 응했다. 전방에서는 젊은이들이 피와 땀을 흘렸고, 후방의 콜호즈에서는 전쟁물자와 식량생산을 위해 생산성 향상에 주력했다.

하지만 전쟁에 참여한 대부분의 한인 젊은이들은 총과 포가 아닌 탄을 캐는 기계와 연장을 들고 지하갱도에서 노동을 해야 했다. 이른바 노동군대에서 많은 한인 젊은이들이 극한 추위와 배고픔, 육체노동이라는 지옥과는 같았던 무혈전장터에서 생존투쟁을 해야 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일부의 운 좋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바람처럼 전선에 배치되어 큰 공을 세운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2차세계대전 중에 현역군인으로 참전하여 다시 한 번 한인들의 군 작전 및 군사지식에서의 능력을 발휘했다.

한인 전투병들은 주로 서남부전선과 발트해연안지역, 제2 백러시아 전선, 카렐리아 전선의 제19군, 우크라이나와 서남부전선 제49군 60사단에 소속되어 싸웠다. 또한 제3우크라이나 전선의 근위박격포부대 제61 자포로지예 근위연대, 백러시아 부대 및 제2우크라이나 전선, 볼호프스크 전선 등지에서 싸웠다. 나아가 젊은이들은 소련영토 이외에 서부유럽과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의 동유럽 국가들과 전쟁의 시발국인 독일에까지 진격하여 전투를 벌였다.

2차대전은 많은 한인 영웅들을 배출시켰다. 중동철도사변에서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군대와 전쟁터에서 헌신한 최표덕(최 표트르 이바노비치) 장군과 포병부대 지휘관이 되어 베를린까지 진격했던 황동욱, 연해주남부 포시에트지구의 지신허 마을출신으로 준위계급장을 달고 서남부 전선전투에 참가했던 한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우크라이나 해방전투에 참가했던 한인여성 이 발렌티나 니콜라예브나 등이 바로 2차대전의 주인공들이다.

특히 최표덕은 일생을 군대에서 보내며 한인이라는 민족적 태생의 한계를 넘어 소비에트 정부의 최고의 찬사와 영예를 안은 보기 드문 한인 전쟁영웅이다. 최표덕의 군대와의 인연은 약관의 나이 때부터 시작됐다. 1905년 9월 12일 원동 포크로프카구역 대잔재촌의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난 최표덕은 1925년 포크로프카구역 공청동맹위원회의 파견으로 모스크바 국제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28년 국제사관학교를 졸업한 최표덕은 소왕령(우수리스크) 76연대대 소대장으로 임관됐고, 이때부터 군인의 길을 걸으며 무수히 많은 삶과 죽음의 고비를 맛보았다. 중동철도사변 시에는 중국백계군들과 싸우며 하얼빈까지 진격해 들어갔고, 이 공로로 붉은별 훈장을 받았다.

중동철도사변은 최표덕에게 군사-정치적으로 많은 교훈과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이 전쟁에서 최표덕은 우수한 군관으로 인정받아 다시 레닌그라드 탱크장갑차 군관학교에서 공부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1931년 탱크장갑차 군관학교를 졸업한 최표덕은 더욱더 문무를 겸비한 군인이 되어있었다. 1938년 연해주 남부의 하산호수부근에서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탱크부대를 이끌고 빛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은 소수민족 한인 최표덕과 늘 함께 했다. 1937년의 스탈린의 소수민족 탄압의 소용돌이는 전 지역을 강타했다. 최표덕은 일본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투옥됐다. 이어 국가보안부는 최표덕의 가족을 엄동설한에 길거리로 내몰았다. 억울했지만 하소연 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최표덕을 다시 감옥에서 구원해 준 것은 공교롭게도 전쟁의 기운이었다. 1939년 11월 최표덕은 석방됐고, 다시 군대에 복귀해 예전처럼 근무를 계속해 나갔다. 해가 바뀌고, 그러는 사이 전쟁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1941년 6월 21일 사라토프 탱크사단 1연대 중탱크중대장 최표덕은 3일전에 휴가를 받았다. 하지만 집에서만 휴가를 보내라는 상부의 명령에 모처럼의 시간을 아내와 3명의 자녀들과 보냈다. 이튿날인 6월 22일, 우려했던 현실은 너무도 빨리 다가왔다. 거리에서 사람들은 ‘전쟁’을 이야기하며 불안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최표덕은 눈물에 젖은 아내와 작별의 시간을 나누었다. “만일 전선에서 나에 대한 소식이 없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친척들이 살고 있는 크즐오르다로 가오!”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을 흘렸다. 최표덕은 지체 없이 전선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운이 나빴는지 출전한지 3개월만에 최표덕은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다.

아내 예브게니야 파블로브나는 남편의 면회를 위해 보리소글레프스크 야전병원을 찾았지만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이후 건강을 회복한 최표덕은 5일간의 휴가를 얻어 집에서 식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사단에 복귀한 최표덕은 영예스럽게도 적기훈장과 함께 대대장으로 진급됐다.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함을 더해 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1942년 2월, 최표덕 사단은 스탈린그라드(현재 볼고그라드)로 이동했다. 독일군들은 스탈린그라드 서남부 하리코프 방향에서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하며 대원유산지인 카프카즈와의 연계를 단절시킬 목적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최표덕 사단은 독일군 부대와 전면전을 벌였다. 전투는 장기간 진행됐다. 포탄이 터질때마다 적들도 동료들도 죽어나갔다.

주변에는 온통 죽어 나뒹구는 시체뿐이었다. 초반에 밀리던 전세는 점차 역전되어 나갔다. 1943년 초 마침내 최표덕 사단은 스탈린그라드 부근에서 적들을 포위했다. 해질녁에 최표덕 사단은 적들에 대한 총 공격을 감행했다. 적들은 엄청남 인적, 물적 손실을 당하고 패퇴했다.

최표덕 사단은 다시 남쪽 카프카즈 방향으로 이동하며 적의 전선을 국경쪽으로 밀어냈다. 살아남은 최표덕은 스탈린그라드 방어전투 공로로 적기훈장을 수여받고, 소련군 중좌로 승급되어 연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하게 됐다. 그러나 1942년 9월 16일 최표덕은 노보시비르스크시를 탈환하는 전투에서 다시 중상을 입고 야전병원에 후송됐다. 10월 중순에 병원 검진위원회는 최표덕에게 ‘현역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최표덕은 판정에 승복할 수 없었다. 평생을 야전에서 보내온 그였다.

전선으로 보내달라는 최표덕의 상부에 대한 간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최표덕은 군간부 양성의 임무를 띠고 쿠르간시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노련한 야전군인 최표덕은 간부양성 임무 또한 훌륭히 수행해 내었다.

그는 다시 영예로운 레닌훈장을 수여받았다. 1946년 8월에 최표덕은 무력성 간부국의 파견으로 소련탱크장갑차병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2년후인 1948년 졸업한 최표덕은 그해 8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군 탱크장갑차병총고문으로 복무하게 됐다.

그러나 기구한 운명은 또 다시 최표덕의 발걸음을 야전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1950년 6월 25일, 최표덕은 탱크장갑차병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중장이라는 장군칭호을 받으며 한국전쟁에까지 참전하게 됐다.

한국전쟁에의 참여는 최표덕의 마지막 야전생활이었다. 1973년 2월 18일 최표덕은 68세를 일기로 중황 끝에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최표덕은 레닌훈장 1개와 적기훈장 2개, 적성훈장 1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훈장 자유독립훈장 2개, 몽고인민공화국 훈장1개 등 수많은 훈장을 받았다. 그는 불사조같은 불멸의 인물로 전쟁이 낳은 영웅이었고, 소수민족 한인들의 우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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