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이전인 1991년도에 중국에 왔어요. 홍콩비자를 받아 북경을 거쳐 단동에 왔는데, ‘앗 여기다’라는 생각이 팍 들더군요.”
최종열 창설모피 사장을 만난 때는 7월14일 오후였다. 중국 단동시 서부톨게이트 인근에서다. 단동에 가장 일찍 정착한 원로 중 한명이라고 이희행 단동한국인회장이 그를 소개했다. 단동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그의 공장.
최 회장은 90년대 후반부터 2003년까지 500만 달러의 연매출을 올릴 정도로 큰 사업을 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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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신발, 모자, 가방 등 모피 제품을 전부 만들었어요. 터키, 한국, 일본, 몽골에도 회사를 설립했어요.” 하지만 러시아에 또 하나의 회사를 설립하면서 풍랑을 맞게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모피로 제품을 만드는 사업을 한 그는 중국에서도 산전수전을 겪었던 것이다.
“한국의 봉제업 경쟁은 매우 치열했어요. 모피는 모두 사람의 손으로만 만들어야 하는 핸드메이드 제품인데, 인건비를 낮추는 게 중요했어요.”
이를 위해 중국에 진출했고, 청도, 연길, 천진, 위해 등 여러 곳을 다녔다. 하지만 단동만큼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비록 북한이지만 우리 땅이 보였어요. 그게 좋았어요.” 그는 통일이 되면 우리조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 단동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곳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단동에 처음 왔을 때 세 가지가 좋았어요. 공기와 물, 그리고 사람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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