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69] 윤학자와 노무라
[아! 대한민국-69] 윤학자와 노무라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4.08.0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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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1968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목포시는 최초의 시민장을 치러주며 그에 대해 최상의 조의를 표시했다. 영결식 때는 목포시민 3만 여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마지막 그의 가는 길을 그야말로 ‘목포의 눈물’로 전송했다. ‘고아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윤학자(일본이름, 다우치 지즈코, 1912~1968) 얘기다.

윤학자는 7살 때인 1919년 조선총독부 관리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목포에 왔다. 목포에서 유달초등학교와 목포여고를 졸업한 뒤, 당시 ‘거지왕’이란 별명을 지닌 한국인 윤치호가 세운 공생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1938년 그와 국제결혼을 했다. 공생원은 1928년 윤치호가 목포의 다리 밑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어린이 7명을 데려다 키운 것으로부터 출발한 고아원이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남편은 친일파라는 이유로, 부인은 일본인이라는 탓으로 따돌림을 당했다. 거기다 6.25전쟁과 함께 더 큰 어려움이 찾아왔다. 고아들에게 먹일 것이 없어 식량을 구하러 광주로 나갔던 윤치호가 행방불명되면서 윤학자는 홀로 공생원을 꾸려나가야 했다. 당시 공생원에는 전쟁으로 늘어난 고아가 500여명이나 됐다.

윤학자는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손수레를 끌고 구걸을 하여 이들을 먹여 길렀다. 그가 숨질 때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고아는 3천여 명이나 됐다. 이런 윤학자의 헌신에 목포시민이 감동한 것이다. 2013년 10월31일, 그의 탄생 101주년을 기념하여 ‘갯가의 성녀 윤학자 탄생 101주년에 생각하는 한일(韓日)’이라는 제목의 기념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다.

양국에서 많은 수의 전 현직 외교관과 언론인들이 참석, 한국 고아의 어머니이자 성녀요,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와도 같은 인물이었던 생전의 윤학자를 회상하고 기리는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

1974년 마흔세 살의 일본인 목사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는 서울 청계천 하류 개미마을 움막촌에서 병든 열다섯 살 소녀를 만났다. 그에게 그 소녀의 눈빛은 “예수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소녀는 두 달 뒤 숨졌고, 노무라 목사가 찍은 사진 속에 남아있다. 1970년대 청계천 빈민촌의 밑바닥 삶은 노무라의 500장 사진첩 “노무라 리포트”로 남았다.

그는 1984년까지 한국을 쉰 차례 넘게 드나들며 빈민을 도왔다. 그는 “일제 침략이 없었다면 6.25로 청계천 빈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노무라는 도쿄의 집을 팔아 청계천에 탁아소를 지었다.

남양만 간척지로 옮겨간 철거민이 키우게 하려고 뉴질랜드산 종자소 600마리를 사오기도 했다. 80년대까지 한국으로 부친 돈이 8억 원이 넘는다. 2012년 2월에는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 무릎을 꿇고 일본군 위안부 동원을 사죄하면서, 플루트를 꺼내 가곡 ‘봉선화’를 연주했다.

한국인의 애환이 담긴 이 노래가 위안부 할머니들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죽어 한국에 묻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한국은 내 인생의 기반이고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소명의 땅”이라고 말한다. 2013년, 그는 서울시 명예시민이 되었다. 청계천 빈민의 성자(聖者)에게 바치는 우리의 감사가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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