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이주 150주년 특별연재-31] 볼고그라드 이주 고려인
[고려인 이주 150주년 특별연재-31] 볼고그라드 이주 고려인
  • 한국외국어대학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
  • 승인 2014.09.09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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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3월 고르바초프의 집권과 더불어 경제적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이 시작됐다. 이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작된 글라스노스치(개방)와 민주화 정책은 결과적으로 소련 중앙정부의 약화를 가져왔으며, 70여 년 간 지속돼 왔던 ‘사회주의’ 이념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 결과 소련 구성공화국들 내에서는 민족적인 분리 및 독립문제가 야기됐다. 결국 1991년 12월 말까지 러시아공화국(현재 러시아)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5개 국가들을 포함하여 15개 공화국들이 주권 및 독립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와 구성공화국들의 분리와 독립은 한인들에게 안정보다는 또 한 번의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의 경우에는 우즈벡 민족 중심의 민족주의가 득세하면서 한인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와 입지가 상당히 약화됐다.

그 결과 매해 중앙아시아 지역의 많은 한인들이 과거 1950~60년대처럼 고향을 등지고 멀리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러시아 카프카즈 지역의 볼고그라드 흑토지대, 혹은 연해주 등지로 자발적으로 농업과 고등교육을 목적으로 재이주, 고본질(계절농업)을 떠나기 시작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볼고그라드로의 계절농업 이주가 많이 이루어 졌다. 고본질은 집을 떠나서 비옥한 지대의 토지를 일정기간 임대하여 농사를 짓는 계절이동식 농업방식이다.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22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볼고그라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로 불리며 독일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치러졌던 곳으로, 모스크바 남부 최고의 공업도시이다. 이곳은 볼가 강의 풍부한 수자원과 아직 개발되지 않은 드넓은 토지를 가지고 있는 광활한 지역으로, 1991년 소련붕괴 이후 중앙아시아 한인들의 발길을 강하게 끌고 있는 곳이다.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김 지마는 볼고그라드에서 외롭게 고본질에 종사하고 20살의 청년이다. 김 지마는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이곳으로 들어와서 농사를 짓고 있다.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처럼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지만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농업에 미래를 두고 농사를 짓고 있다. 고본질 농사가 끝나면 가을에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으며, 돈을 모아 도시로 진출하여 본래의 희망을 실현시키려는 꿈을 안고 있다. 주변에는 김 지마처럼 타슈켄트에서 고본질을 하기 위해 들어온 한인들이 많이 있다.

정착해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 완전히 재이주를 해온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고본질을 하기위해 온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농사에 적합한 일조량과 토양이며, 볼고그라드 당국의 규제 또한 심하지 않은데 있다.

물론 볼고그라드주에는 이미 1960년대에 이주해온 토착 한인들이 많이 있다. 이들 토착 한인들은 주로 도시에서 거주하고, 생업에 종사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1966년에 이주해온 오 스베타(43)는 김치공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생산해내는 30여 가지의 김치는 현지인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980년대 들어 이전시기까지 불법으로 규정돼 왔던 고본질이 합법적으로 인정됐다. 이후부터 볼고그라드로 고본질 한인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특히 1991년 소련붕괴 이후 최근 10여 년 동안 볼고그라드 계절농업 한인들이 급증했다. 이들은 브리가다라는 농사작업반을 구성해서 집단 농업을 하고 있는데, 1개 브리가다에는 적게는 한 가족에서 많게는 30~40가구가 속해 있다.

브리가다의 책임자인 브리가질은 토지임대, 판매, 세금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볼고그라드주 정부 추정에 따르면 1992년 이후 2천 명 가량의 한인 고본질 농업이주자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중에서 제때에 거주등록을 마친 자는 300여 명에 불과하며, 이러한 미거주 등록 문제는 고본질 이주한인들에게 가장 난감한 문제 중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타지키스탄에서 고본질을 온 안 표트르(난민대표)는 자신은 다행히 거주등록을 제때에 했지만, 대부분의 고본질 이주한인들이 거주등록을 못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현지법에 따르면 이주자나 난민들도 사진 2장과 간단한 서류만 제출하면 합법적으로 거주등록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절차를 모르고 제때에 거주등록 신청을 하지 않고 기한을 넘겨 고통 받는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영농자금 마련을 위해서 빌린 고리대금 사채가 고본질 한인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난민으로 고본질을 하고 있는 강슈라 할머니(72세)의 가족도 모두가 볼고그라드에 들어왔는데, 영농자금으로 빌린 빚 때문에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강 슈라 할머니는 1천 루블을 빌리면 5개월 후에 1천500루블을 갚아야할 정도로 이자를 갚고 나면 농사짓기도 힘들다며 한탄을 했다.

고본질 및 정착이주 한인들의 생계와 안정된 농업활동을 위해서 현지에서는 사회단체와 교회가 현지 한인들과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 삼일문화원장이며 우리민족서로돕기 모스크바본부장인 이형근 목사와 볼고그라드 은혜교회의 조익현 목사, 고려인협회 허 블라디미르 등이 한인영농정착과 사채해결, 영농자금 대여방안 등에 관해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고려인협회장인 허 블라디미르는 농산물가공공장 설립을 통해 고본질 및 정착이주 농업한인들의 판매활로를 열어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지 정착 한인들도 브리가다 회의를 토해서 농산물 가공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농수산물과 관련된 지역투자가 한인들에게는 근본적인 지원방법이 되고 있다. 볼고그라드주 브이코프스키 지역당국에서도 지역중심의 한인 투자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볼고그라드는 현재 또 하나의 한인 중심지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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