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 그림편지-12] 한가위의 대지신화
[김봉준 그림편지-12] 한가위의 대지신화
  • 김봉준<화가, 신화미술관장>
  • 승인 2014.09.15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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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목판화 1997년 김봉준 작
얼마 전에 한가위입니다. 추석 잘 쇠셨나요. 저도 오랜만에 장인 장모님 묘소도 가고 친부모님네에서 차례도 드리고 가족들과 놀았습니다. 오고 가는 길이 차가 많아서 고생은 되었으나 그래도 1년에 한번 한가위만한 날이 어디 있나 싶어 가장 노릇을 좀 하였습니다. 한가위를 치른 후 새삼스럽게 한가위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인류문화적 해석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가배라고도 하고 추석이라고도 하는 우리 겨레의 대표적 명절이 한가위입니다. 가배는 중추절, 가운데라는 뜻이랍니다. 본래 남쪽은 추석을, 북쪽은 단오를 더 중시하는 명절입니다. 한반도는 남방문화와 북방문화가 교류하며 형성된 중층문화권이라서 해양문화와 대륙문화가 합류하는 곳입니다. 한가위는 남도 특히 가락국, 신라에서 큰 명절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우리문화는 한강으로 갈리는 데 한강 이북은 단오가 더 큰 명절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더 춥고 유목적 삶의 뿌리가 깊은 북방계 종족은 해빙기를 참고 기다렸다가 완연한 봄날 단오가 오면 생명이 약동하는 날이기에 생활에 활력을 갖습니다.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고 씨름 놀이를 하며 활도 쏘며 사냥을 나갔습니다. 아낙은 창포에 머리를 감고 그네놀이를 하였습니다. 지금도 몽골에서는 단오날이면 펼치는 나담 축제가 큰 명절 행사이지요. 오보는 우리의 서낭당 같아서 샤만의 제사가 여기서 펼쳐지는 데 대륙의 샤만문화, 대지의 신화가 깃든 신화의례입니다.

우리겨레는 한가위에 풋바심이라 하여 알곡을 터는 일을 하는 데 풋곡식을 대지의 신에게 바치고 감사하는 의례를 하였습니다. 음복 전에 조상에게 먼저 천신薦新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동네도 햇곡천신, 올벼천신을 몇 십년 전만 해도 했답니다. 요즘도 추석 하면 성묘가 먼저 생각나는 데 조상숭배는 한가위 풍습 중에서 가장 위중한 의례儀禮였습니다.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이 이만큼이라도 살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었으니 첫 수확으로 조상에게 차례부터 올리었습니다. 집안에서는 알밤과 햇곡을 넣고 송편을 빗기도 하고 추석 빔이라 해서 가을 옷을 서로 선물하며 갈아 입었습니다. 집 밖의 놀이로는 역시 풍물놀이로 마을 이웃과 신명을 나누었지요. 소놀이 거북이놀이, 십이지신놀이라 하여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지신밟이도 하고 음식 나눔을 하였으니 풍물놀이는 역시 겨레 최고의 축제문화요, 정서나눔과 물질나눔의 나눔문화였습니다.

한가위나 단오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지를 찬미하는 문화였습니다. 지금도 남북한 사람들 모두 한가위 날이면 조상 성묘를 가는 풍습이 똑같습니다. 인터넷 신문에서 보았는데 두만강변에서 성묘하는 북조선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똑 같군!” 하는 말이 독자 댓글로 줄줄이 달린 것을 보고 역시 조상숭배문화는 우리겨레가 면면히 이어온 문화정체성의 핵심임을 새삼스럽게 알게 됩니다. 풋바심하여 대지와 조상에게 감사하는 의례는 한가위의 핵심적 문화가치입니다. 그것은 이 땅의 사람들이 이어온 대지문화로 마당놀이, 한마당 잔치, 마당굿, 마당밟이, 뜰밟이가 전해오듯 대지의 원형문화입니다.

▲ <오래된 마당> 목판화 1997년 김봉준 작
니체가 ‘신은 죽었다’는 글에서 강조하려 한 것은 대지의 신화를 파괴하고 세운 서양의 유일신 문화에 대한 경종이었습니다. 세계인류종교문화는 물론 동아시아에서의 종교문화는 그렇게 유일적이고 초월주의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대인류의 신은 본래 인류학에서 말하는 신인간神人間입니다. 신성과 인성을 이원론으로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땅과 사람과 자연을 모두 신성하게 보며 진속일여眞俗一如의 범신관凡神觀입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에 충실하라.

초자연적인 희망을 말하는 자를 신뢰하지 마라.

그들은 우리에게 독을 붓는다.

그들은 생명을 경멸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빈사자들이다.

지금은 땅에 반역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죄다. 자연에 대한 증오 일뿐이다.

우리들은 이제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들은 어른이 되었으니까. 우리들은 땅의 나라를 원한다.

우리들은 지금 여기 땅의 나라를 원한다.”

그렇습니다. 한가위가 가르치는 말씀 “일년 열두 달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씀에는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으니 지금 여기 이 땅에서 행복 하라는 조상의 가르침입니다. 대지의 순리에 충실 하라는 것입니다. 대지의 신성한 힘을 만끽하며 살아도 짧은 인생을 우리는 헛되게 허비하며 살지는 않는지 자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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