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만평(三江漫評)-53] 인문학 대가―중국동포 윤길남
[삼강만평(三江漫評)-53] 인문학 대가―중국동포 윤길남
  • 정인갑<북경 전 청화대 교수>
  • 승인 2014.09.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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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길남(尹吉男)은 재중동포 3세이며 1958년 요녕성(遼寧省) 단동시(丹东市)에서 태어났다. 그를 800만 재외동포 중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본문에서 소개한다.

윤길남은 북경대학 역사학과 1978학번 고고학 전공을 졸업하고 1983~7년 중앙미술학원 미술사학과 중국고대서화(書畵)감정 전공의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1988년 두 차례나 중국 고대서화감정 대가 사치류(谢稚柳), 서방달(徐邦达), 양인개(杨仁恺), 계공(启功), 유구암(刘九庵), 부희년(傅熹年) 등과 같이 중국 각지를 순찰하며 서화문화재를 감정한 적이 있다.

1987년부터 중앙미술학원 미술사학 과목을 강의하며 교수, 대학원생 지도교수, 인문학과장을 담임하였다. 또한 해당 학원 미술지식학연구센터 주임 및 학술위원회 상무위원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각 박물관, 신문, 잡지, 텔레비전 및 각종 이벤트에서 중국미술사 분야의 주요 기고자, 평론가 및 기획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중국미술사 및 서화작품 감정 분야의 거장으로 발돋움하며 이 분야의 많은 사회직무를 담당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원 고고학학과 특수초빙 교수, 자금성박물관 고대 서예·미술품 연구중심 특수 초빙 연구원 및 국가 급 미술전공의 선임 연구원 등이다. 2009년 전국 대학교 과학연구 우수성과상을 수여받았으며 국가 통일교재 <중국미술사> 집필의 1인자이다.

그는 국제학술활동에도 많이 활약하고 있다. 1999년 한국에서 열린 ‘동북아 및 개도국 예술전시회’에 참가하였다. 2000년 미국 康乃尔大学, 하버드대학, 뉴욕대학에서 ‘중국 당대 예술 및 여성사(女性史)’를 주재로 강연하였다.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주최한 ‘고개지(顧愷之)의 <여성잠도(女性箴圖)>에 관한 국제학술세미나’에도 참가하였다. 그는 실로 저명한 예술사 학자이며 당대 예술평론가이고 중국 고대 서예, 미술 작품의 감정 전문가이다. 그는 ‘민감하고 냉정한 예술평론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 삼련서점(三联书店)에서 문집 <계모주의―중국 당대문화와 미술에 대한 근거리 관찰(后娘主义―近观中国当代文化与美术)>을 출판하였다. 그 외에 <회안 왕진의 묘에서 발굴된 서화에 대한 초보인식(关于淮安王镇墓出土书画的初步认识)>, <명대 후기 감상 및 소장가의 6조 회화지식의 산생과 작용에 관하여(明代后期鉴藏家关于六朝绘画知识的生成与作用)>, <동원 개념의 역사 형성(董源概念的历史生成)> 등 저서가 있다.

그의 가장 특수한 공로는 중앙미술학원 산하의 인문학원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데 있다. 그는 고고학과 예술을 결합시키고 미술사와 문예 비평사를 결합시킨 우세로써 미술학원 안의 인문학원에 독특한 특성을 부여하였다. 즉 종래의 역사연구는 모두 문자만을 근거와 바탕으로 하였으나 윤기남은 도형을 근거로, 시각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역사 연구의 새로운 길을 창조적으로 열어놓았다.

윤길남은 중국 미술·예술사의 거장이고 중국 예술문화재 감정의 대가이며 중국 도해역사의 창시자이다. 이런 분야의 거장들은 모두 70대, 80대의 학자들이지만 윤기남은 40대에 이미 데뷔하였으며 바야흐로 이 분야 여러 방면의 권위, 1인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부대적으로 중국 여성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도 깊은 조예가 있다. 이주 150년 역사의 중국조선족 중 인문학 분야에서 윤기남이야말로 최고봉에 오른 학자이다.

윤기남은 조선족이 많이 사는 단동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모르며 민족관념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경에 이런 조선족 대학생이 꾀나 있다. 그는 필자의 북경대학 1년 후배이며 그의 부친 1960년대 료녕성조선족문공단의 단장은 필자가 좀 아는 사람이다. 대학시절 필자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윤길남만은 꼭 우리의 겨레의 활동에 참여시켜 명실상부히 우리겨레의 혼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갖은 노력을 다 해봤지만 번번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므로 필자는 윤길남을 아니꼽게 보았으며 또한 우리말을 모르며 우리 겨레의 활동을 거부하는 학생을 거의 포기하고 말았다.

조선족이 자기 민족에게 너무나 집념하고 자기 끼리 똘똘 뭉쳐 살면 그만큼 주체사회에 데뷔할 길이 좁아진다. 이것 또한 150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조선족의 약점이기도 하다. 윤길남은 이 길을 걷지 않고 학술에 집념하고 주체사회에 적극 뒤여들어 대성공을 한 사람이다. 이렇게 볼 때 그가 학창시절 및 그 후에 조선족 사회와 외면한 것이 잘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늙은 나이가 되면 자연히 민족 향수에 빠지며 자기의 민족성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약 1997년경 윤길남은 한국대사관 문화원에서 꾸린 한국어학원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며 필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윤길남도 이젠 56세의 나이이니 바야흐로 ‘나는 조선족이다’라는 정체성을 나타내며 이로써 자부감을 가지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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