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75] 사할린의 한인들
[아! 대한민국-75] 사할린의 한인들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4.11.15 06: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할린은 러시아 연해주 동쪽, 일본 홋카이도 북쪽에 위치한 섬으로 지금은 러시아 땅이다. 그러나 1910년~1918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를 잃은 조선의 농민들이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정착할 때는 일본 땅이었다. 1938년 일제의 추가총동원령에 의하여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벌목장, 탄광 등에서 강제노역을 해야 했던 한 많은 땅이다.

1945년 일본이 연합국에 패전, 항복했을 때 사할린에는 약 4만 3천명의 한국인이 억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때로부터 사할린은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1945년 패전 후 일본은 사할린에 억류된 일본인의 귀환에 매우 빠르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에 조선인들의 귀환은 철저히 통제된 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 패망 후 고향으로 가는 배가 올 것이라는 소식에 수만 명의 한인들이 코르사코프 항구에 모여들었지만, 그들의 희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 수많은 조선인들이 ‘동토의 땅’ 사할린 섬에서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며 망향의 언덕을 지켜야 했다. 그 중 90%이상이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2년 이장호 감독이 만든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는 바로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그린 것이었다. 그 제목만으로도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사할린 한인의 역사는 세 개의 이름, 세 개의 국적을 강요받았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쏘냐’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사할린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는 그 안에 ‘아끼꼬’가 있고 ‘명자’가 있다.

그들이 받고 있는 상처는 역사가 강요한 상처였고, 잃어버린 정체성 역시 역사가 강요한 것이었다. 그들의 삶은 ‘국가’ 바깥에 버려진 삶이었고, 역사가 그들의 운명을 비틀었다. 그들은 철저히 뿌리뽑혀 천형의 땅에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어느 국가, 어느 역사도 그들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뇌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1990년 한·소 수교 이전까지 고향에 돌아갈 길이 막혀있던 사할린 한인들은 불가피하게 러시아 국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당시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한인들은 일본 기업에 의해 노동력을 수탈당하고, 그마저도 예금·저금 등의 형태로 사실상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강제동원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일본정부와 기업에 피해배상을 하도록 어떠한 외교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영주귀국 대상자를 1세대로 한정함으로써 그들에게 다시 가족과의 이별을 강요하고 있다.

2014년, 서울행정법원은 사할린 무국적 한인에 대하여,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대한민국 국적을 확인하는 판결을 하였다. “우리는 정녕 어느 나라 백성이냐”는 사할린 한인들의 한 맺힌 탄식에 일단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국회에서 논의되는 사할린 한인지원특별법 등이 조속히 제정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 (한신잠실코아)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