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한국인 거주자 숫자의 힘
[Essay Garden] 한국인 거주자 숫자의 힘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4.11.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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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든 자의든 개인사정에 의하여 모국을 떠나 살게 되는 게 이민자다. 새로운 문화는 서서히 배우면 되지만, 이미 굳어져 버린 혀로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가족이 있으면 몰라도 우리처럼 한국신문을 읽고 한국어로 날마다 대화를 하면서 사는 경우는 적응이 아주 느릴 수밖에 없다.

미국에 이민 와서 영어회화가 조금 가능해지자 나는 용기를 내어 교육청에서 보조교사 자격시험을 치르고 집 근처에 있는 샌디에고 중학교에 수학과 보조교사로 취직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다른 교육구에는 일본, 중국, 중동 사람들이 번역을 도와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던 나는 한국어 번역 담당자가 샌디에이고 교육청에는 왜 없냐고 물었더니 한국어를 번역해달라는 학부모의 신청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은 바꾸어 생각하면 한국인 학부형들이 영어회화를 잘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실제로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는 게 창피스러운 일로 여기며 살기도 한다. 또 관공서를 찾아갈 때나 전화로 문의할 때면 한국어 무료 통역을 요청하기보다는 자녀나 지인들을 동원해 그들의 도움으로 일을 처리하곤 했다.

한 번은 1990년 초쯤인가. 로스앤젤레스에 한국어로 서비스하는 전화 사무소가 개설되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나왔다. 800으로 시작되는 무료 서비스 전화번호였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때부터 우린 계속 30여 년 동안 전화 회사를 바꾸지 않고 있다. 당시 만나본 적은 없지만, 멀리서 들으니 ‘박동우’라는 분이 한국인을 위해 관할 정부를 뛰어다니며 한국어 사무실을 열도록 도와주었다고들 말했다. 그분은 승승장구하더니 지금 백악관에서 장애정책 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참 고마운 애국자이다.

이처럼 누군가 나 개인뿐만이 아니라 소수민족인 한국인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뛰었기 때문에 나와 우리가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나 마찬가지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된다. 정부에서 주는 이익을 얻으려면 기회를 찾고 끈기로 노력해야 한다.

지금은 내가 다니는 병원에 한국인 의사선생님이 와 계시지만, 오래전 남편이 암 수술을 받을 때는 의학전문용어를 잘 몰라 영어사전을 들고 다니며 미국인 의사선생님께 때론 말씀하신 대화 중의 영어 단어를 종이에 써달라고 하면서 많이 불편하게 살았다. 한국에 살 때 영어 문법과 쓰기는 그런대로 학교에서 인정받던 내 영어실력이었지만, 말하고 듣기는 엉망이어서 손짓 발짓 모두 동원하며 대화했다. 중요한 내 의견을 상대방에게 어떻게든지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의료보험 문제로 한국어 번역자를 신청하여 해당 사무실로 두어 시간이 넘는 통화를 했다. 벌써 의료보험회사가 바뀌었으니 각 회사끼리 서류가 오가며 해결되었어야 하는데도 수개월째 중복된 고지서가 계속 날아왔기 때문이다. 누군가 담당자가 제때 처리하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었다. 다행히 한국어 통역이 나와 친절하게 설명해주니 기쁠 수가 없었다. 나의 엉터리 영어로 싸우는 것보다 차분하게 답답한 것들을 모두 하나씩 물어보았다. 또 한국어를 말하는 나 같은 중요한 고객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였다.

또, 얼마 전에는 미국의 11월 선거의 투표 안내 용지가 우편배달로 집으로 날아왔다.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로는 짧은 안내가 있는데 이번에도 한국어는 빠져있었다. 속상했다. 샌디에이고에 사는 한인들의 공식적인 숫자도 2만이 넘는다고 하지만 훨씬 많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언제 선거사무실로 찾아가 건의해야겠다. 로스앤젤레스는 한국어로 번역된 투표용지까지 있다는데 말이다.

문제는 우리가 자녀들의 학교에 가서도, 병원에 가서도, 공공 기관을 찾아갈 때도 한국어 통역관이 있느냐며 일단 물어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데 있다. 영어 좀 할 줄 안다고 아는 체하는 것은 한국인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라 함을 어느 날 나도 깨달았다. 다행히 신이 나는 일은 미국의 자동차 등록소(DMV)에 가면 운전면허시험용지가 한국어로 되어있다. 얼마나 편리하고 고마운 일인가. 영어시험을 치를 수 있지만, 한국인의 권리를 찾기 위하여 나는 한국어로 시험을 본다.

얼마 전 한국의 번역원 주최로 한국에서 알려진 젊은 두 작가(김경욱, 정이현 소설가)가 주립 샌디에이고대학교를 찾아와 영어로 번역된 소설을 처음 알리는 행사가 있었다. 그때 로스앤젤레스에서 번역 전문가가 참석하여 사회를 맡아 영어로 미국 학생들에게 번역해주었다. 알고 보니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한국인 법정 통역사였다. 그녀의 유창한 영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은 11월6일 오후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CSD: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에서 소설가 김경욱, 정이현 씨의 문학행사를 마련했다.

오래전 나도 처음으로 억울한 교통 티켓을 받아 법원에서 소환장이 날아왔는데, 그때 무료 통역사를 신청했더니 한국인이 도와주려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여러 곳에 우리의 권익을 찾을 수 있는 무료 통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병원에 갈 때면 반드시 이용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에서 이 새로운 법을 만들어 이미 시작된 지 꽤 되었는데도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니 안타깝다. 한국인의 목소리가 높고 참여도가 높을수록 미국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혜택을 우리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미자의 문학서재 안내 www.mijumunhak.com/mi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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