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76] 남한산성
[아! 대한민국-76] 남한산성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4.12.0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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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2014년 6월22일,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열한번째 세계유산을 가지게 된 것이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 등재 이유로 “남한산성이 동아시아에서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증거로서의 군사유산이라는 점과,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과 방어술이 시대별 층위가 결집된 포곡식(계곡을 감싸고 축성하는 방식) 산성이라는 점에서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점을 들었다.

남한산성은 임진왜란(1592~1598)과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을 거치면서 국가 유사시에 방어력을 갖춘 임시수도의 필요성을 절감함에 따라 등장한 산성도시(山城都市)라 할 수 있다. 국가사적 57호와 480호인 남한산성과 행궁은 일반 왕궁과는 구분되는 산성이자 궁궐이면서도 병자호란과 같은 비상시에는 왕이 일상적으로 거주하는 비상왕궁(emergency palace)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임금의 비상왕궁으로 사용된 산성과 행궁은 남한산성이 세계적으로 유일하다고 한다.

남한산성이 집중적으로 축조된 것은 조선 인조 때였다. 1624년(인조2년) 허물어진 옛 성 자리에 축조를 시작, 1626년에 남한산성을 완성했다. 이후에도 증•개축을 거듭했고 1688년에는 지금의 외성(2.7km)를 축조했다. 그러나 처음 성을 쌓은 것은 기록상으로 신라 문무왕때(672)였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차례에 걸쳐 성곽을 쌓다보니 남한산성 성곽(11.76km)은 그 쌓은 돌의 모양과 크기가 하나의 성곽이라 하기에는 일정하지 않다. 성벽의 위아래 돌 모양이 다른 것도 있다. 그것은 시대별로 쌓은 돌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에 쌓은 돌은 옥수수 알갱이처럼 둥그스름하고 황토색을 띤 화강암으로 축구공만하고 인조 때 쌓은 돌은 사각형의 편마암으로 앞의 돌보다 훨씬 크다. 1688년에 지어진 옹성과 외성은 바위처럼 큰 돌 사이에 작은 돌을 끼웠다.

남한산성에 대한 유네스코의 평가와 세계유산 등재는 분명 반갑고 기쁜 일이지만, 그러나 남한산성에는 한국인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픈 역사가 담겨있다. 조선왕조가 청나라의 침략에 무참하게 짓밟힌 병자호란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 해 음력 12월14일, 인조와 그 일행이 청나라 군대에 쫓겨 강화도로 향하다가 길이 막혀 황급히 들어온 곳이 남한산성이었다.

여기서 47일을 버티다가 마침내 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했던 것이다. 주화파(主和派)인 최명길이 항복문서를 쓰면, 척화파(斥和派)인 김상현이 울면서 그 항복문서를 찢는 눈물겨운 장면이 있었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마침내 두 왕자가 볼모로 잡혀갔고 삼학사는 끌려가 참형을 당했다. 50만명이 포로로 끌려가 저들의 노예가 되었다. 이들이 조선인 디아스포라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렇게 아픈 역사 또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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