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②] 세계 속의 한국! 한국을 세계로!
[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②] 세계 속의 한국! 한국을 세계로!
  • 김희조 교사(미국 버지니아 주, 열린문 한국학교)
  • 승인 2014.12.1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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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 수기 공모전> 재외동포재단이사장상 수상작

※ 편집자 주: 올해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총장 이동관)가 주최한 ‘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중에서 해외 한국어교육자들의 우수작품들을 서울문예대 육효창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의 협조를 통해 연재합니다.

김희조(미국 버지니아 주, 열린문 한국학교 교사)

2014년 9월28일 오후4시. 저는 카페 분위기가 나는 멋진 방의 한가운데에 혼자 앉아 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눈이 부시게 파란 벽에는 대문짝만하게 ‘1gyosi-Ahnnyunghaseyo. Je ireumeun Kim Heecho yeo. Mannaseo Bangawoyo.’라는 영어도 아닌, 한국어도 아닌 이상한 말을 프로젝터가 쏘아대고 있었습니다. 이제 30분 남았습니다. 한국학교에서 7년 동안 어린 학생들만 가르치던 저의 첫 성인 수업입니다.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습니다. 같은 날, 저녁 8시. 수업이 끝난 지 30분이 지났습니다. 그것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제 가슴은 아직도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오늘은 10월28일입니다. 저의 6번째 성인 수업을 마친 날입니다. 총 15번의 수업 중 1/3정도를 마쳤습니다. 아직도 가슴은 두근거립니다.

제가 사는 곳은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디씨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져있는 버지니아의 페어팩스 카운티입니다. 이곳에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콜린 파월 초등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한국어-영어 듀얼 이멀전(dual-immersion) 수업도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패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에서 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수업이 생겼고, 그 수업을 저와 다른 선생님 두 분이 맡아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한국학교에서 1, 2, 3학년, 어린 학생들만 가르치던 제가 미국의 정교사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가르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연구하시는 어느 고마우신 교수님의 지도하에 열심히 배워가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막연히 한국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게 가르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고, 착각이었습니다. 성인인 외국인을 가르치는 것과 한국학교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다음과 같이 달랐습니다.

첫째, 한국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어느 정도 가정에서 한국어에 노출이 된 상태로 간단한 대화를 한국어로 할 줄 압니다. 하지만, 성인인 외국인들은 그야말로 한국어에 대한, 혹은 한국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차 모르고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어를 모르니까 배우러 오는 것이지만, 그 사실이 저를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한국학교의 학생들은 한국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나가면 배운 한국어를 활용할 기회가 많습니다. 부모님과 대화를 해도 되고, 다른 한국친구와 대화를 해도 됩니다. 또는 좋아하는 한국 텔레비전을 보며 듣기 능력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성인들은 일단 수업을 받은 교실을 나가면 바로 자기들끼리 영어로 쏼라쏼라 대화를 합니다. 배우자가 한국사람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 배우자도 미국인과 연예를 하고 결혼할 정도이니,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한국어 수업을 받는 교실을 벗어나면 배운 한국어를 복습하기 위해 대단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한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아무리 성인이라도 빠르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한국학교의 학생들은 본인의 의지보다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리어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이기도하고, 부모님들이 한국어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경우는 싫어해도 꼭 보냅니다. 하지만, 미국 성인들은 다릅니다. 수업이 흥미롭고 재미있어야 옵니다. 조금이라도 재미가 없거나, 다른 약속이 생기면 못 온다는 이메일 한 통을 보내고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수업에 뒤쳐지게 되고,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따라서 강의와 연습을 위한 게임과 활동을 적절히 배합하여 수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넷째로 한국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질문’이 없습니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선생님들이 수업을 진행하면 그대로 따라옵니다. 하지만, 성인들은 어찌나 질문이 많은지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처음 3주 동안은 3시간짜리 수업을 선생님 3명이 한 시간씩 맡아 가르쳤었습니다. 지금은 2명이 가르치지만. 선생님들 중 한 분이 경상도 사투리를 조금 쓰셨습니다. 클래스룸 코리안에 ‘외우세요’가 있었는데, 그 선생님께서 ‘외’에 강세를 두어 사투리식으로 발음을 하셨나봅니다.

그 당시 제가 주교사였는데, 저는 서울 말씨라 그냥 외우세요를 단조로운 같은 음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제게 영어로 질문합니다. “왜 저 선생님은 ‘외’우세요라고 말을 하고, 너는 외우세요라고 말하니?” 그랬더니, 그 경상도 사투리를 조금 쓰시는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제게 한국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단조롭게 ‘외우세요’라고 말을 하니까 왜 우세요~랑 똑같이 들리잖아요.” 한국어는 ‘syllable unit language’라서 ‘stress unit language’랑은 다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고 설명을 했지만, 역시 성인이라서 그런지 질문이 꽤 날카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선생님들의 날카로운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이 수업을 듣는 선생님들이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기에 더 날카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오면 대부분 레벨 2 수업을 들으면 그 때 다 깊이 있게 설명해준다고 하며 슬그머니 레벨 2 수업 광고를 하기도 합니다.

다섯째로, 한국학교 학생들은 한국문화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이미 한국문화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성인들은 한국어보다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원리라던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문화재들, 그리고 한국 먹거리 등에 관심들이 무척 많고 흥미로워합니다.

오늘의 문화 주제인 ‘한국’에 대해 강의를 할 때, 1950년도의 6.25전쟁 후 약 35년 뒤에 88올림픽 개최국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니, 다들 너무 놀라워했습니다. 문화수업을 할 때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한국어 수업을 할 때는 조가비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어른 학생들도 이 시간만큼은 참새처럼 조잘조잘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가 가르치는 성인 수업은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에서 운영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조건’이 붙었습니다. 바로 ‘수업의 90% 이상을 한국어로 가르치기’입니다. 그동안 제가 가르친 한국학교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해도 그다지 문제가 없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학생들이 이미 한국어에 많이 노출이 되어 한국어 듣기 능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인 성인들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아직도 첫 시간에 저만큼이나 떨리고 긴장되는 얼굴로 교실 문을 열던 첫 학생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로버트 씨였습니다. 교육청에서 말한 ‘조건’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냈을 때 그의 표정이란…… 그리고 그저 이 말이 뭔가 처음 만나서 하는 말인가 보다 싶은지 앵무새처럼 열심히 따라하던 그 순진한 로버트 아저씨…… 나중에 그 말이 “hello”라는 것을 알고는 ‘아하!’하는 표정을 짓던 그는 지금 현재 웬만한 한인타운의 간판을 다 읽을 수 있다고 아주 즐거워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한국인학생에게 “안녕?”하고 한국어로 인사를 할 수 있고, 또 한국인학생에게 우리들이 내어주는 과제물의 도움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신나합니다.

이 밖에도 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차이점을 느끼면서 저나 함께 가르치는 동료선생님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저 우리가 알고 쓰는 한국어와 문화를 그냥 우리 멋대로 개인기를 부려가며 가르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젠 우리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보다 효율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전문성을 함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한국학교협의회에서 제공한 연수회의 주제가 바로 ‘봉사와 전문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패어팩스 카운티에서 초중고교 교사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무보수로 자원봉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이기 때문에 그냥 대충 시간 보내고, 재밌는 시간 보내면 되겠다는 얕은 생각으로 우리는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가르치는 최전방에 있는 외국인 교사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친다는 자부심으로 선뜻 무보수 자원봉사라도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마음이 더욱더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문성을 함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보수도 받지 않는 봉사를 위해 시간을 쪼개어 연수를 받고, 자비로 수업료를 내가며 한국에서 실시하는 온라인 한국어 교원양성 과정을 듣기도 합니다.

저와 제 동료선생님이 요즘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또 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금전적으로 값어치를 매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청에서 임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수준의 액수입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3시간짜리 수업을 위해 우리들이 교실 밖에서 하는 노력은 돈으로 값어치가 환산되는 순간 왠지 빛이 바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저와 제 동료선생님은 이렇게 전문성을 갖추면서까지 ‘제대로’ 봉사활동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 넓은 세계에서 우리의 작지만 단단한 ‘조국’을 위해서가 아닐까요? 제가 한국 땅을 떠날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말이 있습니다. “세계 속의 한국! 한국을 세계로!” 한국 땅을 떠난 지 십여 년, 십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 제게 그 말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기회를 위해 노력하는 제가 자랑스럽고, 그리고 제 조국인 한국이 자랑스럽습니다.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교사가 참 교사다.”라고 어느 연수회에서 외치던 어느 교수님이 생각이 납니다. 보다 전문적인 한국어 수업을 위해 내 욕심을 내려놓고, 조국인 한국을 빛내기 위해 한국어라는 씨앗을 이 큰 미국 땅에 심는 저와 제 동료선생님.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우리들처럼 자신을 버려가며 전문성을 함양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님들.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했었고, 또 그 다짐을 세계 곳곳에서 실현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아닐까요?

※수상소감

수상소감으로 진부할지 모르지만, 7년 전 한국학교 교사를 시작할 때를 나누고 싶습니다. 제게 맡겨진 장난꾸러기 2학년 어린 남자아이들 7~8명을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 절절 매고,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한국 나이로 만8살의 남자아이들이 어떤 지, 아마도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실 줄 압니다. 아무리 조용히 하라고 해도 소귀에 경 읽기. 하필이면 처음 시작한 봉사가 이리 힘들 줄이야…. 아이들을 얼러도 보고, 사탕과 초콜릿으로 달래도 보고… 그 첫 주의 3시간이 어찌 흘러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내가 왜 이것을 하겠다고 했을까’ 눈물을 글썽이며 후회를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불현듯 ‘그래! 아이들에게 흥미 있는 수업을 만들어야지. 내가 왜 도망갈 생각부터 하나! 어리석다!’ 결국, 공룡의 이름을 가지고 지옥일 수도 있었던 1년을 너무도 즐겁게 잘 이끌어갔습니다. 매 해마다 한글과 한국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특히 올 해는 더 힘든 해입니다. 성인을 처음 가르쳐보기 때문입니다. 7년 전, 그 때와 같이 성인 수업을 나가던 첫날 어디든 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7년 전, 그 때와 같이 지금 그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 세월 동안 옆에서 응원해 준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 인생의 짝 이성규 씨와, 한국학교 교사인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랑하는 나현이, 나윤이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고, 특히 힘들어 할 때마다 ‘국위 선양하는 일이다!’라며 애국심을 고취시켜주신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를 한 눈에 알아봐주시고 열린문 한국학교 교사로 채용해 주신 열린문 한국학교 김대영 교장선생님께 특히 감사의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지구 곳곳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다른 여러 선생님들께도 혼자가 아니라는 격려 드리고 싶고, 또, 혹시라도 외국에서 용기가 없어 한국어 교사를 하지 못하시는 분들께도 용기를 북돋워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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