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 그림편지-15] 은근하게 깊은 따듯한 삶이여
[김봉준 그림편지-15] 은근하게 깊은 따듯한 삶이여
  • 김봉준<화가, 신화미술관장>
  • 승인 2014.12.24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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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롯가> 목판화 1998년 김봉준 작.

요즘 매우 춥습니다. 시베리아 찬바람이 여기까지 밀려 와서 산천초목과 사람 살림살이가 온통 동토로 변했습니다. 산에 동물들도 동굴을 찾아 들어가 꼼짝 않고 동면 중인지 울음도 그쳤습니다. 그래도 눈에 찍힌 고라니 멧돼지 발자국은 간간히 보입니다. 이 엄동설한에 무슨 먹을 것이 있겠다고 눈밭을 헤매는 지 알 수 없습니다. 바깥 수도는 얼어터져서 새어 나온 물들이 쌓여 빙암을 이루었네요. 길은 얼어 걸어 다니기도 조심스럽고 산천도 하얀 침묵 속에 동면합니다. 이렇게 깡 추위가 빨리 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다행히 추위를 미리 대비해서 내 방에 화목난로 만들었습니다. 

 

로켓 메스 히터(Rocket Mass Heater) 라는 화목 난로가 있습니다. 1990년대 미국에서 어느 과학자가 개발한 나무를 연로로 한 난로입니다. 벽난로보다 두 배 이상 열 효율이 좋고 연료도 적게 듭니다. 불이 화덕에서 타서 긴 연도를 타고 위로 솟았다가 다시 연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연통을 빠져 나가는 새로운 화목 난로 기법입니다. 미국에서도 불황기에 접어들자 시골 단독주택에서는 이 화목난로가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 기법을 익히고 응용하여 흙 구들 침대를 난로와 연결시켰습니다. 우리 전통구들처럼 연도를 따라 흙을 덮이고 나서 연통이 창 밖으로 빠져 나가게 했습니다. 더운 물을 덥혀서 파이프로 보내면 바닥이 난방이 되는 도시 아파트 식 난방을 확 바꾸어 버렸습니다. 방 안에서 직접 장작불을 끌어 들였습니다. 화덕을 두어 불을 지피고 쇠 드럼 통을 덥히고 나면 흙 침대를 또 덥힙니다. 화덕과 난로통과 흙 구들을 3중으로 덮이니 열을 충분히 활용하고 난 후에야 밖으로 배출하는 겁니다. 저의 올해 말에 마지막 히트 작품은 미술작품이 아니고 화목난로입니다.

근대의 기술공학과 전통의 기술, 흙 구들 장점을 융합하고 나니 새로운 창작기술품이 탄생하였습니다. 이름도 새로 짓고 싶었습니다. 로켓 메스 히터는 불이 좁은 연도를 빠져 나오며 폭발적으로 고온으로 상승하는 원리를 갖고 있어서 우리 말로 하면 화목 ‘솟을난로’이고 흙의 원적외선이 작열하는 흙 구들침대가 결합 하였으니 <솟을난로 흙구들>이라고 명명 했습니다. 사실, 로켓 메스 히터 기술공학은 도염식 가마에서도 쓰고 있는 공학 기술이기도 합니다. 불이 상승하였다가 다시 밑으로 내려가 바닥으로 빠져 나가게 해서 열 효율을 높이는 겁니다. 요즘처럼 에너지 절약시대에는 안성맞춤입니다.

갑자기 ‘솟을난로 흙구들’을 만들면서 우리에게 근대란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시대를 말하는 근대는 기술공학의 근대가 있는가 하면, 해방의 근대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 기술공학은 잘 받아 들였지만 개인주의 휴머니즘 인권을 신장하게 한 근대의 가치는 아직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물질문명에 매몰되어 근대의 총체적 가치를 온전히 누리지도 못하는 것은 아닌지 저부터 자성합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조사한 통계에서도 세계 140여개 국가 중에서 137위라고 하니 허탈합니다. 더 평화롭고 더 평등하고 더 자연 친화적 삶을 사는 사회가 하루속히 오기를 갈구합니다.

근대는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를 남기고 있다’는 백낙청 선생의 ‘근대의 이중과제론’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극복할 근대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제국적 수탈과 자본의 노동 착취이고 자연의 남획 같은 것이지요. 우리는 아직 근대를 성숙하게 수용하지도 못하면서 탈근대의 극복 과제를 떠 안아야 하는 이중성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연을 좋아하면서도 빼앗아 편리와 행복을 위해 자원을 이용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저에게도 집요하게 따라옵니다. 그래도 좀 더 에너지를 절약하는 화목 난로를 개발 해서 자원 절약을 하고 있다고 자위합니다. 또한 근대식 기술공학과 전통기술이 융합하면 이렇게 보다 나은 생태적 기술로 진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나의 예술도 근대의 휴먼이즘이며 동시에 탈근대의 생태기술로 보다 진화하기를 바랍니다. 정신이며 물질인 미술은 미적 기술이기도 하니까요.

올 겨울은 ‘솟을난로 흙구들’ 덕분에 따듯합니다. 불에 덮인 흙 구들에 누우니 은근하게 깊은 온기에 찌브둠 했던 몸이 풀립니다. 긴 겨울 밤 혼자 지내도 불 장난하며 사는 재미가 솔솔 합니다. 모든 생명이란 불 장난 같아서 타오르다 언젠가 시드는 거 같아요. 그 옛날 화롯가에서 할머니와 화롯불에 앉아서 할머니 옛이야기 들으며 긴 겨울 밤 보내던 생각이 납니다.

이제 저는 현대인이라고 인터넷으로 세상구경하며 이렇게 독자들에게 2014년 마지막 편지로 이야기를 건네 왔습니다. 비록 반응을 직접 듣지는 못해도 그 동안 독자와 소통이 재미 있었습니다. 한 해 무사히 잘 마치신 우리들 근대적 삶에 자축합시다. 그리고 새해에는 안전하고 보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 탈근대적 삶도 꿈 꾸어 봅시다. 은근히 깊은 온기를 잃지 않는 우리들의 훈훈한 삶을 위하여 이 겨울 안녕히 계십시오.

▲ <귀로> 목판화 1998년 김봉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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