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③] 퇴근이 기다려지는 또 다른 이유
[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③] 퇴근이 기다려지는 또 다른 이유
  • 신상호 교사(카자흐스탄 알마티 한국교육원)
  • 승인 2015.01.0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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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 편집자 주: 올해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총장 이동관)가 주최한 ‘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중에서 해외 한국어교육자들의 우수작품들을 서울문예대 육효창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의 협조를 통해 연재합니다.

신상호 교사(카자흐스탄 알마티 한국교육원)

나는 왜 여기에, 그리고 어떻게…

국경과 지명이 전혀 표기되지 않은 세계지도를 보여주고, 카자흐스탄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짚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대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카자흐스탄은 한국인에게 조금은 낯선 곳이다. 주변에 OO스탄 국가들이 많아서 구별하기도 쉽지 않고, 오랫동안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어서 한국인에게는 더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영토가 가장 큰 국가이며, 석유와 가스가 많은 자원부국이다. 1991년에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한국 나이 24세의 잠재력이 큰 젊은 청년이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최대도시 알마티는 내 인생에 있어, 무척이나 특별한 곳이다. 대학 재학 시절에 한국어 교원 자격증 3급을 취득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KOICA(한국국제협력단)에 지원하여, 알마티에 소재한 카자흐스탄 국립대학교 한국학과에서 2년 2개월 간 한국어를 지도하였다. KOICA 파견 기간 종료 후, 현지의 한국 건설회사에 취직해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알마티는 북미 및 주요 아시아(중국, 일본, 동남아 등) 지역과 비교하여 교민 수는 절대적으로 적은 반면,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 학습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곳이다. 그래서 현지에서의 한국어 강사 수급 불균형은 해결되기 어려운 해묵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차에 나의 경력을 아는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는 잊지 않고, 매 학기 나에게 저녁 수업을 부탁한다. 본업(건설회사)으로 인해 교육원의 다양한 행사(한국음식 경연대회, 한국놀이문화체험 등)에 참가하지 못해 아쉽지만, 맡은 수업은 무조건적으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 2014년 초급A 18반 단체사진.

나의 퇴근길은 집이 아닌 교육원으로…

2014년 가을학기에 나는 화요일, 목요일 저녁 수업을 맡게 되었다. 직장(건설회사)에서 퇴근 시간은 저녁 6시이고, 교육원 수업은 저녁 7시에 시작된다. 직장에서 교육원은 차로 30분 거리라서, 굳이 서둘러 움직일 필요는 없다. 퇴근 후 여유 있게 움직이면, 6시 40분쯤 교육원에 도착하게 된다. 수업 준비를 위해 교무실에 늘 들리게 되는데, 저녁 수업 준비를 위한 동료 강사들의 열정으로 교무실 분위기는 늘 활기차다. 교육원에서 풀타임(정식근무)으로 일하시는 분들 중에 저녁 수업까지 담당하시는 경우도 있고, 나처럼 다른 일을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있다. 수업준비부터 종료까지 밝은 표정으로 열심히 고생하는 동료강사들을 보면서, 퇴근 후에 몰려오는 피곤함이 조금은 사치스러운 혹이 아닐까라고 자책해 보게 된다.

▲ 2014년 추계기간의 차른 계곡 소풍.

가장 이상적인 교수법은 없다.

모교에서 한국어교원 양성과정을 이수한 후, 시험과 면접을 통해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이후 해당분야에서 5년가량 근무하고 있다. 한국어교육은 교육 및 학습환경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있어서, 이런 변수에 맞추어 적응하는 것이 교육자 입장에서는 힘들 수 있다. 과연 카자흐스탄의 교육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일까? 교육원의 한국어 보급사업은 국적, 민족, 성별,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열려있다. 교육장소와 교원 수급의 문제, 교육의 질적 하락을 막기 위해 각 학급당 정원수를 정하여, 등록기간 이외의 희망자에 대해서는 조금 냉정(?)하지만, 접수를 받지 않는다. 교원과 학생 쌍방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기도 하다.

교육원 학생들은 나이대로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고등학생, 대학생이 많고, 성별로는 남녀 비율이 2:8 정도로 여학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교육 목적으로는 한류(한국 드라마나 한국 가요 등)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혹은 호기심)때문에 등록한 학생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는 한국회사에 취직한 회사원도 있으며, 한국으로 여행 및 출장, 유학을 다녀온 후 관심이 높아진 경우도 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지역에는 적지 않은 한국인 디아스포라(고려인)가 있으며, 특히 알마티 지역의 경우 전체 도시인구의 약 2%를 고려인이 차지하고 있다. 이 젊은 고려인 4-5세들은 잃어버린 민족정체성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도 한다.

교육원에서의 초급과정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교육원 학생들은 대학 내의 한국어 전공생에 비해, 수업시수도 많이 부족하고, 적극성도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조금 어렵거나 지루하게 되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서 수업 시작 직전에 동영상자료를 적극 활용한다. K-pop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나 관광 및 한글 홍보 동영상을 재생시켜주면, 학생들의 관심도 생기고, 이어지는 수업의 몰입도도 올릴 수 있다. 중급반에서는 노래 가사나 드라마 대본도 적극 활용하여, 교과서에서 접하기 어려운 구어적인 요소도 함께 배울 수 있다.

가능하면 과제는 적게, 그리고 수업 중에 질문은 많이 한다. 매번 많은 과제를 주면, 학생들이 흥미를 잃을 수 있다. 그 날 배운 문법 항목에 대해, 모든 학생에게 2~3번 씩 질문을 한다. 설명을 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작 답변하지 못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전공생이 아니다보니, 친구와 잡담을 한다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경우도 많다. 질문을 함으로써 수업의 방해요소를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업 중에 질문을 자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는 시간도 단축된다.

매개 언어를 적극 활용하자. 초급과정에서는 매개 언어를 배제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불가피하게 매개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하여 모든 CIS 지역의 한국어교육 현장은 매개 언어가 러시아어가 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영어수준도 높지 않고, 러시아계 민족이 아니더라도 일상 언어로는 러시아어가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어는 한국어와는 달리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언어이다. 기본적은 언어형태(문법, 통사론, 어휘 등)는 영어에 가깝지만, 한국어와 유사한 점도 적지 않다. 그래서 교육자 입장에서 매개언어인 러시아어를 조금만 학습하여 수업 중에 활용한다면 학생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격조사인데, 한국어의 격조사(이/가, 에게, 을/를 등)에 해당하는 문법성질이 러시아어에도 존재한다. 차이점을 들자면 한국어에서는 격조사의 선택이 체언에 위치하는 단어(명사)의 종성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데 반해, 러시아어에서는 단어(명사)의 성(性)에 따라 달라진다. 격조사를 통해 문장성분(주어, 목적어, 보어 등)이 정해지기 때문에, 어순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도 비슷하다.

중급과정에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해서 수업을 진행하자. 이를 위해서 학기 초에 한글자판 배열을 출력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자. 수업의 부교재나 과제 공유를 위한 모임을 온라인(SNS, 인터넷 카페)상에 개설하여, 한글 타이핑 속도 향상을 위한 동기를 제공해주자.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간단한 문장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데, 한글 타이핑 속도가 향상되면, SNS 상의 한국 친구들과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한국어 학습과 관련된 사이트들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데, 강사가 괜찮은 사이트를 추천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환경을 통해서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 한국 음식 체험.

기다려지는 퇴근

초급 과정의 학생들에게 내가 거의 유일한 한국인 모국어 화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업 이외의 활동에 대해 학생들이 초대할 때 응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식당이나 노래방에 같이 가기도 하며, 학생들 모두를 집으로 초대한 적도 있고, 소풍도 한 번 갔었다. 소풍을 같이 갔을 때는 알마티에서 어학연수 중인 한국 학생들을 초대하여, 한국 친구들을 사귈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가끔 학생들의 열정이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라 놀랐던 적이 있다. 지난 학기의 일이다. 여학생 중 한 명이 기준 점수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 여학생의 울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교육원에서는 매 학기 말에 시험을 실시하며, 시험 점수가 정해진 기준 이상이 되면, 수료증을 발급해준다. 그리고 다음 학기 등록시, 상급반에서 공부할 수 있다. 만약 시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수료증도 받지 못하고 다음 학기에 상급반에 진학할 수도 없다. 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수료증이 누군가에게는 울음을 참기 힘들 정도로 소중한 것이었나 보다. 그 여학생은 결국 재시험 결과가 좋아서, 현재 초급B반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사정(대학의 실습이나 회사의 출장)으로 1~2주 간 수업에 출석할 수 없는 학생 중 일부는 결석 기간 중의 진도와 과제에 대해 이메일로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나도 정말 귀찮은 생각 조금도 없이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게 된다. 역으로 내가 학창시절에 학업에 대한 이런 열정을 가지지 못했음에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일주일에 2번은 저녁 6시 퇴근 후, 저녁 식사도 생략하고 교육원으로 향할 때, 배고프기도 하고 가끔은 피곤하기도 하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섰을 때, 학생들이 나에게 보내는 뜨거운 열정은 그런 피곤함마저 잊게 만든다. 저녁반 학생들도 모두 나와 같이 일과시간에는 학업과 일로 찌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제도 착실히 하고, 수업시간도 빈틈없이 지키는 학생들에게 부족한 내가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수업 현장에서는 강사의 입장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학생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많은 것들을 배운다. 그래서 저녁 수업이 있는 화요일, 목요일 퇴근이 간절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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