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④] 한글, 또 다른 도약을 꿈꾸며
[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④] 한글, 또 다른 도약을 꿈꾸며
  • 용지선(한국어교사)
  • 승인 2015.01.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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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 편집자 주: 올해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총장 이동관)가 주최한 ‘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중에서 해외 한국어교육자들의 우수작품들을 서울문예대 육효창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의 협조를 통해 연재합니다.

용지선(Sydney Language Solutions 한국어 강사)

한글, 나의 모국과 정체성의 토양!

“We are one, but we are many. I am, you are, we are Australian.(우리는 하나. 우리는 다양해. 나는 그리고 당신, 우리는 모두 호주사람이에요)”

제가 호주에 이민을 와서 호주의 TAFE라는 교육 기관에서 6개월 동안 영어를 공부하던 수업 중에 함께 부르며 배운 노래 가사입니다. ‘I am Australian. 나는 호주사람입니다’라는 제목의 노래로 호주에서는 한국의 아리랑처럼 애국가는 아니지만 하나 되기 위한 자리에서 많이 부르게 되는 애창곡입니다. 저는 수업을 위해서 이 노래를 외우고 함께 웃으며 불렀지만 마음속으로는 떨렸고 ‘이게 뭐지? 나는 한국 사람인데, 내가 이 노래를 이렇게 배우고 불러야 하는가?’라며 언어와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습니다.

2009년, 저는 두 딸과 남편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왔습니다. 인생의 예정에 없던 이민이었지만 호주 시드니에서 저와 제 가족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이었던 두 딸은 호주 학교에 등록하였고 저는 영어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정착한 곳은 시드니에서 호주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지역이었는데 백호주의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곳이었습니다. 전교에서 각 학년에 한국 학생은 제 두 딸 뿐일 정도로 아시안 계열의 이민자들이 적은 곳이었습니다.

제가 시드니 새순교회의 한글학교 교사로 지원했던 이유가 바로 그 백호주의가 만연한 지역의 학교를 다니는 제 두 딸을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운전을 하다가 제 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러자 아이들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엄마, 저희는 한국 사람이에요? 아니면 호주에서 사니까 호주 사람이에요?” 아이들의 말을 듣고 운전을 하다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아이들도 제가 느끼는 문화의 충격, 언어의 충격, 그리고 정체성의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딸들이 학교를 다니며 한국이민자로서 본인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무시당하고 의시소침해지는 경험을 당하며 한국어로 말하는 것도 꺼려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호주에 정착해 살면서 많이 위축이 되었습니다. 정착 초기 당시의 제 자아상은 거의 ‘장애인’이었습니다. 장애인 등록증만 없다 뿐이지 영어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저의 모습은 정말 장애인 같았고 내 나라 한국을 떠나 말 안 통하는 외국에서 살려다보니 점점 자존감도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호주 이민 정착 과정을 통하여 저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존감과 한글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되었고, 한글은 그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저의 모국과 정체성의 토양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강사, 제대로 한번 해보자!

2011년, 시드니 대학에서 TESOL 석사과정을 마치며 저는 호주에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존 영어 수준만 구사할 줄 알던 39세 한국 아줌마가 호주에 와서 밤잠 못자는 노력을 하며 어렵게 졸업하게 되었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호주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Sydney Language Solutions라는 어학원을 알게 되어 한국어 강사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영어의 나라 호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제가 호주에서 호주인 누구보다 더 자신 있게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글학교에서 한국 이민자 중고등학생을 가르쳐 오던 저로서 한글을 외국인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 왔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 수업을 위해 일주일 내내 “Hello, everyone! 안녕하세요, 여러분” 첫인사부터 마지막 수업 내용까지 리허설을 하며 준비했습니다.

각종 국적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있는 교실에서 푸른 눈, 회색 눈, 밤색 눈 등 각종 다른 색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수업을 한다는 것이 정말 떨리고 울렁거렸습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한국어 교사로서의 긍지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한국을 동경하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즐기는 외국인들에게 제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책임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어 강사를 하다 보니 제가 한국어 원어민으로서 한국어를 잘하는 것과 한국어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른 일인 것을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모음과 자음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가장 효과적인 한국어 교수법은 무엇일까? 내가 지금 학생들에게 맞는 것을 전달하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찾아보고 준비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한국어 원어민이기 때문에 강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자격을 갖춘 한국어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 한국언어문화학과에 편입하여 2년 동안의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올해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외국인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였습니다. 무늬만 한국어 교사가 아니라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저를 움직이게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2시간만 내주세요. 오늘부터 한국어로 읽게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2시간 수업 시간이 끝나면 여러분들은 140자의 한글 낱자와 그로 이뤄진 수백 개의 단어들을 읽으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시간만 집중해 주세요!”

제가 일하는 어학원에서는 10주 과정의 한국어 초급 과정이 지속적으로 열립니다. 첫 날, 처음 보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한글의 우수성 때문일 것입니다. 수업 첫 날 모음 10자와 자음 14자를 배우고 익히면 그들이 연합된 140개의 낱자와 또 서로 결합된 수많은 단어들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수업에서 받침까지 익히게 되면 빨리 익히는 학생들은 본인의 이름을 첫 수업부터 쓰고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첫 수업에서 저의 자신에 찬 말을 들은 학생들은 반신반의하며 수업을 시작했다가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하루 배워서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자신을 보며 성취감에 느끼며 돌아가게 됩니다. 제가 일하는 어학원은 영어, 불어, 독일어, 중국어, 베트남어, 일본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들을 가르치는 랭귀지센터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어는 가장 인기 있는 과정이며 배우고 졸업하는 학생들의 성취도와 만족도가 가장 높은 학과로서 가르치는 교사로서도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업 시간에 저는 다양한 한국문화를 접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동요부터 시작하여 최근 K-pop, 한국 드라마와 영화, 재미있는 광고까지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며 관심분야와 맞는 부분이 있으면 수업과 연결시켜보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경음(ㄲ ㄸ ㅃ ㅆ ㅉ)과 격음(ㅋ ㅌ ㅍ ㅊ)은 영어가 모국어인 학습자에게 낯선 발음들이지만 “산토끼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동요를 한바탕 불러보다 보면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즐겁게 배울 수 있습니다. 이제 제 수업을 거쳐 가는 학생들이 수백 명이 되어 갑니다. 점점 책임감을 느끼며 한국어 교사로서의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한국 문화 전달자가 되다!

제 둘째 아이가 5학년이 되었을 때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전 학교와는 달리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아시아 문화에 대해 열린 마음이 있으셨고 학교 자체도 호주 백인 위주가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어 학생들 간에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고 편안했습니다.

호주 초등학교에서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호주 정부의 정책으로 ‘Harmony Day(연합의 날)’라는 행사를 매년 개최합니다. 각 학교의 교육 방향에 따라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 정도 축제와 같은 시간을 가집니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하모니데이를 일주일 정도 축제처럼 가지며 각자 민족의상을 입고 학교에 등교하기를 격려하고 부모님들까지 초대하여 모국의 문화를 서로 나누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지원을 했습니다. 늘 기죽어 학교를 다니던 아이를 격려하고 한국 문화를 알리고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큰마음을 먹고 준비를 하였습니다. 2년 동안 자원하여 학부모 교사로 참여했는데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해에는 젓가락 게임과 재기차기를 가르쳐 주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한번 해보니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입지 않고 묵혀둔 한복을 모아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여 열 벌 정도의 한복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아는 지인에게 장구도 빌렸습니다. 파워포인트를 준비하여 각종 영상자료와 사진을 통해 한복의 구조와 역사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딸이 장구를 치고 저는 아리랑을 가르쳤습니다. 준비한 한복을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입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반응이 놀라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제 아이 교실에서 시연한 수업이었는데 한번 하기 너무 아쉽다며 교장 선생님까지 오셔서 학교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다른 학년 학생들에게 시연을 보여주었습니다. 미리 아리랑 악보를 중국계 학생들에게 주어 아쟁 연주를 준비하게 도와주었는데 한국의 장구와 중국의 아쟁이 어우러져 모두 함께 아리랑을 부르는데 ‘정말 이것이야 말로 Harmony Day, 화합의 날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제 둘째 딸이 본인이 한국인임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평일에도 한복을 입고 학교에 가겠다고 얼마나 성화였는지 모릅니다. 이후에 제가 학교에 가게 되면 모두 저를 알아보며 ‘안녕하세요?’라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 오기도 하며 무엇보다 학교에 있는 한국 학생 모두가 대스타가 되었습니다. 정말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글학교와 호주 학교에서 여러 번 한국 문화 행사를 주관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하고 있는 어학원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하여 한국언어문화 행사를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신청자들에게 한국의 예절문화를 설명하고 전통 악기 장구를 치며 아리랑을 배우고 한국요리를 소개하고 직접 시연하고 함께 음식까지 나누는 상당히 긴 시간의 문화 행사를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부터 시작하여 매년 개최되는 이 행사는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한글, 저에게는 ‘도전’과 ‘꿈’입니다.

호주에 이민 온 지 이제 6년이 되어 갑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장애인이 된 것 같은 낮은 자존감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고, 늦게 시작한 공부를 따라 가느라 하루에 3~4시간밖에 못자며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나의 언어정체성, 민족정체성이 흔들리고 낮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언어와 문화 충격의 파도를 넘어가며 저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주눅 들어 기 펴지 못하고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한글학교 교사가 이제는 저의 꿈이 되었고 도전이 되었습니다.

한국인이어서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나눌 수 있어서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만나는 외국인 학습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국을 심는다는 마음으로 수업 시간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 때문에 또 다른 꿈과 도전이 생겼습니다. 기존 한국어 교재와 학습서로는 호주에서 교사를 하는 제게 부족하거나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제가 몇 년째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다듬어온 학습 자료들을 정식 한국어 교재로 출간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낯부끄럽지 않은 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글은 저를 항상 꿈꾸게 하고 있습니다. 이 가슴 벅찬 생기 넘치는 꿈과 도전이 전 세계에서 수고하시는 한국어 선생님들과 학습자들 모두에게 넘쳐 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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