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⑤] 한글의 위대함을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⑤] 한글의 위대함을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 전은주(미국 켄터키 렉싱턴 토요한국학교 교사)
  • 승인 2015.01.2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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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 수기 공모전> 장려상 수상작

※ 편집자 주: 올해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총장 이동관)가 주최한 ‘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중에서 해외 한국어교육자들의 우수작품들을 서울문예대 육효창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의 협조를 통해 연재합니다.

전은주(미국 켄터키 렉싱턴 토요한국학교 교사)

저는 미국 켄터키 주에 위치한 렉싱턴 토요한국학교에서 가장 어린 반을 맡아 지도하고 있는 한 교사입니다. 처음에 한국학교 교사를 지원하게 된 동기는 저의 둘째 아들을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3살이었던 둘째는 밖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엄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그야말로 아기 코알라 같았습니다. 아이가 한국 문화도 접하고, 한글도 배우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도 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국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아들은 학생으로 엄마인 저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엄마 곁을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아들 때문에, 저는 저의 아이가 속한 가장 어린 반인 3-4세반 담임교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저희 둘째 아이의 첫 한글 선생님이 된 셈입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한글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었기에, 한글 교사가 되어 어린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적인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날마다 영어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잘 가르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불확실한 마음으로 저와 아이들은 처음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와 처음으로 한글을 배우는 학생으로 만나서 한 반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시작이고 처음인 저에게는 가장 어린 반을 맡아 교실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부터가 큰 모험이고 힘든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의 아이와도 같이 엄마의 품에서 아직은 떨어지고 싶지 않아 우는 아이, 보채는 아이, 시도 때도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는 아이, 가르치려고 하면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은 아이, 순간순간 엄마를 찾는 아이, 교실 안 장난감만 바라보는 아이…… 첫 날 하루 3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져 본 적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이지 저의 아이를 엄마 품에서 떼어 놓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교사의 일이 몇 주 동안은 너무나도 힘들게만 느껴졌습니다.

우왕좌왕하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제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노래로 배우는 한글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의 음에 한글 닿소리와 홀소리를 결합해서 가사를 붙여서 부르는 노래인데, “가나다 노래”라고 제목을 붙여 함께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을 때, 울려고 할 때, 뭔가 다른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려는 찰나에 저는 무조건 “가나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면 놀랍게도 아이들은 저에게 집중했습니다. 부모님을 찾으며 울먹이던 아이도, 장난감에 관심을 갖던 아이도 모든 것이 서툴러 안절부절 못하는 저에게 눈길을 주고 뭔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아기 새들이 어미 새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처럼 그랬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나다 노래”는 우리 반 수업을 시작할 때부터 불리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래로 매주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노래로 시작된 한글 수업이 3학기를 지났고 저는 지금도 한글노래를 부르며 수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의 집중을 요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함께 부른 한글노래인데 이제는 이 노래로 인해서 아이들의 한글학습이 그 속도와 깊이를 더해 가고 있음을 저는 느낍니다.

학기를 거듭하면서 한글노래와 한글학습은 이제 그 맥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아이들과 함께 학습하고 경험해온 내용들을 다음과 같은 학습방안으로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학습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학습방법

첫째, 학습내용에 관련된 내용을 노래로 부르게 합니다. 노래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가장 쉽고 빠르게 내용에 집중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가부터 하까지의 낱자들을 나열하는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도록 합니다. 수업 중간 중간 가나다 노래를 계속 반복합니다. 아침에 체조를 할 때, 그림을 그릴 때, 간식을 먹을 때, 쉬는 시간에도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서 생활할 때도 계속해서 불렸습니다. 이렇게 가부터 하까지의 낱자들을 배열한 노래를 계속해서 함께 부른 이유는 글자인식의 틀을 머릿속에 넣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반은 글자들을 문법적으로 쪼개어 설명하거나 학습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처음부터 낱자 14자(가부터 하까지)를 순서에 맞추어 노래로 부르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학습을 통해 저희반 아이들은 기본 14자 낱자들을 모두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수학의 공식처럼 앞으로 있어질 또 다른 글자들을 위한 인식의 틀로서 작용을 합니다.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파하

둘째, 노래로 만들어진 글자 인식의 틀은 공식으로 각각의 글자들을 그림처럼 이해하게 합니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14개 낱자를 제대로 인식한 어린이들은 그 다음 14개의 낱자를 빠른 속도로 다시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음 단계에서 저희 반은 거부터 허까지의 낱자들을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자들을 학습할 때 저는 모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학습하기 보다는 마치 그림의 모양이 바뀌듯이 모음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글자의 모양이 변하면 글자의 소리도 바뀜을 학습했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 기부터 히까지의 낱자 14자를 더 보충해 주었고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글자의 모양을 인식하고 소리의 변화까지도 빠르게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기존 글자인식의 틀에 14개의 낱자들을 보충해 줌으로써 빠른 한글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인식된 학습내용 안에서 낱말을 만들고 문장을 만들고 글을 만들어 학습함으로써 학습자들의 학습 성취도를 높여주었습니다. 처음 단계에서 학습한 ‘가부터 하까지’의 낱자들을 이용해 그 다음 학습에서는 낱말들을 만들어 보도록 했습니다. 가부터 하까지의 낱자들로 만들 수 있는 낱말들은 10여개나 됩니다.

예) 가마, 나라, 라마, 마차, 바다, 사자, 아가, 자라, 파마, 하마

아이들은 이미 낱자들을 잘 인식한 단계인 뒤라 위 낱말들을 어려움 없이 읽어낼 수 있게 됩니다. 다음 단계로 낱말들을 모두 읽고 인식한 아이들에게 이제는 위 낱말들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만들어 보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1)아가가 하하하 하자, 하마가 하하하, 라마가 하하하 하자, 사자가 하하하
예2) 아가가 가마 타자, 하마 사자 라마가 하하하하
아가가 마차 타자, 하마 사자 라마가 하하하하
예3) 사자 사자 바나나 사자!
아가 아가 바나나 사자!

이렇게 아이들이 낱말을 읽고 문장을 읽어가면서 학습자들은 스스로 글자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학습에 대한 자신감과 성취감은 다음에 이어지는 학습효과를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계속 이어 학습되는 ‘거부터 허까지의 낱자’ 그리고 ‘기부터 히까지의 낱자’들을 모두 어렵지 않게 인식한 아이들은 이 낱자들에서 만들어지는 아주 많은 낱말과 문장 그리고 간단한 글들을 스스로 읽고 이해하며 글 읽기에 흥미를 보였습니다.

저희 반은 이러한 학습방법을 토대로 받침이 없는 모든 글자들을 학습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처음 단계에서는 받침이 없는 글자들을 학습하게 되지만 이후의 단계에서는 받침이 있는 글자들도 동일한 방법으로 학습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학습 경험은 3학기 동안 계속적으로 같은 방법을 적용시켜 가면서 부족하나마 얻게 된 결과입니다. 저의 이 학습경험을 지속적으로 계속하게 된 이유는 저희 둘째 아이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글자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어느 날 벽에 붙여 놓은 글자카드를 혼자서 읽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저 가부터 하까지, 거부터 허까지 그리고 기부터 히까지의 낱자들을 노래로 가르쳤을 뿐인데 아이는 그 외에 받침이 없는 글자카드를 모두 유추해 읽고 있었습니다. 지금 저희 반 아이들도 동일하게 글자들을 어렵지 않게 인식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습경험을 통해 저는 아주 어린 학습자들이라 할지라도 글자에 대한 인식의 틀이 형성된 뒤에는 스스로 글자를 유추해 읽어내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이기에 앞서 두 아이의 엄마로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글 교육이 얼마나 절실히 요청되는지를 느끼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그리고 좀 더 빨리 한글을 학습할 수 있을까 지금도 계속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한글을 빠르고도 쉽게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출판되어 나오는 다양한 교재들에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교재들과 교육 자료들 모두 우리 학습교실 안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것도 우리의 교실 상황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말입니다. 다만 자신의 교육실정에 맞도록 재편성하고 보충하고 보완해 나가면서 더 나은 교육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학교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보조 교재들을 많이 참고 합니다. 수업의 효율성을 위해 여러 가지 동화나 이야기들을 읽어주기도 하고 수업과 관련한 활동들을 위해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재나 보조 자료가 저희 수업의 중심이 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늘 수업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글자 노래를 부르며 글자에 대한 인식의 틀을 확실하게 심어주려는 것과 그 인식의 틀을 중심으로 글자 인식의 폭을 점점 더 넓혀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너무 어리다고 생각되어 함께 무언가 배워나가는 것이 힘들겠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힘차게 한글노래를 부르며 한글 차트를 읽어나가는 것을 볼 때 저는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이제는 교사인 제가 한글의 우수성에 감동을 받고 그 깊이를 계속 탐구하고 연구하고 싶어집니다.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우리나라가 지구에 있는 많은 나라들 중에 아주 작은 나라, 자원이 많이 부족한 나라, 분단의 아픔과 긴장을 안고 있는 나라인 것을 더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그토록 자랑스러운 것은 그 체계와 우수성에 있어서 그 어느 나라 언어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말 “한글”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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