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아프면 아프다고 큰 소리로 말해요
[Essay Garden] 아프면 아프다고 큰 소리로 말해요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5.01.2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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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머물고 있는 딸아이가 어머니의 이미지를 닮은(젊은 날의 모습에 나의 지인들이 그리 말하곤 했다) 탤런트 김자옥 씨가 오늘(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며 알려주었다. 가지가지 역할로 분장하여 유능한 배우로 인기를 끌었기에 더 이상 만날 수 없어 아쉬운 분이었다. 게다가 3월 아들의 결혼식을 앞두었고 또 나이가 창창한 남편을 남겨두었으니 안타까움은 두 배가 된다. 안으로만 깊이 삭혔던 환자 본인의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

그렇게 그녀가 떠난 후 ‘꽃보다 남자’라는 유럽 로케 방송을 보며 난 느끼는 게 무척 많았다. 방송국과 두 달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아픈 몸을 이끌며 유럽을 다니던 책임감이 철저한 자옥 씨였기에 존경심마저 일어났다. 이기적이거나 환경에 약한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하지만 그는 죽기 전에 할일을 기어코 해내고 떠난 사람이었다.

마지막이 된 ‘무릎 팍 도사’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오히려 영광스럽다는 말로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긍정적인 생각과 말로 강호동 씨와 대화하던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언젠가 누구나 맞이해야 할 죽음이라는 처절한 문제를 놓고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함께 방송을 보던 우리 그이가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를 높였다. 자옥 씨가 바보처럼 자기병에 대하여 너무 참았다는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녀야지. 왜 대장암에 걸려놓고도 자꾸 괜찮다고 말하느냐”며 그녀의 참을성을 신랄하게 꼬집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날 암 환자인 줄 전혀 모르던 남편도 자옥 씨처럼 늘 나에게 괜찮다고만 말했었다.

두렵기도 했겠지만 평소에 병원에 가는 걸 그이도 싫어했다. 곁에서 관찰하던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증세가 암 같으니 병원에 가보자고 강제로 밀어붙였기에 수술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장암에서 살아난 남편은 이십 년 넘게 살고 있다. 물론 조기 발견도 중요했지만, 일 년 동안 견디기 힘든 항암주사를 매달 맞았기에 조금씩 회복이 되어간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려고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병을 감추려고 한다.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면 오히려 지혜로운 조언의 혜택을 여러 가지로 받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른다. 지식은 컴퓨터로 배우겠지만,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빛나는 지혜는 우리가 상상할 정도가 아니다. 1950, 60년 대 우리들 어린 시절은 병원 시설도 엄청 부족했던 환경인데도 잘도 살아남았다. 경험으로 배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민간요법인 치료와 명의로 알려진 한의사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

가곡 ‘남모르게 흘리는 눈물’이라는 처절한 노래처럼 유럽의 한 성당에서 기도한 후, 눈물을 훔치던 자옥 씨의 쓸쓸한 모습. 김자옥씨의 이야기가 컴퓨터에 나오면 나는 보고 또 본다. 미래에 다가올 나 자신의 죽음을 실감 나게 느끼며 일상에서 일어나는 욕심을 잠시라도 덜어내고 싶어서이다. 황새 다리처럼 길게 뻗어 남의 흉내를 내어 걷지 않아야 한다며 다짐하고 싶어서이다. 절대 억지로 되지 않는 우리 인생, 물 흘러가듯이 순리에 따르며 살자고.

공자님의 말씀처럼, 지천명이 지나며 나도 조금씩 조금씩 세상의 거친 삶에 철이 들어갔다. 뜻밖의 고혈압과 함께 알 수 없는 병환이 찾아왔지만, 기적 같은 지혜로 다시 생명을 찾았다. 진정으로 모든 걸 털어버렸더니, 나도 모르게 새로운 삶의 여린 싹이 파랗게 물오르고 있었다.

얼마 전 유명 대학을 나온 기업의 상무까지 지낸 가장이 3년을 방황하다가 온 가족을 끔찍하게 살해한 뉴스를 보았다. 괴로우면 괴롭다고 말하여 가족이 함께 솔직하게 상황을 의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어리석게도 근사한 직위와 집과 자동차가 무슨 명예라고 사랑했던 가족의 목숨과 그토록 허망하게 바꿀 수가 있단 말인가.

살다 보면 돈도 직업도 잃어버리지만, 소중한 정신과 몸은 절대로 다시 찾을 수가 없지 않은가. 살려고 발버둥 쳐도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안타까운 우리 인생인데, 세상이 왜 이렇게 바보스럽고 험해지는지.

나는 지난해 세 번째 책을 출간한 이후로 무리를 했는지 비실비실 병원 신세를 참 많이 졌다. 수년간 앉아서 하는 컴퓨터의 글쓰기 작업으로 허리를 무리하게 사용하여 관절에 큰 병이 난 것이다. 너무 아파서 여기저기 알렸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라고. 그렇게 말하니깐 여러 지인들이 ‘이렇게 해봐요, 저렇게 해봐요’하면서 반가운 조언들을 들려주었다. 귀를 기울이며 도움을 청하며 즐겁게 배우고 있다.

자옥 씨처럼 남에게 폐를 안 끼치려고 강한척하거나 숨기려 들지 말고, 몸도 마음도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히 큰소리로 주위에 널리 알리는 게 좀 더 현명한 삶의 방법이 아닐까.

* 최미자의 미주문학서재 www.mijumunhak.com/mi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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