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코리안] 아르헨티나 방영, 한류드라마의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
[비바 코리안] 아르헨티나 방영, 한류드라마의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
  • 정길화(MBC 프로듀서)
  • 승인 2015.02.0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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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길화 MBC 피디.
2015년 1월부터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하지원과 현빈이 나오는 한국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방영되고 있다. ‘한류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가 좋다’는 얘기를 들어본 사람은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무술감독을 꿈꾸는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과 ‘까칠한’ 백만장자 김주원(현빈)의 영혼이 서로 바뀌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시크릿 가든>. 2010년 11월에 시작한 이 드라마는 방송 수회 만에 인기 대폭발로 세계 10여 개국에 선판매되더니 이듬해 미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이후 파나마, 칠레, 우루과이 등 일부 남미 국가에도 방영이 되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다르다. 한때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 살았던 그 영화(榮華)에 대한 기억으로 똘똘 뭉친 아르헨티나. 그들의 문화적 자부심은 가히 하늘을 찌른다. 브라질과 함께 남미의 2대 강국이고 그들 스스로가 ‘텔레노벨라(telenovela 남미에서 TV드라마를 일컫는 말)’를 제작해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다.

필자도 2011년에서 2013년 사이 MBC 중남미지사장겸 특파원으로 부임해 있는 동안 <대장금>, <내조의 여왕> 등 유수한 MBC 드라마를 판매해보려다 문전박대(?)를 당한 쓰린 경험이 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제작된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백인 중심의 인종 구성, 유럽 지향의 국민정서로 상당히 보수적이고 진입장벽이 높은 곳이다.

▲ 미스 아르헨티나 선발대회에서 참가자들이 K-POP 노래와 댄스를 하는 장면.
이번에 <시크릿 가든>의 방영이 있기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문화원(원장 이종률)의 활약이 컸다. 문화원은 그동안 K-POP 페스티벌을 개최해 남미에 한류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문화원은 2010년부터 ‘중남미 K-POP 경연대회’를 국제 행사 규모로 절찬리에 매년 개최했다. 또 최근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국영화제’도 개최하면서 한류에 대한 관심을 부단히 높여왔다. 이종률 원장은 그야말로 남미의 한류 전도사다. 그런 그가 못 이룬 꿈이 아르헨티나에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이었다.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 그렇듯 한류 드라마가 방송되면 한국의 국가 브랜드와 한국기업, 교민의 이미지 상승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원장도 나처럼 아르헨티나 방송사에서 냉대와 괄시를 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방송콘텐츠는 현지 방송사의 프로그램 구매 및 편성 담당자를 설득해야 한다. 그들은 대부분 보수적이다. 시쳇말로 아쉬울 게 없는 ‘슈퍼 갑’이다.

막히면 돌아가라. 이종률 원장은 한국과 한류 문화에 충성도가 높은 아르헨티나의 K-POP 팬들의 힘을 자연스럽게 빌렸다. 한류 팬클럽의 멤버들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한국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방송해 달라는 청원 운동(Queremos ver Secret Garden en la TV “우리는 ‘시크릿 가든’을 TV에서 보고 싶어요”)을 전개했다.

▲ 시크릿 가든 포스터.
말하자면 바람을 잡고 멍석을 깔아주면서 외곽을 때린 것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청원을 시작한 2014년 9월 이후 3개월 만에 무려 1만3,000여명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 한류 팬클럽 멤버들은 UCC로 패러디를 제작하는 등 재기발랄한 활동을 펼쳤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했던가. 마침내 아르헨티나 방송관계자가 움직였다. 방송은 토요일 밤 8시 황금시간대다. 이번에 <시크릿 가든>이 방송되는 채널은 아르헨티나 최대 미디어 기업인 그루포 클라린(Grupo Clarin)이 운영하는 케이블인 마가진 TV. 그루포 클라린은 발행 부수 1위 일간지 클라린(Clarin)과 최대 민영방송 카날 13(Canal 13) 등을 소유하고 있다. 마가진 TV는 중남미 각국의 드라마와 영화, 음악, 오락, 스포츠 등 거의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을 방영한다(연합뉴스).

<시크릿 가든> 방영을 결정한 마가진TV의 편성본부장은 에두아르도 페르난데스(Eduardo Fernandez)다. 이종률 문화원장은 이미 4년 전에 페르난데스 본부장을 찾아가 한국 드라마의 방송을 추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때 이 원장은 한류 드라마의 우수성과 중남미 각국에서의 성공 사례를 설명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방영을 권유했다. 그러자 페르난데스 본부장은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의 사례만 가지고 아르헨티나와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면서 거절했었다고 한다.

간단히 말해 “그라시아스 페로 토다비아 노(Gracias pero todavia no)”이다. 이 말은 “감사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 라 나시온 지 기자 나탈리아 트루젠코(오른쪽) 방한 당시 사진.
그로부터 4년.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일단 예의 ‘중남미 K-POP 경연대회’가 해마다 개최되면서 K-POP이 무섭게 확산되었다. 2013년 12월 유력신문 라 나시온(La Nacion)지의 N. 트레젠코 기자는 한국 르포 후 특집기사에서 “한국의 한류는 다르다. K-POP은 중독성이 강하다. 한류는 아르헨티나라에서 성공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녀가 한국에 취재 왔을 때 필자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K–POP뿐만 아니라 한국의 드라마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2014년 12월에는 아르헨티나의 유력 지상파 TV인 카날 트레세(Canal 13)가 시청률 30%의 오디션 프로그램 ‘쇼 매치-꿈을 위해 춤춘다’에서 K-POP 특집을 내보냈다. 이렇듯 가랑비에 옷 젖듯 아르헨티나의 한류가 심화되었다.

그렇게 누적된 결과가 이번의 <시크릿 가든> 방영으로 나타난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한류 콘텐츠 비즈니스를 해본 필자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안다. 파나마, 콜롬비아, 페루, 칠레 등 태평양 해안을 두고 있는 국가와는 달리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대서양 연안 국가는 문화적 보수성과 제도의 장벽으로 한류 전파가 여의치 않다.

이들 국가는 빨리빨리식 한탕주의가 아닌 시간과 인내의 투자가 필요한 곳인데 문화원이 바로 그것을 해낸 것이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으면 지사를 철수하는 속전속결 방식으로는 남미에서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사례는 잘 보여준다.

물론 아직 만족할 단계는 아니다. 이번 <시크릿 가든>의 경우 채널도 지상파는 아니고 케이블이다. 또 유료 판매가 아니고 무상 방영 조건이다. 이 드라마가 아르헨티나 시청자들에게 어필해 시청률을 얼마나 기록할지도 미지수다. 마가진TV의 페르난데스 본부장은 “사실 방송사 차원에서는 상당한 모험이지만 청원 운동의 열기를 믿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이 드라마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 제2, 제3의 한국드라마가 론칭될 수 있을 것이다. <시크릿 가든>은 한국 방송콘텐츠의 맛을 보여주는 마중물의 역할을 할 것이 기대된다. 아르헨티나의 한류 드라마는 이제 첫발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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