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⑧] 미국에서 캄보디아까지 한국어교육의 열정을 뿌리며…
[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⑧] 미국에서 캄보디아까지 한국어교육의 열정을 뿌리며…
  • 박사라(캄보디아 라이프대학교 한국어과)
  • 승인 2015.02.1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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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 수기 공모전> 입선작

※ 편집자 주: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총장 이동관)가 주최한 ‘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중에서 해외 한국어교육자들의 우수작품들을 서울문예대 육효창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의 협조를 통해 연재합니다.

박사라(캄보디아 라이프대학교 한국어과 재직중)

1. 한국어 교육에 첫 발을 내딛다.

한국어교육에 발을 들여 놓은 지도 어느덧 4년 반이란 시간이 흘렀다. 제일 처음 한국어 교육이란 것을 가까이서 접한 때는 2001년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의 행정직원으로 근무할 때, 한국어 어학당을 접하게 되면서였다. 한국말을 배우러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 그리고 재외동포들을 보면서 한국어가 얼마나 세계적이고 한국 문화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새삼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당시 외국어교육부 직원으로 있었는데, 한국어교육부에 지원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생길 정도로 한국어를 교육하고 한국 문화를 전하는 일들은 재미있고 보람되게 보였다.

그 후, 나는 2007년에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미국 동부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같은 교회분의 소개로 트라이앵글 한글학교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 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2. 어려도 할 수 있다! 트라이앵글 한글학교의 만3세반

트라이앵글 한글학교에서는 만 3세인 재미교포 아이들 반과 미국인 성인반을 가르치게 되었다. 만 3세가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 처음에는 그냥 유치원 선생님 역할 정도가 되겠거니 생각 했다. 한국 아이들을 생각해 볼 때, 미취학 아동이 만 6세 이하고, 보통 취학 조금 전에 한글을 공부하니까 만 3세는 어려도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주일에 고작 한 번 있는 세 시간의 수업은 별로 효과적일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곧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은 “가, 나, 다, 라, 마, 바, 사…”를 크게 따라 외치며 열심히 따라와 줬고, 결국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꼬맹이들이 말이다. 그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한국 동요와 한국 놀이도 가르쳤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한국동요 CD를 틀어주고 한 시간에 한 곡씩 배웠는데, 아이들도 재미있어하며 처음 들어보는 한국 동요를 힘차게 따라 불렀고, 한국의 재기차기, 윷놀이, 숨바꼭질, 꼬리잡기 등의 한국 놀이 시간에도 숨이 넘어갈 듯 까르르 웃어가며 재미있어 했다.

물론 어린 아이들인지라 서툴고, 제대로 된 발음은 아니었지만 한국의 것을 접하며 맘껏 웃음을 토해내는 재미교포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의 말과 글을 넘어서 한국의 문화와 정신도 조금이나마 심어 주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그래, 아이들은 아이들 수준에 맞춰서 한글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면 되는구나!’ 미국 한글학교에서의 만 3세반 경험은 나에게 한국어 교육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도 할 수 있으니 배우고자 하는 열정만 있다면 한국어를 학습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다.

3. 드라마로 보는 한국 역사! 트라이앵글 한글학교 성인반

나는 당시 미국인들로 구성된 성인반도 맡았다. 이 반은 1, 2교시에 한글을 배우고 나서 3교시에 각자가 관심 있는 것을 선택하여 수강하는 특활반 같은 것이었는데, 그들은 어느 정도 한국어를 배워온 사람들이었고, 성인들이라 그런지 더 고차원적인 한국 문화에 대해 알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당시 한국에서 인기 있었던 “선덕 여왕”이라는 사극 드라마를 통해 그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그 드라마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 줄거리와 더불어 그 시대의 옷차림, 역사, 당시의 제도와 정치, 옛 말투까지도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배울 거리가 충분했다.

먼저 첫 시간에 전체적인 한국 역사와 시대의 흐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둘째 시간에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삼국 시대와 선덕여왕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설명을 해 주고는 드라마 속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서는 너무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등장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각 신분별로 쓰는 말투가 다르고, 궁에서 쓰는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등장 했으며, 골품제도나 화백회의 등의 용어들을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 하는 점들이 그들에게 조금 벅차게 받아들여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 줄거리를 위주로 진도를 나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수업 계획을 수정했다. 각각의 용어가 아닌 전체 흐름을 이해했는지 학생들의 입을 통해 들어 보았다. 다행히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었다. 한글 자체를 배우는 반이 아닌 문화를 배우는 반에서는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용어나 제도 등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시대적 분위기와 역사를 이해하고 흥미를 느끼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도 점점 내용 전개에 빨려 들어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뒷내용이 궁금해서 기다리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들의 대부분이 미국의 평범한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이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한국 드라마 수업을 통해서 자신과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될 지도 모르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분명히 더 많이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을 알리고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조금 뿌듯해지는 시간이었다.

트라이앵글 한글학교에 있을 때, 재외동포재단에서 “재외한국인 한국어 교원 양성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학교로부터 듣고 신청을 해서 이수하게 되었다. 비록 온라인 강의였지만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는 내내 ‘왜 진작 이런 수업을 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을 이수하고 나니 눈이 뜨였다.

한국어를 가르치려는 사람에게는 정말 한국어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는 부족하니 더 많이 배워서 양질의 교육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래서 그 즉시 한국어 교사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무사히 자격증을 취득했다.

4. 캄보디아 라이프 대학교에서의 흥미진진한 ‘한국문화’ 수업

트라이앵글 한글학교에서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또 다른 나라, 캄보디아로 가게 되었다. 캄보디아의 시하누크빌에 위치한 4년제 종합대학인 라이프 대학교 한국어과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너무나 설레었다.

첫 수업은 ‘한국문화’였는데, 수업 전날까지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였고 들뜬 마음에 잠도 못 이루었다. 캄보디아는 아직까지 교육시설이 미약해서 교실에 영상자료를 볼 수 있는 스크린도 없고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는 등 매우 열악하다. 그래서 첫 날에는 한국을 소개할 대표적인 것들을 노트북에 담아 들고 갔다. 세종대왕, 애국가, 태극기 등을 소개하려고 준비해 갔다. 그런데, 너무나 실망스런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교실에는 단 한 명의 학생만 덩그러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첫날이라 그렇겠거니 하고 열심히 수업을 했지만, 두 번째 수업에도 단 한 명의 학생만 출석했고, 세 번째 수업이 되자 두 명의 학생들이 더 왔다. 그동안 왜 안 왔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학생들 너무나 태연히 “바쁘면 못나올 수 있는 거 아니에요?”라는 식으로 답했다. 나중에 다른 교수님들께 여쭤보니 그게 이곳 문화라고 했다. 나는, 일단 수업보다도 학생들에게 한국어 공부의 중요성을 심어주고, 한국어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에게 한국어과에는 왜 오게 되었는지, 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재미있는지 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국어 통역관이 되고 싶다고 했고, 한국어는 너무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하, 그렇다면 이 학생들에게는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야겠구나!’ 한국어가 재미있고 한국 문화가 멋지다고 느껴질수록 학습의욕이 높아질 것이라 판단하고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재미있게 느낄지 연구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칠 때는 무척 피곤해 하던 학생들이 한국의 가수와 배우들을 소개할 때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바로 이거다!’ 나는 노트북 속에 담아갔던 수많은 역사자료와 문화재 등을 보여 주기를 잠시 보류하고, 한국 가수들의 노래 중에 가사가 건전하고 부르기 쉬운 노래를 선정해서 가르쳐 주고, 학생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코미디 영화를 선택해서 보여 주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수업에 활기가 생겼다. 자기네들끼리 웃고 박수를 치며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한국 음식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의 이런 반응은 한국문화에 대한 또 다른 관심의 표현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큰 맘 먹고, 다음 시간에 한국 음식을 같이 만들어 먹자고 했다. 내가 선택한 메뉴는 ‘해물 김치 부침개’였다. 각종 해물을 듬뿍 넣고 한국의 신김치를 썰어 넣어 만드는 ‘해물 김치 부침개’의 맛은 과연 내 두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게 할 정도로 맛있었다. 내친 김에 남은 김치에 밥을 볶고 김가루를 뿌려 김치 볶음밥을 만들어 먹였다. 학생들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바쁘게 숟가락을 움직였다.

그 이후부터 학생들이 바뀌었다. 나태하고 흥미 없어하던 수업 태도에서 강의실에 들어올 땐 먼저 인사를 하고 신나게 달려 들어와 앉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수업 내내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가끔 친근한 미소도 지어 주었다. 우리의 한류 문화 뿐 아니라 역사와 전통과 현대 문화까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그들 앞에서 나는 마치 한껏 신난 날다람쥐처럼 즐겁게 수업했다.

그전까지 캄보디아의 한국어과 학생들은 그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교육수준이 낮은 캄보디아라는 나라에서 대학을 나오면 취업을 더 잘 할 수 있고, 한국의 많은 회사들이 캄보디아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그저 한국어라는 도구를 택한 것뿐이었다.

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먼저 한국이라는 나라에 매력을 느끼고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적극적으로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5. ‘한국어 발음’ 수업과 대망의 한국어 경연대회

나의 두 번째 수업은 ‘한국어 발음’이었다. ‘경음화’, ‘유음화’, ‘구개음화’, ‘ㄴ첨가’ 등 이론적인 것은 대체로 이해했지만, 캄보디아 특유의 발음으로 인해 한국어를 말할 때도 캄보디아식으로 발음하는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래서 해당 시간마다 칠판에다 교재에 나오는 단어들을 모두 적고 먼저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이것을 소리 나는 대로 캄보디아 문자로 적어보라고 했다. 어떤 단어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이 일치 하는데, 어떤 단어는 표기가 천차만별이었다. 그런 단어들을 모아서 다시 칠판에 적고, 발음을 시켜 보니, 캄보디아에는 없는 발음이라 어려운 것도 있었고, 미묘한 차이에 따라서 학생마다 다르게 들었던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이 하기 어려운 발음 훈련을 시키고 나니 학생들은 평소에 말 할 때도 배운 단어가 나오면 발음에 신경 쓰면서 말하곤 했다.

또, 몇 편의 한국 시를 외우게 해서 발음 연습을 시켰다. 한 사람씩 앞에 나와서 시낭송을 했는데, 틀린 발음을 할 때는 앉아 있는 학생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도 제대로 된 발음과 잘못된 발음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라이프 대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한국어 경연대회를 개최한다. 3가지 경연이 있는데, 첫 번째는 TOPIC, 두 번째는 한국 노래, 세 번째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다. 이 대회는 우리 학교 학생뿐 아니라 한국인이 아니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회였다. 나는 ‘한국어 발음’ 수업에서 가장 우수한 실력을 보였던 ‘쌈싸리’라는 학생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는데, 이 학생이 대회의 우승자가 되었다. 각 분야의 우승 상금도 많이 걸려 있어서 경쟁이 치열했지만, 싸리의 자신감 있는 태도와 좋은 발음에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많이 주셨다.

6. 가르치며 사랑하며

나는 지금도 캄보디아의 라이프 대학교에서 한국어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벌써 2년 하고도 6개월이 흘렀다. 처음 가르쳤던 학생들은 이미 졸업했고, 신입생들도 많이 들어왔다. 지금, 더 할 나위 없이 신명나게 수업하고 있고 또, 학생들에게 제법 인기도 있는 한국어 선생이 되었다.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실감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국어과에 온 학생들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하게 보일 수가 없다.

한국어 교사가 되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 거주하며 타문화권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지라도,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전해 줄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언젠가 우리 대학교의 캄보디아 학생들이 나에게 배운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멋지게 활약할 그날을 기대 하면서 나는 오늘도 이곳 낯선 땅 캄보디아에서, 가르치며 사랑하며, 그렇게 한국어 교육자로서의 보람된 길을 한걸음 또 한 걸음 꿋꿋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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