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⑨] 한국어 공부의 왕도(王道)
[한국어교육 체험수기⑨] 한국어 공부의 왕도(王道)
  • 주동완(미국 뉴욕)
  • 승인 2015.02.2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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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 수기 공모전> 입선작

※ 편집자 주: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총장 이동관)가 주최한 ‘제5회 국내 및 해외 한국어 교육자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중에서 해외 한국어교육자들의 우수작품들을 서울문예대 육효창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의 협조를 통해 연재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하여 이집트를 지배한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성질이 좀 급한 사람이었나 보다. 하루는 그의 스승인 유명한 기하학자 유클리드의 강의를 듣다가 ‘왕만 손쉽게 배울 수 있는 비결이 없냐?’고 물었다. 이에 유클리드는 “학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There is no royal road to learning.)”라고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이런 문구 하나 책상 머리맡에 붙여 놓고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그리고 ‘느려도 황소걸음(Slow and Steady)'이란 구절도 옆에 붙여 놓고, 배우는 교과목들에 대해 하루하루 꾸준히 기초 쌓기에 여념이 없었을 거다. 그런데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왕도’를 찾아주겠다는 각종 학습도구 상품이나 강사들의 그럴 듯한 선전이 넘쳐나고 ‘왕도’를 좇으려는 학생들은 그러한 상품들과 강사들을 찾아다닌다. 결과는 不問可知, 물어보나 마나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을 하다가 1985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뉴욕시립대학원의 사회학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인 어느 봄 날, 뉴욕대학교(NYU)의 평생교육 프로그램(Continuing Education Program)에서 한국어 강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당시 뉴욕대 한국어반은 초급, 중급 그리고 속성반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특히 국어를 좋아해서 교과서에 있는 시와 시조 그리고 향가를 비롯하여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등 교과서에 인용된 고문들까지도 거의 모두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어를 정식으로 가르쳐 본 경험은 없었다. 그것도 외국인들한테 한국어를 영어로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었다.

뉴욕대의 평생교육 프로그램 디렉터는 내가 제출한 이력서에서, 한국 문교부 장관 발행의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있다는 점과 ‘한국학’으로 석사를 마쳤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모양이었다. 여러번에 걸친 인터뷰 후에 가을학기부터 시작되는 속성반(accelerated course)을 맡으라는 통보와 함께 Francis Y.T. Park이 쓴 <Speaking Korean>책 I, II권을 주었다. 하지만 미국 대학교 프로그램의 선생이 되었다는 기쁨은 잠시였고 ‘어떻게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하나’하는 내 고민이 시작됐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다양한 한국어 교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유용한 교구나 보조자료들도 별로 없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해서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없어서 2시간 동안 계속 강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도 속성반이니 초급반과 중급반과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되었다. 주변에 상의할 친구도 없었고 여쭈어 볼 선생님도 안 계셨다. 정말 난감했다. ‘괜히 신청했나?’하는 후회도 되었다. 여름 내내 학교로부터 받은 한국어 교재를 가지고 씨름 하면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쉽고도 재미있게 가르칠까?’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로부터 ‘잘 가르치는 한국어선생님’이라는 명예를 얻을 꿈만 꾸었다. 하루하루 개강 날은 다가오는데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려니 입안이 마르고 먹은 게 소화도 되지 않았다.

개강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고등학교 때 나의 좌우명으로 삼고 대학 입시 공부를 했던 유클리드의 명언,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나는 “바로 이거다!”하고 쾌재를 부르고 곧장 커다란 도화지와 까만색과 빨간색의 매직펜을 사서 몇 장의 괘도를 그렸다. 그리고 개강하는 날 보무도 당당히 맨해튼 다운타운에 있는 뉴욕대 교실로 들어갔다.

등록학생은 모두 15명이었다. 한국계 학생이 8명, 미국계 외국인 학생이 7명이었다. 한국계 학생들은 대부분 맨해튼에서 일하는 의사, 변호사 등 젊은 전문인들이 대부분이었고 미국계 외국인들은 한국 기업체 뉴욕지사에서 일하는 비서나 직원들 그리고 미국 초, 중, 고교의 선생님들이었다. 한인환자나 고객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한국계 직장에서 근무 또는 한국인 상사를 잘 모시기 위해서 그리고 근무하는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많은 한인 학생들을 이해하고 더 잘 도와주기 위해서 등등 나름대로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었다. 간단히 내 소개를 한 후에 먼저 학생들에게 이 반은 속성반이므로 진도가 빠르고 매주 쓰기숙제가 있을 것이니 이를 하기 힘든 학생은 초급반이나 중급반으로 가라고 했다. 즉석에서 3명이 반을 옮겼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준비한 괘도 하나를 칠판에 붙였다. 유클리드의 명언을 영어로 쓴 것이었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다들 공감하는 눈치였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학생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여러분들이 내 말을 듣고 그대로 잘 따라서 배우면, 세 번째 수업시간에 여러분들을 어떤 한국어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학생들은 “와~아”하고 웃으며 좋아했지만 내 말을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수업을 진행했다. 칠판에 괘도 몇 장을 더 붙였다. 나는 <괘도 2>를 보여주면서 한국어 글자의 모음이 만들어진 원리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해주었다. 한국어의 모음이 천, 지, 인을 상징한다는 내 설명에 학생들은 조금 신기해하는 듯 했다.

이어서 바로 <괘도 3>을 보여주면서 기본 모음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리고 다시 <괘도 4>를 붙여 놓고 각 글자에 빨간색 점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y]음이 더 붙어 기본모음 10개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다시 점들을 짧은 막대, 즉 획으로 바꾸어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등의 기본 모음 글자 모양으로 바꾸어 놓고 학생들에게 발음을 익히도록 했다. 발음을 익힌 후에는 바로 5번씩 써보도록 했다. 단, 쓰기 연습을 할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나의 3가지 원칙을 따르도록 했다. 쓰기 연습의 3가지 원칙이란 첫째, 연필로 쓸 것, 둘째, 쓰고 있는 글자를 큰 소리로 읽으면서 쓸 것, 셋째, 5번씩 쓸 것이었다. 곧 교실은 학생들의 한국어 모음 글자 읽는 소리로 가득 찼고 학생들은 쓰기 연습에 열중하였다.

다음은 자음공부였다. 또 칠판에 <괘도 5>를 붙였다. 먼저 학생들이 10번 정도 따라 읽게 하여 한국어 자음들의 이름을 알게 했다. 그러고 나서 빨간색의 글자가 그 자음들의 발음이라고 알려 주었다. 다시 학생들에게 소리 내어 읽으며 한국어 자음을 5번씩 쓰기 연습을 시켜 자음의 글자 모양과 발음을 익히도록 했다. 앞에 배운 모음과 마찬가지로 순서대로 외워야 나중에 사전에서 모르는 한국어 단어를 혼자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자음과 모음 글자 쓰는 순서를 가르쳐 주어 꼭 순서대로 쓰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손가락으로 자음 괘도를 짚으면 다 함께 “기역, 니은, 디귿, 리을…”하면서 소리를 맞추어 읽도록 했다. 또 모음괘도를 가리키면 “아, 야, 어, 여…”하면서 소릴 맞추었다. 학생들의 소리가 안 맞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키고 따라하지 않는 학생이 있으면 혼자 해보라고 시켰다. 그랬더니 아무도 조는 사람이 없이 나의 한국어 강의 첫 2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숙제는 역시 내가 만들어 나눠준 <한국어 연습공책>에 쓰기 연습 3가지 원칙을 지켜서 5번씩 쓰면서 모음과 자음의 글자 모양과 발음 외우기였다. 내가 만든 <한국어 연습공책>은 가로 세로 1Cm씩 줄을 그은 거였다. 꼭 연필로 쓰라고 한 이유는 틀리면 지워서 깨끗하게 쓰기 위한 것이었다. 내 자신이 영어를 배울 때 볼펜으로 쓰다가 틀리면 고칠 수가 없어 공책이 지저분해지고, 지저분해지면 배운 것이 머리 속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쓰기가 싫어졌던 나의 경험에서 터득한 방법이었다.

두 번째 수업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한국어 자음과 모음 쓰기와 읽기 시험을 봤다. 한 명의 낙오학생 없이 모두 통과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자음과 모음을 결합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자음과 모음을 옆으로 결합시키는 <타입 I>과 아래, 위로 결합시키는 <타입 II>가 있다고 알려주면서 ‘가, 갸, 거, 겨, 고, 교, 구, 규, 그, 기’를 읽는 연습을 했다. “라, 랴, 러, 려...”를 읽을 때 쯤 벌써 학생들은 혼자서도 자음과 모음을 결합시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다른 괘도를 칠판에 붙였다. ‘가, 갸…’부터 ‘…흐, 히’까지 가로 10줄, 세로 14줄의 한국어 기본 글자들이 빼곡한 괘도였다.

학생들은 놀라운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떠듬거렸지만 자기들이 스스로 글자를 결합시켜 괘도에 쓰여 있는 모든 한국어 글자를 혼자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로, 세로로 한 줄, 한 줄 짚으면 학생들은 다함께 큰 소리로 “가, 나, 다, 라...”라고 세로로 읽기도 하고 “가, 갸, 거, 겨...”라고 가로로 읽기도 했다. 함께 읽기도 하고 한 사람씩 읽게 하기도 하니까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쓰기 연습에 들어갔다. 일단 140자 한국어 기본 글자를 내가 만들어준 <한국어 연습공책>에 한 번씩 써보게 했다. 잘들 써 내려갔다. 내가 보려고 한 것은 글자를 순서대로 쓰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외국인의 경우 ‘ㄹ, ㅁ, ㅂ’의 쓰기 순서, 즉 획순을 자기 멋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학생들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순서대로 쓰지 않는 학생들을 찾아 일일이 고쳐주었다.

수업 끝 무렵에 내가 만든 <한국어 자음 모음 쓰기> 연습장을 나누어주었다. 가로로 14줄, 세로로 20줄의 사방 1 Cm크기의 네모 칸이 쳐져 있는 연습장이다. 첫 장 맨 윗 줄에는 ‘가, 나, 다, 라’부터 ‘카, 타, 파, 하’까지 14글자가 쓰여 있었고 나머지는 빈 칸이었다. 둘째 장에는 ‘갸, 냐, 댜, 랴...’가 쓰여 있고, 셋째 장에는 ‘거, 너, 더, 러...’가 쓰여 있고, 맨 마지막 장에는 ‘기, 니, 디, 리...’가 쓰여 있었다. 다음 주까지 숙제는 쓰기 연습 3원칙을 지키면서 그 연습장을 다 써오는 거였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각 페이지마다 240개씩, 10페이지에 달하는 2,400개의 모든 칸에 글자를 써오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반은 뭔가 달라야 하는 속성반이 아닌가? 그 다음 주 세 번째 시간에, 한국인 상사를 모시고 있다는 금발의 백인 여성 비서와 한국계 대기업 뉴욕지사에 다닌다는 미국인 2명이 결석했다. 결국 그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출석한 나머지 10명의 학생들은 그 2천4백자 쓰기 연습 숙제를 완전하게 해왔다. 하긴 하루에 2페이지씩 나누어 쓰면 못 할 것도 없는 숙제였다. 다시 ‘가, 나, 다, 라...’가 빼곡히 쓰여 있는 괘도를 걸어 놓고 아무 글자나 짚어서 학생들에게 읽어 보도록 했다. 척척 대답을 했다. <한국어 연습공책>을 나누어 주고 ‘가, 나, 다, 라’부터 ‘키, 티, 피, 히’까지 1번씩 쓰는 시험을 봤다. 모두들 잘 써내려갔다.

시험이 끝나고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 결합에는 <타입 III>도 있다고 말하고 ‘받침’에 대해 설명을 했다. 한국어 받침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일단은 단자음 받침을 붙여주고 어떻게 읽는지를 가르쳤다. 예를 들면 ‘가’에 ‘ㄱ’을 붙여 ‘각’을 만드는 것을 보여주고 [g + a + g]으로 읽는 것을 연습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금방 ‘가 + ㄴ’을 ‘간’으로 읽었다. 자음과 모음을 결합시킨 140자 기본글자에 어떤 받침을 붙여도 학생들은 스스로 발음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강’, ‘동’, ‘문’, ‘발’… 등. 그리고 ‘강’은 river, ‘동’은 east, ‘문’은 door, ‘발’은 foot라고 가르쳐 주었다. 한 글자가 한 뜻을 갖기도 하지만 두 글자가 모여 한 뜻을 만들기도 한다고 한국어의 단어 만들기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오늘은 받침이 있는 글자를 어떻게 만들어 읽는지만 배우면 된다”고 그 날 우리의 학습목표를 알려주었다. 받침글자 읽는 연습을 한참 하고 난 후, 내가 칠판에 ‘나라’, ‘한국’, ‘미국’, ‘일본’ 등의 글자들을 쓰면 모두 한 목소리로 읽고, ‘마이클’, ‘린다’ 등 자기들 이름을 한국어로 칠판에 써주면 신기한 듯 환호를 지르며 아주 좋아했다.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약속했던 세 번째 시간 만에 어느 새 자신들이 한국어를 읽게 된 것을 보면서 학생들은 놀라워했다. 나를 우러러 보는 듯도 했다.

받침글자를 배운 후, 내가 다음 시간 숙제로 내준 것은 아래와 같은 숫자표를, 역시 쓰기 연습 3원칙에 맞추어 5번씩 써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요일과 일월부터 십이월까지의 월도 배웠다. ‘숫자 쓰기’는 받침 글자를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숫자에 대한 공부도 돼서 일거양득이 된다. 특히 숫자를 빨리 익혀야 한국어 공부가 전반적으로 쉬워진다. 학생들은 한국어 숫자에서도 가로 세로로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고는 금방 1부터 100까지의 숫자들을 익혔다.

이렇게 해서 단 3일 만에 한국어를 대강 읽을 수 있게 된 학생들은 교과서의 글자들도 아직 뜻은 잘 모르지만 자신 있게 읽을 수는 있게 되었다. 교과서는 뉴욕대에서 준 교재를 그대로 썼는데, 그 교재에는 비슷한 형태의 예문 여러 개를 주어 연습하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 날 새로이 배운 모든 예문들은 무조건 5번씩 써오는 것이 숙제였다. 대략 하루에 새롭게 배우는 예문이 50-60개 가량 되었다. 그러면 숙제는 50-60개의 각 예문을 5번씩 써와야 하니까 250개에서 300개의 문장을 읽으면서 연필로 써와야 했다.

학기말 끝까지 남았던 학생은 한인 2세들이었던 8명의 한국계 학생들뿐이었다. 한민족으로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욕과 열망이 그만큼 절실했던 것 같았다. 마지막 날 피자파티를 하면서 학생들이 각자 한 학기동안 배운 소감을 이야기 했다. 이구동성으로 ‘힘들었지만 정말 잘 배웠다’고 하고 어떤 학생은 그동안 쓰기 연습했던 두툼한 몇 권의 노트를 다 가져와 보여주기도 하며 자신을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했다. 모든 학생들이 나를 ‘베스트 티쳐’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은 영어로 처음 한국어를 가르치는 거라 여러분을 가르치면서 많이 떨렸다’는 사실과 ‘여러분들이 잘 따라 주어서 오히려 내가 많이 배우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한국어 단어들만 많이 익히고 그 뜻을 알면 된다는 마지막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미국 뉴욕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낫소한국문화학교’와 ‘새한국문화학교’라는 2개의 한국학교를 세워 매주 토요일과 여름방학 동안 한인 2세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아이들을 위한 반은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있었지만 대부분 초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어린 한인 2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오면서 내가 보고 느끼면서 걱정되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한인 2세 학생들은 초등학교(Elementary School)만 졸업하면 자신의 한국어 실력이 어떻든 한국어 교육도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한민족으로서 자아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중, 고등학교 때 한국어를 더 열심히 배워야 할 텐데 학생 본인들도 그렇고 학생 부모님들도 자녀가 중, 고등학교 학생이 되면 한국어 교육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님들은 자녀가 중, 고등학교 학생이 되면 부모 말을 안 듣는다고 하면서 자녀들의 지속적인 한국어 교육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은데, 뉴욕대에서 나의 최초의 한국어 학생이었던 8명의 학생들 대부분도 그렇게 해서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시기를 놓쳤다고 후회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한국어를 배우려니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자기 부모님들이 계속해서 자기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라고 하지 않은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둘째는 한인학생들이 한국어를 너무 쉽게만 배우려 하고 대충대충 배우려 하는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한국학교에서 사용하는 한국어 교육방법은 무조건 단어부터 가르친다. 아직 자음과 모음도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나비’, ‘나무’ 하면서 형형색색의 그림과 함께 단어부터 가르친다. 그러면 학생들은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들은 빨리 배울 수 있지만 혼자서 자음과 모음을 결합시켜 말을 만들지는 못한다. 쓰기 연습도 많이 하지 않아서 철자법을 틀리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많은 한국어 선생님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지나치게 바른 철자법을 가르치려고 하면 학생들이 한국어에 대한 흥미를 잃어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상당히 잘못된 견해라고 생각한다. 왜 자녀가 영어 스펠링이 틀리면 야단을 치며 큰 일 난 것처럼 하면서 한국어 철자가 틀리면 그냥 웃고 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어는 어려서 배울 때 확실하고 정확하게 배워야 한다.

그리고 쓰기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읽으면서 쓸 때 공부에 더 집중이 되고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공부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 시간이 지나 그 잘못된 공부 습관을 다시 바로 잡으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한인 2세들은 중, 고등학교 학생이 돼서도 한국어 철자법이 자꾸 틀리니 창피해서 오히려 점점 더 배우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학생의 입장만을 생각해주고 또 ‘배우러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해서 학생들이 배우기 편하게만 해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민족으로서 왜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더 잘 설명해주고 동기부여를 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다 해낼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또 한국어 배우는 방법을 알고 나면 배우는 것이 쉽고 재미있다. 그리하여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꾸준히 하나씩 하나씩 정확하게 가르치고 배우도록 해야 한다. 한국어 공부에도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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