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 Korea(북한)에서 온 학생인가요?
North Korea(북한)에서 온 학생인가요?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3.23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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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고 있는 공립하이스쿨의 국제유학생 부서(International Student Program)에서는 지구촌의 다양한 나라에서 온 많은 유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호주로 유학을 온 학생들의 언어와 생김새도 다르지만 그들이 성장한 문화적인 배경이나 환경이 달라서 그에 걸맞게 부딪히는 문제점도 각양각색이다. 유럽이나 멕시코에서 교환학생으로 단기유학을 오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자유로운 생활을 원하기 때문에 홈스테이 부모들과 간혹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십대의 방종과 무한의 자유는 나라를 막론하고 보호 감찰이 되어야 하는 과제이다.

일월 말에 시작된 첫 분기에 약 60여명의 유학생들이 등록을 했다. ISP 선생들은 학생들의 출석 첫 날에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며 긴장된 학생들의 마음도 다독여주고 학교생활에 필요한 자료들을 제공해준다. 첫 날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개인 신상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직접 등록서류에 적는 일이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온 유학생들은 영어가 서툴기 때문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정보란을 메워 나간다. 해외에 있는 부모들의 주소나 연락처도 물론이지만 응급상황에 대비해서 브리즈번에 거주하는 다른 일가친척이나 친구의 비상연락처도 반드시 적어야하는 항목이다. 그래서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는 첫 주에는 학생들 개개인의 각종 데이터를 컴퓨터에 저장하는 업무로 인해서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낸다.

전체 학생들의 모든 데이터를 관리하는 피터선생님이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한국학생들이 학부모의 동반비자로 첫 학기에 등록을 했는데 국적을 확인해주었으면 하는 요청이었다. 학교컴퓨터에 저장된 학생의 데이터를 열어보니 국적이 Korea,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북한)이라고 적혀있었다. 순간적으로 잘못된 표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북한 이탈주민의 자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상연락처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보았다. 학생 엄마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서울에서 왔으며 국적이 한국이라고 했다. 최근에 한국기업체의 브리즈번 지사로 파견 나온 직원가족이었다. 학부형에게 전화를 한 용건을 말했더니 무척 놀라기에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켜주었다.

옆자리의 중국인 동료가 상황을 듣고는 자기도 같은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면서 확인을 부탁했다. 컴퓨터 데이터에서 한 한국 유학생의 파일을 열어 보이면서 “North Korea에서 온 학생인가요?”하면서 호기심에 가득 찬 눈길을 보냈다. 하루 동안 두 번씩이나 같은 문제에 부딪히면서 한국에 대한 부족한 정보와 미묘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호주에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의 학교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고 나서 한국학생들의 파일을 조사하던 중에 정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1,200여명의 제법 큰 규모의 공립 하이스쿨인데 한국학생은 유학생을 포함해서 약 40여명이 재학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수의 90% 이상이 모두 북한의 국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며칠 동안 추적을 한 결과 모두가 잘못된 기재였음이 밝혀졌으며 학교 행정부서에 요청해서 전학생들의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바꾼 일이 있었다. 남한과 북한의 영문표기도 구별하지 못하는 행정직원의 무지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들을 탓하기보다는 한국정부의 외교적인 홍보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한민국 출신이든, 북한 출신이든지간에 학생들이 받는 대우가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부모들이나 학생들은 나름 충격을 받을 듯싶다. 앞으로도 데이터 상의 국적표기 문제는 다시 발생할 거라는 지레짐작을 해보며 나의 과제로 남겨둔다.

지난해에 워킹홀리데이비자로 호주에 왔던 H가 기억이 난다. 16살의 어린나이에 두만강을 건너고 중국과 태국 등 제3국을 통해서 한국으로 탈복했던 청년이다. 한국에서 의과대학 2년을 다니다가 정체성의 갈등으로 인해서 휴학을 하고 잠시 호주로 왔다고 했다. H는 호주에 왔으니 가톨릭 교리를 공부하고 영세를 받고 싶다면서 지인의 소개로 나를 찾아왔다. 종교를 믿으면 자신의 마음에 평화가 올 듯해서 한국에서 절에도 가보고 교회에도 다녀보았지만 위로를 받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호주에 온 이래로 밤낮으로 몸을 혹사시키는 노동을 하면서도 극복할 수 없는 갈등을 겪고 있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특별 전형학생으로 서울근교의 한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국학생들이 탈북인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웃음기 없는 우울한 얼굴이 보기에도 안쓰러워보였다.

어느 날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 부끄러운 듯이 웃으면서 자신에게도 꿈이 있다고 말했다. “저는 지금 22살이지만 가능한 결혼을 빨리해서 가정을 갖고 싶어요. 아이도 빨리 낳아서 가족이라는 내 울타리를 만들고 싶어요.” 북한식 드센 억양의 말투로 말했지만 간절한 그 마음이 그대로 내게 전달되어왔다. H는 호주에서 채 1년도 살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지금 그 청년은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국적이 아닌 제3국의 국적을 취득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들었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왜, 대한민국 국민이 되지 않고 제 3국의 국적을 취득했는지에 대한 문제는 우리 모두가 떠안아야 할 책임 있는 숙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방황하는 한 청년을 받아들일 따스한 품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궁금해진다. 얼마만한 시간이 더 지나야 “North Korea에서 왔나요?”, “South Korea에서 왔나요?”하는 질문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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