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이탈리아에서 발견한 문화강국의 조건
[볼로냐, 볼로네세] 이탈리아에서 발견한 문화강국의 조건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4.15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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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는 그 이름이 많이 알려진 도시이지만 주변의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등에 비하면 관광객의 숫자는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러나 볼로냐 사람들의 볼로냐에 대한 자부심은 매우 높다.

볼로냐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다. 대학의 어머니, 볼로냐 대학은 알마 마테르 스튜디오름(Alma Mater Studiorum)이라는 모토를 학교 이름 앞에 꼭 붙인다. 필자가 이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생활한지 1달째 됐을 때, 주인아줌마에게 이탈리아어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주인아줌마는 서가에 꽂힌 초등학생 교과서 이것저것을 보여줬다. 그림이 많은 이탈리아 교과서들이었다. “이것들은 너무 유치하죠?”하면서 책 몇 권을 또 뽑으셨다. 7학년용 이탈리아어, 고대 로마 문명사, 라틴어 등 세 권의 교과서였다.

7학년이면 이탈리아 학제로는 중2이고 12살이다. 한국의 교육 햇수를 적용하면 초등 6학년에 해당된다. 이 세 권의 교과서를 보니 문화강국 이탈리아의 비밀을 보는 듯했다. 이탈리아어를 잘 이해 못하지만 이탈리아의 고전교육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직감했다. 초등학교 6학년에게 고대 로마문명사를 별도로 가르치는데 로마 후예의 자부심이 보였다.

『고대로마의 도시, 역사, 텍스트』라고 된 얇은 교과서(95쪽)에는 고대 로마의 전설, 도시, 가족, 주거, 직업, 군대, 건축 등이 소개돼 있고 끝에는 고대 라틴 문학의 원문이 현대 이탈리아 번역과 함께 실려 있다. 페드로, 카뚤로, 오라쬬, 비르질리오 등이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이 위대한 문호들의 원문을 12세에 배운다는 게 놀랍다. 라틴어가 유럽의 고등학교에서 교육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집 아들의 교과서를 보니 12세, 한국의 초등 6학년이 배운다.

라틴어라면 동아시아인에겐 한문과 같은 것이다. 한국의 중학교 한문 교과서에 비해 훨씬 더 체계적이고 재미있게 짜여 져 있다. 1과는 라틴어와 라틴어 계열 유럽 언어의 관계를 소개하고, 2과부터 그림을 곁들어 문법을 설명하고 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예문도 길어지고 끝부분의 강독문장은 제법 길다.

라틴어 수업은 한문 수업과 비슷한 점이 있다. 문법수업이라고 해서 문법만 가르칠 수 없다. 많은 문장, 다양한 텍스트, 다양한 저자의 글을 읽어야 한다. 한문의 고수라 하더라도 평소에 접하지 않은 글을 읽을 땐 긴장하는 것은 문법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라틴어는 한문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독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 문법책을 보니 필자가 서울대학교 4학년 때 일반선택으로 수강했던 라틴어 수업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라틴어와 이탈리아어가 아무리 가깝다고 하지만 매우 놀랍다. 주인 집 아이가 지금 8학년이니까 작년에 배운 책이다. 필자가 수강할 때 8명이었는데 필자를 제외하곤 모두 철학, 종교 전공 학생이었다.

요즘처럼 대학에서 수강신청 최소 인원을 규정하고 있다면 당연히 폐강 대상이었다. 천병희 선생님을 모시고 8명이 아주 재미있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과연 이탈리아 중학생들은 어떨까?

이 교과서의 주인인 다우드(Daud)에게 라틴어 수업에 대해 물어봤다. 아주 지겹고 재미없다고 했다. 학생들이 다 싫어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옆에 있던 엄마도 거든다. 라틴어는 필수도 아니고 고등학교 들어가서 해도 된다고 했다.

비행기, 축구, 게임을 좋아하는 이 13살의 다우드와 그 친구들이 라틴어 수업을 싫어한다니 그나마 위로를 삼아야 할까? 초등 6학년 나이의 미래 세대에게 우리는 어떤 고전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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