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응급실의 천사들
[Essay Garden] 응급실의 천사들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5.05.0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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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러하듯이 나도 오랜 결혼 생활 후로 무척 풍파가 많았다. 감성도 풍부하고 이기적이지 못한 나도 문제이지만, 모두 가깝고 먼 사람들로 얽히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이 아닌가. 늘 고만고만 넘기고 지나가기를 빌면서 최선을 다해보지만, 이젠 몸도 낡아 더디게 따라가는가 보다. 나부터 수양하는 일만 남았다며 노력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눈처럼 쌓인 스트레스는 결국 내 몸에 살인 혈압을 만들었는가 보다.

돌아보니 심한 변비의 시작과 함께 약 두 달 전부터 눈이 뻑뻑해도 그냥 과로라고만 여겼다. 하루는 주차장에 쏟아지는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여서 한쪽 눈을 뜨지 못했다. 그 후 날마다 눈에 이상이 느껴져 안과에 가니 눈 중앙 핏줄이 막혔고 작은 뇌졸증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주말이 끼어 월요일에야 전문의를 만나 주사 약물 치료를 받고 시야는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두 눈을 뜨면 우주의 별처럼 보이는 동그랗고 까만 점들이 둥둥 사방에 떠 있으니 말이다.

나을 테니 걱정 말라던 일반 안과의사와 달리 덤벙거리던 망막전문의는 약물치료 후 무책임한 몇 마디를 남겨 조금 불쾌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의사의 실수로 생명을 구하기는커녕 죽음으로 몰고 간 아까운 가수, 신해철 씨가 떠올랐다. 전문가라는 직업의 너울을 쓰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상의 의사들이 아닌가.

나도 그런 안과 의사에게 가수 신해철처럼 피해를 보는 환자가 아니기를 빌면서 한 달을 조마조마 보내고 있다. 돈 벌기만 급급하여 우후죽순으로 생긴 수많은 의과대학, 양질의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대단한 행운이다. 어디 의사뿐이겠는가. 무슨 직업을 갖든지 양심과 책임감으로 일하는 사람은 우리 세상에 얼마나 살고 있을까.

혈압을 낮추려는 우리 가족 주치의의 처방으로 약을 추가로 먹은 후 저녁이면 머리 상부가 뒤틀리는 부작용과 잦은 소변으로 혈압을 재니 220/110까지 올라가 응급실로 향했다. 밤 12시. 구급차를 부를 수도 있지만, 이웃들의 단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어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비우며 서글프게 집을 나섰다. 나의 손길로 살아가던 영리한 강아지도 무얼 느꼈는지 애절하게 내 다리를 긁으며 따라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마침 영어를 하는 딸이 마침 집에 와 있어 자식에 의지하며 나는 맥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대기 중인 혈압계는 239라는 숫자로 나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접수담당자는 방송으로 의사를 부르고 나를 입원시켰다. 여러 개의 전기선(EKG)이 내 몸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었다. 죽는 순간까지 나는 의식을 차려야 한다며 누워있었다. 응급실에서 심장 촬영을 한 후, 두뇌단층촬영(CT SCAN)실로 나를 이동 시켰다.

키가 크고 목소리도 씩씩한 안경을 낀 젊은 로페즈 의사 선생님이 내 혈압을 내리려고 혀 밑에 약을 세 차례 넣고 몸에 붙이고 하더니 서서히 조금씩 떨어졌다. 나의 생명을 구해 주려던 직원들의 정성스러운 눈빛, 응급실의 천사들은 환자의 고통으로 가득 찬 칙칙한 어둠의 밤을 참으로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새벽 3시, 직원 교체 시간이다. 조용한 집에서 살던 내가 소음 속에 누워있지만,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 신기하다. 원효대사가 말하시던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를 날마다 경험하던 병실환경. 다행히도 그날 새벽은 응급실에 피를 흘리는 수술환자가 들어오지 않아 조용한 편이었다. 뜻밖에 내가 살아서 사람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서였을까.

아침 7시, 또 직원 교체시간이다. 웃음소리도 나고 시끌벅적. 나의 입가엔 엷은 미소마저 돌았다. 딸은 내 곁에서 침대에 고개를 숙인 체 잠시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배도 고프지 않았고 불안감도 없었다. 딸도 엄마를 살리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믿었다.

집에서는 남편과 강아지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지만, 난들 어찌하리. 비굴하게 살려달라고 하지 않고 그냥 운명에 맡길 뿐. 병원 서류를 만들면서 만약의 죽음을 대비하는 서류에 응답할 때면, 아직 돌보아야 할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할 수 있다면 세상의 지인들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싶은데···. 응급실의 간호사(락켈)은 딸의 식사까지 챙겨주며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사실 응급실 입구에서 위중한 환자인 나를 신속하게 처리하던 남자직원 유진 씨를 만날 때부터 작은 희망은 보였다.

8시쯤 되니 백발에 얼굴이 훤한 백인 스토크(Dr. Stork) 의사 선생님이 나타났다. 긴 허리를 굽혀 진지한 눈빛으로 환자인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2001년에도 고혈압으로 응급실에 다녀갔던 내 병력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더니 관찰(Observation) 환자로 며칠 입원 치료하자며 그의 계획을 말해주었다.

깊은 신뢰감을 느끼게 해준 의사 선생님이었다. 긴박했던 15시간의 응급처치. 간단히 점심을 먹고 혈압은 125까지 떨어졌다. 입원수속을 하려고 직원이 컴퓨터를 들고 차례대로 나를 찾아왔다. 여태 건강했기에 남편이 은퇴한 후 한때 어마어마한 의료보험료를 낸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감사히 혜택을 받고 있다.

3층에 배정된 방에 올라가자 그동안 나를 살려 준 간호사들과 달리 무례하고 불친절한 사람들로 내 건강이 다시 위태로워질 뻔 했다.(다음 편에 계속)

최미자 미주문학서재 http://mijumunhak.net/mi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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