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87] 조선왕조실록
[아! 대한민국-87] 조선왕조실록
  • 김정남<본지 고문>
  • 승인 2015.05.30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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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의 공식 실록으로 태조에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편년체 역사기록으로 국보1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왕조 500년을 유리알처럼 들여다 볼 수 있는 그 기록의 방대, 세밀함이나 엄정함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화유산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실록은 어떻게 편찬되는가. 왕이 세상을 떠나면 실록청이라는 임시기구가 먼저 설치된다. 여기서 실록 편찬에 필요한 1차 원고(初草), 2차 원고(中草)를 거쳐 최종원고(正草)가 완성되고 이는 곧 활자로 인쇄된다. 실록이 완성되면 초, 중, 정초 등 편찬에 이용된 사초 등은 물에 씻어 그 기록을 없애는 세초연(洗草宴)을 열어 편찬에 참여한 관리들을 격려하였다.

실록의 편찬기간은 재임기간이 긴 왕의 경우 4~5년, 짧은 왕의 경우는 2~3년이 걸렸고, 실록의 1차 자료를 수집•작성하는 부서는 춘추관으로, 춘추관의 사관은 홍문관의 관리가 자동으로 겸직하였다. 완성된 실록은 춘추관을 비롯하여 전국에 설치된 사고(史庫)에 분산 보관하였다.

사고는 조선 전기에는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 등 4사고 체제로 운영되다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춘추관, 충주, 성주의 사고가 병화의 피해를 입었다. 다만 전주사고에 소장된 실록만이 우여곡절 끝에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다.

전주 사고에는 실록을 비롯해 「고려사」「고려사절요」 등 1,344책이 보관되어 있었고, 그 옆의 경기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걸려있었다. 임진왜란의 소식을 듣고 서둘러 이들 서책과 어진을 내장산으로 옮겨 화를 면하게 한 것은 태인에 사는 선비 손흥록과 안의였다. 전쟁이 끝난 뒤 조정은 안의와 손홍록에게 종6품의 벼슬을 내렸다.

전쟁이 끝난 후 조정은 전주사고 본을 바탕으로 4부의 실록을 새로 인쇄하여 5사고 체제로 바꿔 마니산, 묘향산, 태백산, 오대산 등으로 분산 관리하게 된다. 그 후 묘향산 사고는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전북 무주의 적상산으로 옮겨지고, 강화도 마니산 사고는 1660년에 인근 정족산 사고로 이전하였다.

실록의 수난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춘추관사고에 있던 실록은 1624년 ‘이괄의 난’때 창덕궁 방화와 함께 소실된다. 정족산사고본과 태백산사고본은 지금은 서울대학교와 국가기록원에서 관리되고 있다. 오대산사고본은 1913년, 조선의 초대총독 데라우찌가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 1923년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소실, 그 중 47책이 최근 우여곡절 끝에 돌아와 서울대 규장각에서 관리 보관케 되었고, 무주 적상산본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옮겨져, 1991년에 번역본 「리조실록」 400권으로 출간되었다.

기록유산 하나를 지키기가 이처럼 험난하고 힘들다는 것을 조선왕조실록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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