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노벨문학상의 까르두치 집을 찾아
[볼로냐, 볼로네세] 노벨문학상의 까르두치 집을 찾아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6.02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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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토요일 오전, 볼로냐 시민들이 우산을 받쳐 들고 하나 둘 까사 까르두치(까르두치의 집)에 모여들었다. 까르두치(Carducci, 1835~1907)는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사람이지만 볼로냐 시민들이 자랑하는 시인이다. 통일 이탈리아의 첫 시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이탈리아 국민 시인이다.

1906년에 레비아 그라비아(Levia Gravia)라는 시집으로 이탈리아에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안겨 준 시인이다. 토스카나 출신이지만 볼로냐 대학에서 문학 교수 생활을 했고 볼로냐를 사랑한 시인이다.

볼로냐 사람들이 볼로냐 대학 출신 단테 못지않게 자랑스러워하는 시인이다. 비오는 휴일 아침인데도 오늘 까사 까르두치에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든 데는 이유가 있다. 볼로냐 시가 1년에 한 번 볼로냐 시의 빨라조(귀족 저택으로 지어진 집들)의 고급 정원을 개방하는 ‘녹색에서 녹색으로’(Diverdeinverde)라는 행사의 일환으로 시인 까르두치의 집도 오늘 무료개방하기 때문이다.

볼로냐의 중심인 대광장(피아짜 마조레)에서 까사 까르두치를 찾아가려면 싼토 스테파노 대로를 따라가다 단테의 길을 지나야 한다. 단테 길을 가다보면 까르두치 광장이 나오고 그곳에 까르두치 기념 조각 공원과 까사 까르두치가 있다.

단테 길을 따라가다 까르두치의 집, 까르두치 광장을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볼로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여정이다. 이탈리아의 세계문학은 단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대까지 계속 발전 성장하고 있다는 자랑이다.


까르두치는 말년을 가난하게 보냈고 이 집도 원래 자기 집이 아니다. 임마누엘 3세의 왕비 마가리뜨가 까르두치의 서재, 그가 세 들어 살던 집을 구입하여 까르두치에게 무상으로 무기한 사용하도록 한 다음 모든 재산을 볼로냐 시에 기증한 덕분에 이곳에 아름다운 광장, 조각 공원, 박물관 등이 생겨났다.

오늘 답사자 일행은 까르두치 기념 조각 공원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들은 다음 까르두치의 서재부터 답사를 시작했다. 초상이 곳곳에 걸려있고 서재 가운데에 흉상도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시인의 친숙한 아저씨 같으면서 위용을 잃지 않은 미남형 풍채이다.

그의 비극적 생애 체험과 격정적인 문학 활동이 느껴졌다. 방문객들이 약간 웅성이면서 한 지점으로 모여들기에 따라 가 봤다. Alfred Nobel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노벨문학상! 말은 많이 들었으나 상장과 매달 실물을 본 것은 처음이다.

노벨상 상장도 좋지만 까사 까르두치의 최고의 명물은 책이다. 전문연구자 외에는 접근이 안 되고 구경만 할 수 있다. 서재의 고서들은 마치 쌍트 갈렌의 수도원 도서관 장서처럼 보는 이를 압도했다. 그의 장서에는 그의 학문이력이 잘 나타난다. 그는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의 외국 인문서적도 많이 모았고 열심히 읽었다. 천재 문학자도 좋은 작품을 남기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다. 외국의 문화를 흡수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천재는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까르두치의 시들은 유명하지만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은 「오래 된 애가」(Pianto Antico) 같다. 이탈리아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

이탈리아어를 몰라도 유투브에서 Pianto Antico를 검색해 보나베리(Bonaveri)의 낭송을 들으면 좋다. 어떤 오페라의 아리아보다 가슴 뭉클하고 아름답다. 어린 아들을 잃은 절절한 슬픔을 노래한 시인의 마음이 느껴져 온다.

“네 어린 손 내밀어 잡곤 하던 나무는 아름다운 주홍 빛 꽃과 녹색의 향연으로/ 쓸쓸하고도 조용한 정원을 다시 초록으로 물들게 하누나/ 유월은 온기와 햇살로 초록을 다시 불러오는데/ 내 슬픔과 고통의 꽃, 너는/ 내 무익한 삶의 유일한 마지막 꽃인 너는/ 너는 차디찬 땅속에, 어두운 흙속에 있구나/ 어느 태양이 너를 다시 일어나게 하리/ 어느 사랑이 너를 다시 깨우리”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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