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400년전 사회 혁신의 화가, 루초 마사리
[볼로냐, 볼로네세] 400년전 사회 혁신의 화가, 루초 마사리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6.15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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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미술이라고 하면 로마와 피렌체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탈리아 미술사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볼로냐가 이탈리아 예술사의 산실임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볼로냐에서 공부했거나 활동하다가 로마나 피렌체 등으로 초빙되어 갔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을 가진 볼로냐는 법학, 신학, 정치학, 과학, 기술뿐 아니라 예술에서도 이탈리아와 유럽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볼로냐 예술의 세계사적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기획 전시가 올해 2월17일부터 5월17일 ‘치마부에에서 모란디까지’(Da Cimbabue a Morandi)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약 700년 이탈리아 미술사를 한 눈에 보게 되는 드문 기회이다. 제법 긴 기간인데다 전시 장소인 빨라쬬 파바(Palazzo Fava)가 가깝기 때문에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루다가 그만 놓치고 말았다.

아쉬워하던 차에 이 전시의 포스터를 대광장에서 다시 발견했다. 밀라노 엑스포2015 덕분에 전시회가 8월 30일까지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또 미루다가 놓칠까봐 6월 7일 전시장으로 갔다. 전시장 건물의 바깥 뽀르티꼬(Portico, 지붕 덮인 인도로 볼로냐 건축의 특징)도 깨끗하고 화려했지만 내부의 마당과 건물은 아주 깨끗하고 우아했다.

치마부에(Cimabue, 1240~1302)를 잘 모르기 때문에 먼저 그의 그림부터 확인했다. 그의 그림을 확인하고 전시된 그림들을 구경했다. 수많은 그림들 가운데 사회학도의 눈을 확 끌어당기는 그림이 있었다.

루초 마사리(Lucio Massari 1569-1633)의 ‘거룩한 가정’이다. 요셉, 마리아, 어린예수 등이 등장하는 ‘거룩한 가정’(Sacra Famiglia)은 이탈리아의 미술에 자주 등장한다. ‘거룩한 가정’또는 ‘성가정’을 다룬 그림들은 평온한 천상의 가정이라는 거룩한 이미지가 보통이다. 그런데 루초 마사리의 ‘거룩한 가정’은 빨래하는 가정이다.

▲ ‘치마부에에서 모란디까지’(Da Cimbabue a Morandi)라는 전시회가 이탈리아 볼로냐 빨라쬬 파바에서 열렸다. 오른쪽 사진은 루초 마사리의 ‘거룩한 가정’.
이 그림은 1620년 경 작품이라고 한다. 400년 전의 테마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과감한 발상이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면 중앙에서 오른쪽 위로 배치된 빨래이다.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대각선의 위치 뿐 아니라 하얀 색의 빨래는 화면의 배경 색 때문에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다른 화가들의 ‘거룩한 가정’ 그림들은 주인공이 성모 마리아와 어린 예수이다. 이 그림에서 메인은 요셉이 열심히 널고 있는 하얀 빨래다.

빨래를 널고 있는 요셉의 모습은 한두 번 아내를 돕는 착한 가부장의 모습이 아니라 빨래가 몸에 밴 모습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사노동 모습과 대조적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사노동은 여성이 하루 평균 4시간 57분, 남성이 46분이다.

21세기 한국의 가사노동에서의 남녀 차이를 생각한다면 400년 전 루초 마사리의 그림은 가히 혁명적이다. 어린 예수도 빨래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구세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거룩한 이미지가 아니라 빨래라는 집안일에 적극 참여하는 어린이의 모습이다.

어두운 녹색 톤의 나무 아래 파란 옷의 예수는 잘 부각이 안 되고 예수가 들고 있는 빨래가 더 선명히 나타나도록 처리되어 있다. 루초 마사리는 거룩한 가정의 핵심을 빨레에서 찾고 있다. 카톨릭 단체인 마돈나 하우스는 “빨래는 사랑의 학교”라고 말한다(www.madonnahouse.or).

마돈나 하우스는 예수가 만찬 이후 제자들의 발을 씻긴 것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아마 이 그림을 알았더라면 이 그림을 학교의 운영의 기초로 삼지 않았을까? 마돈나 하우스는 교육의 대상을 여성으로 삼고 있지만 루초 마사리의 혁신적 사고는 남성,여성,어린이를 가리지 않는다. 참으로 대단한 화가이자 사회혁신가이다.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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