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유스타레스, 이탈리아의 위대한 발명품
[볼로냐, 볼로네세] 유스타레스, 이탈리아의 위대한 발명품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6.19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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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조르노(Buon giorno).”

카페 중문에서 손님이 크게 외친다. “저 봐, 손님이 저기 들어서면서 ‘본 조르노’하지, 그럼 너도 크게 ‘본조르노’라고 답하는 거야.”

카페 ‘유스타레스’(Iusta Res)의 대표가 카페의 견습생들에게 실무 교육을 시키고 있다. 바 앞에는 다른 견습생이 떠들썩하게 웃으면서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떠든다. 수업분위기도 너무 방만한데다 ‘아니 이 바쁜 장사 시간에 이런 기초 교육을 시키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잠시 하는데 빨간 셔츠의 아저씨 한 명이 들어서더니 큰 소리로 다시 예절 교육, 인생 교육을 하신다. 아주 자신감에 넘쳐서 말씀하시기에 ‘전문 교육기관에서 특별히 오신 분인가’ 생각했다.

나중에 카페 대표 프란체스코에게 물어보니 카페 옆집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연극인 조르조(Giorgio) 아저씨다. 조르조 아저씨의 훈수는 유스타레스라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조합원들만의 폐쇄조직이 아니라 지역주민에게도 열려있는 개방 조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개방성에 더하여 이 협동조합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권익실천이다. 이 카페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두 가지 유형 가운데 ‘교육훈련’을 담당하는 유형에 속한다. 견습생들을 이 카페에 보내는 사회단체가 약 40개이다.

이 40개 단체는 유스타레스라는 협동조합의 회원은 아니고 이해관계자(stakeholders)이다. 견습생들도 조합원이 아니다. 견습생들은 이 카페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자신을 파견한 조직에서 생활비를 받는다.

협동조합-견습생-파견기관 등으로 연결된 조직형태는 전통적 협동조합과 다르다. 전통적 협동조합은 조합원끼리 1인1표로 의사결정을 하고 조합원의 이익을 도모하는 조직인데 비해 사회적 협동조합은 이 파트너들, 자원봉사자들, 지자체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함께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개방적 조직이자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사회적 연대조직이다.

조합의 수혜대상자가 장애인, 이민자, 출옥자, 약물중독자 등 사회적 약자이다. 이렇게 수혜대상자들을 나열하고 보니 사회적 협동조합이 NGO나 자선단체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스타레스의 팸플릿에는 스스로를 기업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협동조합은 회사이다’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사회적 기업으로서 다른 기업(impresa)과 동일한 토대위에서 운영되는 조직이자 자립적인(autosostenibile) 기업이다. 정부나 기업 등의 외부지원이 아니라 영업 수익을 통해 자립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다. 유스타레스 카페를 예로 들어보자. 유스타레스 카페는 카페 운영, 케이터링, 유기농 식품 판매 등을 통해 수익을 내는 회사이다. 유스타레스 카페에는 대표 1명, 바리스타 2명, 주방장 1명, 기금모금 1명, 영업1명 등의 직원이 있는데 이들의 생계는 모두 이 카페의 수익에 달려있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유스타레스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 또 수익을 내되 ‘사회적 연대’라는 미션을 실천해야 한다. 수익과 연대라는 두 가지 성격의 통합이 바로 사회적 협동조합의 특징이다.

수익과 사회적 연대의 결합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에 사회적 협동조합이 조합의 한 유형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협동조합의 의미를 과소평가한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이탈리아의 20세기 발명품이다.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은 1963년 1월에 싹 트기 시작하여 법제화되는 데 거의 30년이 소요되었다. 힘겨운 과정을 거쳐 1991년에 법제화되면서 사회적 협동조합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유스타레스처럼 2000년대에 등장한 것도 매우 많다. 유스타레스는 작은 카페에 불과하지만 그 이름은 거창하다. 유스타레스, 우리말로 ‘(공정한 사회, 윤리적 사회를 실천하는) 대의’라는 라틴어이다.

이것은 사회적 협동조합의 높은 이상, 큰 비전을 잘 보여준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이 시대에 이탈리아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많은 유스타레스가 만들어져 그 꿈이 실현되기를 빈다.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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