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꿈 같은 내일의 집
[Essay Garden] 꿈 같은 내일의 집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5.07.06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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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멕시코와 싸운 전쟁에서 미국이 주인 된 땅 캘리포니아에 이민 온 내가 지금 살고 있다. 해 질 무렵 우리집에서 자동차로 52번 고속도로를 타고 약 반 시간쯤 서쪽으로 달리면 신비로운 태평양의 웅장한 파도와 밀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라호야 동네가 있다.

오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햇살과 아름다운 바닷가에 있는 은퇴자의 공동주택에서 샌디에고 만돌린 오케스트라가 초청받아 연주하러 가는 날이다. 나는 항상 남편의 학부형으로 참석한다.

복잡한 토리 파인즈 길을 홀로 가기 싫어하는 남편을 위하여 내가 운전대를 잡는다. 요즈음은 밤눈이 어두워져 조심스럽지만, 아직도 난 운전대를 잡으면 즐겁다. 또한, 고풍스러운 집에서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

물론 은퇴연금이 두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무엇을 해 먹을까 하고 끼니 걱정은커녕 집 안 청소 걱정도 필요 없이 공주처럼 왕자처럼 살 수 있는 곳이 그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은퇴자의 집에 사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얼마나 복을 지어 인생의 말년에도 이런 곳에 와서 살 수 있을까 하고 잠시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내 분수에 어울리는 소박한 삶의 꿈으로 돌아가곤 한다.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순간까지 내 손으로 방을 청소하고 정원의 나무도 살펴주고 강아지 밥도 주면서 오랜 세월 정이 든 내 집에서 인생의 막을 내리고 싶다고.

오늘 저녁은 은퇴의 집 주민들이 음악 감상을 하려고 얼마나 라운지로 모여들까 궁금하다. 한 시간 전에 미리 와서 준비하는 오케스트라 회원들과 항상 열정이 넘치는 지휘자 짐 트레파소의 준비 또한 철저하다.

7시가 되니 연주시간에 맞추어 저녁 식사를 마친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잠시 후 준비해 놓은 의자에 사람들이 가득히 채워졌다. 나는 아늑한 라운지에 앉아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태양이 수평선을 서서히 넘어가고 적막한 어둠으로 바뀌는 저녁 풍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복도에서 보았던 역사적인 사진들의 장면을 떠올렸다. 1923년 여류사업가 이사벨 모리슨 홉킨스(Mrs. Isabel Morrison Hopkins)이 여기 절벽에 우아한 호텔을 꿈꾸며 자리를 마련했다는 기록과 함께 미모도 뛰어난 복도에 걸린 그녀의 사진을 보며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우리나라처럼 남존여비의 시대에 매우 대담한 그녀의 꿈. 포장되지 않은 흙길 위로 말을 타고 다니던 남자들과 자연스러운 바닷가가 복잡한 시가지로 변해버린 지금, 그처럼 내가 모르던 세상을 오가며 상상하노라니 퍽 재미있다.

잠시 후 볼룸댄스를 가르쳤다는 86세 할머니가 춤을 추면서 연주장으로 조금 늦게 들어왔다. 주책없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주민도 있었지만 나는 흥겨워하는 그분과 눈으로 코드를 즐겁게 맞추어 드렸다.

오늘 음악회도 지난번처럼 여흥 담당인 캐롤 피더슨(Carroll Pederson)씨가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서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준 연주자인 음악가와 관객들에게 처음과 마지막 인사말을 주민대표로 했다.

피더슨씨는 1961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를 방송했던 분이라고 자신을 나에게 소개했다. 와우, 내가 학창 시절 부모님과 함께 열심히 라디오로 들었던 미국의 소리 방송(VOA)의 그 주인공이시라니.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미국의 소리 방송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과 닐 암스트롱이 처음 달을 밟았던 시대의 중요한 뉴스를 포함하여 쿠바의 미사일 위기 등을 세계로 알렸다.

우리나라도 1964년부터 강찬선 특파원이 한국어로 전파를 탔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에 미국의 소리방송은 텔레비전 서비스뿐만 아니라 더 많은 기술로 미국을 세계로 알렸다.

지금 85세라는 피더슨 씨에 대하여 궁금해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열어보니 안타깝게도 기록이 없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서 피더슨 씨의 생방송 목소리가 남지 않아서 안타깝다. 한참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여자 친구라는 분이 어서 집으로 가자며 그를 재촉했다.

두 분은 서로 비슷한 나이에 남편과 아내가 세상을 떠났기에 같은 공동체에 살며 5년 동안 사귄 사이란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사이냐고 질문을 던지곤 하지만, 그녀는 이 나이에 우리가 어떻게 결혼할 수 있겠느냐며 솔직하게 말하면서 크게 깔깔 웃었다.

스페인어로 카사데 만야나(Casa de Mañana)라는 은퇴의 집, 1924년 독립 기념일인 7월 4일 호텔로 개업한 후 운영되었다가 1953년에 팔리면서 공동 은퇴 주거지(retirement community) 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2014년 12월에 생일 90주년을 맞이했다. 전설 같은 여사장님이 펼쳤던 멋진 영감이 부유한 주거자들을 통해 여태까지 실현되고 있으니 대단하다. 설립자 홉킨스 여사는 삼 년 후인 1956년 70세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나의 한 미국인 친구가 말했듯이, 우리 삶의 인생 막장에서 내일이라는 의미가 진정으로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니 나도 기분이 묘해진다. 대부분 명예와 돈을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생로병사. 그래도 지금 내 귀에는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춤을 추던 할머니의 행복한 얼굴과 피더슨 씨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잔잔히 남아있다.

최미자의 미주문인협회 문학서재 주소 mijumunhak.net/mi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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