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절규와 몸짓으로 단테를 부활시키는 볼로냐
[볼로냐, 볼로네세] 절규와 몸짓으로 단테를 부활시키는 볼로냐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7.07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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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상원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한다. 이탈리아의 유명 배우 로베르토 베니니가 혼신의 힘을 다해 단테를 낭송한 데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참가한 이 낭송은 이탈리아 전국에 생중계됐다. 이탈리아어를 몰라도, 단테의 「신곡」을 몰라도 이 배우의 목소리, 손짓에 빨려들게 된다. 유튜브에서 로베르토 베니니의 단테 「신곡」 낭송을 Roberto Benigni - Canto 1 Divina Commedia로 검색해서 이 아름다운 노래를 들어볼 일이다.

최고 배우와 상원이 힘을 합해 단테를 낭송한 것, 역시 문화리더 국가 이탈리아답다. 교황도 단테의 생일 750년을 기념하여 ‘단테는 희망의 예언자’라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단테 탄생 750년을 기념하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로마, 피렌체, 라벤나를 넘어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웃 도시 피렌체가 워낙 단테를 자랑하니 볼로냐의 단테는 늘 희미하다. 그렇지만 유럽 지성사에서 볼로냐의 위상은 피렌체가 감히 넘볼 수 없다. 대학의 어머니, 볼로냐 대학 때문이다. 볼로냐 대학은 단테의 모교이다.

볼로냐에서도 단테 탄생 750년 행사를 여러 개 하고 있다. 낭송회, 음악회, 강연 등이 있다. 아퀴나스 문화센터에서는 단테 「신곡」을 주 1회씩 거의 1년간 낭송한다. 단테 탄생 750년 행사 가운데서 특기할 만한 것은 묘지에서 심야에 단테 「신곡」의 지옥편을 재현하는 것이다.

지옥편을 음산한 묘지에서 심야 행사로 진행하는 볼로냐 시민들의 진지함과 단테 사랑이 엿보이는 행사이다. 2015년 7월 2일 밤 9시에 볼로냐 시민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볼로냐 근교의 묘지 체르또자(Certosa)에 모였다. 볼로냐의 체르또자 묘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묘지들 가운데 하나이며 19세기 20세기의 조각과 건축으로 유명하다.

1801년에 문을 연 이 무덤은 볼로냐의 자랑 가운데 하나이다. 오늘, 유명 배우 알레싼드로 땀삐에리(Alessandro Tampieri)가 1인극으로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한 밤 중에 공연했다. 집 주인이 주최측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면서 한국에서 온 사회학 교수라고 나를 소개했다. 그 덕분에 예약자 명단에 내 이름이 정확히 적혀있었다.

입장료를 내려고 하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나를 위해 준비한 영어 번역본을 사무실에서 가져다주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왼쪽에는 성당이 있다. 마당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좀 있으니 아래위로 온통 검은색 옷을 입은 분이 오더니 “오늘 와 주셔서 영광입니다”라고 했다.

체르또자 묘지의 성당 신부님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제가 영광입니다”라고 간단히 답했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보니, 공연의 주인공 알레싼드로 땀삐에리였다. 그는 오늘 단테 신곡 지옥편 34개 장 가운데 제5장(간통의 죄를 범한 빠울로와 프란체스카), 제6장(탐욕 죄를 범한 자들), 제13장(자살의 숲), 제26장(거짓말 죄를 범한 자들), 제33장(배신 죄를 범한 자들) 등 다섯 부분을 온 몸으로 연기했다.

단테가 비르질(Virgil)의 인도를 받아 지옥을 돌아다니면서 죄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단테가 만나는 죄인들의 고통을 21세기의 눈으로 재현했다. 볼로냐의 체르또자 묘지는 여러 개의 건물로 됐고 상당히 넓다.

이 공연도 5 곳을 돌아가면서 진행됐다. 원래 공연장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묘지이므로 지옥에서 고통 받는 죄인들의 모습을 표현하기에 더 자연스럽다. 음산한 귀신 소리, 고통 받는 사자의 신음소리가 복도와 건물 공간을 가득 메운다.


깜깜한 묘지, 앞이 안 보이는 실내 묘지의 복도와 어울려 죄인들의 고통은 살갗에 와 닿는다. 음향장치로 된 고통소리가 멎자 알레싼드로 땀삐에리의 몸짓, 목소리를 통해 죄인들의 호소가 너무나 강렬히 다가온다.

사람들은 숨죽이고 몰입된다. 책으로 볼 때는 장편의 시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연극으로 보니, 노래이자 절규이다. 의자에 앉아서 낭송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연기한다. 절규하듯이 시를 고통스럽게 읊는다. 단테 신곡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끝나고 헤어질 때 배우가 물었다. “오늘, 이해하셨습니까.” “아뇨, 이탈리아 말을 이해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귀하의 절규와 몸짓을 통해 이해했습니다.”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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