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쌀라보르사, 로마 유적 위에 세운 도서관
[볼로냐, 볼로네세] 쌀라보르사, 로마 유적 위에 세운 도서관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7.20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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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라보르사(Salaborsa)에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반가이 맞아준다. 7월 3째 주, 볼로냐의 여름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8도를 오르내린다. 볼로냐엔 좁은 골목들이 촘촘히 있고 그 사이엔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들의 열기 때문에 중세도시 볼로냐의 여름날 체감온도는 아주 대단하다. 낮 최고 기온이 오후 4~5시까지 계속 되니 낮에 정상적으로 활동하긴 너무 힘들다. 이렇게 더운 날엔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곳을 찾아야 한다. 중세 도시라 그런지 에어컨 틀어주는 곳을 찾기 어렵다.

다행히 삐아짜 마조레(Piazza Maggiore, 대광장)에 있는 시립도서관 쌀라보르사에는 에어컨을 틀어준다. 볼로냐 대학의 강의실에도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대단한 일이다. 쌀라보르사는 기원전 7세기의 에투리아 유적 그리고 로마 시대 유적이 있던 역사적 자리에 서 있는 시립 도서관이다.

이 지역은 로마 이전의 에트루스칸 시대의 중요한 유적지이고 로마 시대에도 도시의 중심이었던 유적지였다. 이 자리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볼로냐 역사는 물론 이탈리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다.

지금도 도서관의 한 부분에는 로마 유적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누구나 그 현장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책을 보는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로마 역사의 현장을 보러 갈 만한 곳이다.

더욱이 이 쌀라보르사 건물 자체가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쌀라보르사는 처음부터 도서관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큰 빨라쪼(Palazzo, 궁전)로 지어졌기 때문에 수수하게 보이는 외관과 달리 뛰어난 건축물이다. 장서가 20여만권 정도라고 하니 규모로 봐서는 그렇게 큰 도서관이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만 현대적 공공 도서관에서 느낄 수 없는 역사적 광채가 건물 곳곳에서 우러나온다. 쌀라보르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이 공간의 다채로운 활용이다. 에투르스칸, 로마시대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달리 공간 활용은 완전히 현대적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도서관이 아니라 고급스런 광고물이 가득 찬 명품 백화점 같이 느껴진다. 처음 들어선 사람들도 친근감을 느끼도록 공간을 역동적으로 꾸몄다. 1층(지상층)의 로비는 강연회나 전시를 할 수 있게 꾸며진 광장이다. 사방에 궁전의 건물이 있고 그 가운데에 정원이 배치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현대 도서관 건물의 로비와는 개념이 다르다. 이 널찍한 로비는 도서관을 생동감으로 넘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그때그때 주제를 바꿔가면서 전시도 하고 여러 가지 행사가 진행된다. 로비 3면에는 개가식 도서실이 배치되어 있고 이탈리아어를 비롯해서 각종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공간도 있다.


2층에 올라가면 가운데가 비어 있어 아주 시원하게 느껴지고 로비를 내려다보면서 공동체의 품에 안겨 있음을 느끼게 된다. 텅 빈 가운데 주위로 그룹 공부방, 볼로냐 역사 자료실, 신문 잡지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한 층 더 올라가면 도시 센터라는 공간이다. 시 정부와 주민간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볼로냐시의 변천, 볼로냐 시의 현재와 미래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포스터 자료와 도면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민들이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 수 있게 되어 있다. 도서관의 한 층 전체를 열린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민주주의 도시 볼로냐답다. 도서관을 돌아보고 나오다 중심 출입구와 약간 어긋나게 있는 어린이·청소년 도서관 출입구를 보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사서 엔리카 메나르빈(Enrica Menarbin)씨가 반가이 맞아준다.

사진 몇 장만 찍고 돌아서려는데 아래층도 보라고 한다. 엔리카 메나르빈씨를 따라 가서 어린이 도서들을 보는 데 한글 책이 눈에 띄었다.

“여긴 한글책도 있나요?”했더니, “네, 수백 권 됩니다. 볼로냐 도서전이 끝나면 한국출판사들이 기증합니다”라고 한다. 시민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삐아짜 마조레에 있는 공공 도서관에서 한글 도서를 보니 반갑다. 눈에 띄지 않는 귀퉁이에서가 아니라 눈에 잘 띄는 진열대에서 말이다. 볼로냐는 역시 문화의 도시이고 문화 다양성를 실천하는 모범도시이다.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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