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 '항복방송 음원 공개'에 행간(行間)은 없을까?
[칼럼] 일본 '항복방송 음원 공개'에 행간(行間)은 없을까?
  •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발행인
  • 승인 2015.08.05 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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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시점? ...아베 정부에 대한 경고 메시지?
▲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발행인

'전쟁할 수 있는 나라' 문제를 두고 일본 황실과 아베 정부의 생각은 서로 좀 다른 게 아닐까? 나가사키 역 인근의 중국집에서 나가사끼짬뽕을 시켜두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날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로 내려오면서 본 신문 기사들이 이런 생각을 부추겼다. 일본 신문들은 황실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이 이른바 '옥음방송'이라는, 쇼와천황의 항복 방송 음원을 공개한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궁내청은 2차대전 항복을 발표한 쇼와천황의 육성방송 음반과 음원을 처음으로 공개한다면서, “역사적 사료를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나아가 궁내청은 항복방송 음원과 함께 당시 항복 문제를 논의한 지하벙커의 지금 모습까지 공개했다. 궁내청은 여러장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지하벙커는 손질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궁내청이 공개한 사진들에서는 지하 벙커의 쇄락한 모습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일본 권위지인 아사히신문은 이같은 소식을 1면과 사회면, 그리고 사설까지 동원해 비중 있게 소개했다. 사회면에서는 당시 항복방송을 들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라디오 방송으로 선명하게 들리지 않고,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서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웠다”고 소개하면서 “하지만 천황의 조용한 목소리가 항복의 분위기를 실감시켰다”는 내용을 전했다.

나아가 사설에서는“황궁 지하벙커를 쇄락한 채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궁내청이 공개한 지하벙커 사진은 지난 7월 중순에 촬영된 것으로 1965년 이후 처음 촬영돼 공개된 것이라고 한다. 사설은 “방공호가 황궁 안에 있기는 하지만 오랜 기간 빗물이 새고 흙이 스며들어서 벽과 바닥이 부식됐다”면서, “궁내청은 향후에도 특별한 보존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후세의 사람들이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던 것.

이 같은 내용을 보면서 머리를 스친 의문이 있었다. 일본 황실은 왜 지금와서 쇼와천황의 항복방송 음원을 공개하고, 지하벙커의 쇄락한 모습을 노출시키면서 앞으로도 고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일본에서는 황실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금기로 돼있다. 황실의 활동에 대해 궁내청이 밝히는 이상으로 보도하지도 않고, 추측기사도 내지 않는 게 일본 언론이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항복음원과 지하벙커 사진 공개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것은 황실문제에 대한 보도가 금기라는 점에서 이해할만하다.

뿐만 아니라 황실 역시 입헌군주론에 입각해, 현실 정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발언하는 것을 금기로 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을 치른 쇼와천황까지도 “항복 논의를 할 때 내각의 의견이 서로 나뉘어져 있어 내게 결정을 의뢰해와서 항복을 결정한 것”이라고 밝히고 “그 일 밖에는 내각의 논의에 조금도 개입하지 않았다”고 ‘독백록’에서 밝혔을 정도다.

그런 가운데 황실이 70년만에 항복방송 음원과, 방치하고 있는 지하벙커의 모습을 공개한 것이다. 특히 아베 정부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외치면서 중국과 한국 등 주변국과 전례없는 마찰을 빚고 있는 와중에 발표된 것이다.

과연 그 발표에 행간은 없을까? 혹 일본 황실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치닫는 아베 정부에 과거의 전철을 되밟지 않도록 경고를 보낸 것은 아닐까? 그 시그널을 이 같은 방식으로 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정말 틀린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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