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종차별철폐법안이 없는 일본은 미래도 없다
[사설]인종차별철폐법안이 없는 일본은 미래도 없다
  • 박완규 논설주간
  • 승인 2015.08.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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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서 혐한시위의 대명사로 일컫는 '헤이트스피치(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시위)를 규제하는 법안이 제출된 지 두 달 보름여 만인 지난 4일 참의원 법무위원회가 심의에 착수했다.

'인종 등을 이유로 하는 차별 철폐를 위한 시책 추진에 관한 법률안(이하 차별철폐법안)' 발의를 주도한 아리타 요시후(有田芳生) 참의원 의원(민주당)은 4일 취지설명에서 "헤이트스피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부정하는 것으로,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차별을 없애고, 인종 등이 다른 사람끼리 공생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법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인종차별철폐를 의제로 하는 법안 심의가 전후 일본에서 처음으로 열리면서, 수많은 방청인과 언론의 취재 열기 때문에 심의를 진행하는 방을 넓은 곳으로 옮겼을 정도로 법안에 대한 세간의 높은 관심도를 반영했다.

의미있는 역사적 사건이요, 쾌거다. 참의원내 ‘인종차별철폐 기본법을 요구하는 의원연맹’과 재일민단을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들이 앞다퉈 차별철폐법안의 조속한 심의를 촉구하는 등 여론의 압박공세가 얻어낸 결과다. 특히 민단이 조직적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법률제정을 진정하는 활동을 꾸준히 벌여온 것이 주효했다.

국제사회의 압박도 한 몫을 했다. 일본에서의 헤이트스피치에 대해 유엔 인권위원회는 지난해 7월 가해자 처벌 규정을 담은 법률을 마련하라고 촉구했고,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작년 8월 헤이트스피치를 한 단체나 개인을 필요시 기소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재일민단의 진정 노력으로 일본 국내 180개 이상의 지방의회가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법 규제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채택하자 법안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집권 자민당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심의를 개시하는데 동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차별철폐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고 험할 것으로 보인다. 어렵게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단지 이념법으로써, 벌칙규정이 따로 없어 실효성이 있을 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복잡한 문제의 소지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일본내 일각에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규정 이외의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베정부도 이런 이유를 들어 '현행법을 적절히 운용해 혐한 시위에 대응하겠다‘며 사실상 헤이트스피치에 법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분명한 사실은 현행법으로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한 헤이트스피치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 인종차별을 규제하는 법률이 없다보니 일본 공무원들은 '법적 규제를 할 정도의 차별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해왔다.

지금은 차별 행위가 있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었던 것처럼 여겨졌지만 차별철폐법을 만들면 차별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이 법이 발효되면 헤이트스피치가 위법임을 선언하는 것에 다름아니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단체에 공공시설 대여를 제한하는 등 조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차별철폐법안 '기본 원칙'에도 인종을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 괴롭힘, 모욕 등으로 타인의 권리 및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을 담고 있듯, 법안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선인을 죽여라’ 하고 외치는 추악한 혐한시위에 아무런 법적 규제가 지금까지 없었다. 규제가 없기 때문에 통계가 있을리 없고, 피해자가 나올리 만무했다. 일본사회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한인들이 직면한 인권의 문제요, 생존권의 문제다. 차별철폐법안 마련이 필수불가결한 까닭이다.

헤이트스피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부정하는 공공의 적이요, 사회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기에 더는 늦출 수 없다. 반인륜적인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끼리 공생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사회라면 단언컨대, 일본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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