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차이를 넘어 하나됨을 찾아 나선 마떼오 리찌
[볼로냐, 볼로네세] 차이를 넘어 하나됨을 찾아 나선 마떼오 리찌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8.08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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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의 대표적 성당 가운데 하나인 산 도미니꼬 성당의 전시회에 갔다가 마떼오 리찌의 「천주실의」를 샀다. 중국어-이탈리아어로 돼 있다. 이탈리아에 온 차에 마떼오 리찌라는 거인의 생가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인터넷으로 뒤져도 그의 생가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어서 그의 고향인 마체라따 시의 관광과에 전화를 걸었다. “마떼오 리찌 신부님 집이나 그 분 박물관을 찾아가려고 합니다”라고 하자 “그 분에 대해서 찾으려면 중국으로 가야해요, 그 분은 중국에서 사셨고 중국에서 돌아가셨어요”라고 답했다.

관광과 직원은 마체라따 시에 와도 아무 것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향과 고향사람을 사랑하니까 그의 고향에 뭔가 흔적이 있지 않을까 하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떼오 리찌(Matteo Ricci 1552-1610)는 동서 문명 교류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이탈리아 마르께(Marche) 주의 마체라따(Macerata)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로마에 가서 수업을 추가로 받은 다음 동양 선교의 길을 떠났다. 그의 나이 25세였다.

인도에 도착해서 신부 서품을 받고 마카오로 갔다. 그는 서양인 최초로 중국에 살면서 한문공부와 중국문화를 공부했다.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그는 한문으로 󰡔천주실의󰡕를 저술하고 중국 학자들과 중국어로 토론을 할 정도가 됐다.

그의 중국연구는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 1897)와 같은 석학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마떼오 리찌의 해박한 지식을 명나라 황제가 알아보고 그를 황제 자문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지도 제작, 수학, 천문학 등 과학에도 뛰어난 조예를 지녔기 때문이다.


볼로냐에서 열차로 4시간 걸려 마체라따 역에 도착했다. 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탔다. 10분 뒤에 시내 중앙인 리베르따 광장에 도착했다.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종업원에게 마떼오 리찌 신부님의 생가나 박물관에 대해 물었다.

종업원들 몇 명이 모이더니 다시 어떤 테이블에 가서 손님3명과 함께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마떼오 리찌 흔적은 찾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아무 흔적도 없다니 맥이 풀리고 식사가 넘어가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종업원이 놀라서 달려오더니 식사 나머지 절반이 지금 나왔는데 취소할 거냐고 묻는다. 순간적으로 나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앉아서 얼론 식사를 마쳤다. 그냥 볼로냐로 돌아오려다가 온 김에 대성당을 보고 가자고 생각했다. 혹시 대성당에 가면 마떼오 리찟 신부를 아는 신부님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약간 언덕길을 올라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 마당으로 발음 들여놓는 순간 뭔가 눈에 확 들어왔다. 성당바깥 벽에 두 개의 큰 휘장이 있고 휘장에는 마떼오 리찌라는 이름이 보였다. 한 휘장은 마떼오 리찌의 초상이고 다른 하나는 묘지명을 확대한 것이다.

모든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까이 가보니 대성당 입구쪽에 마떼오 리찌의 흉상도 있다. 흉상 앞과 좌우에는 대나무가 가지런하게 자라나 있다. 선비의 상징 대나무다. 조선 선비처럼 갓을 썼더라뎐 영락없이 조선의 선비다.

수염을 기른 표정은 매우 온화했다. 중국에 들어간지 400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에 세웠다고 돼 있다. 묘지명은 “야소회 선비 이공지묘(利公之墓)/이 선생, 휘 마두(瑪竇), 호 서태(西泰), 대(大) 서양 이탈리아(意大里亞)인/어릴 때 야소회에 가입하여 수련을 하고 중국 만력 황제 임오년에 중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다 만력 황제 경술년에 졸하여 향년 59세”라고 돼 있다.

이탈리아 이(利)씨의 시조이자 마지막이다. 그러나 학문과 신앙에서는 수많은 자녀를 가졌다. 기차 시간에 늦지 않게 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오는 길에 마체라따의 자랑, 야외 오페라 극장(Sferisterio)이 보였다. 리골레따, 라보엠 등의 포스타가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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