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낳은 마떼라
[볼로냐, 볼로네세]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낳은 마떼라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8.25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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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깁슨(Mel Colm-Cille Gerard Gibson 1956~)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는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을 그렸다. 로마 시대에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는 죄수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십자가형은 반란 범이거나 흉악범들에 가해졌다.

살점이 찢겨나가는 채찍질을 당하고, 자기가 처형당할 십자가를 메고 언덕을 올라간다. 언덕에 올라가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다. 요즘 사형처럼 일반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처형되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언덕 높은 곳에 십자가가 세워진다.

채찍질을 당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예수의 모습과 그것을 보고 있는 마리아의 애끓은 고통이 겹쳐진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과정도 리얼하게 그려졌다. 가끔씩 카메라는 언덕 아래의 로마시대 주택들을 보여준다. 죄수, 사형집행인, 주민들이 언덕에 도달하고 죄수의 손과 다리에 못이 박혀진다.

카메라는 또 언덕 아래의 로마시대 마을모습을 보여준다. 잿빛 주택들은 로마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십자가 형벌의 잔혹함, 예수의 고통을 깊고도 은은하게 그려준다. 바로 이곳이 로마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이탈리아 바질리까따 주의 마떼라(Matera)이다.

마떼라는 바위 언덕에 사람들이 굴을 뚫어 집을 지었다. 이 석굴을 싸씨라고 한다. 싸씨(Sassi)는 마떼라의 독특한 주거양식이다. 주민들이 석굴을 파서 교회와 집을 만들어 수천년 살아온 것이다.

싸씨 혹은 싸쏘는 바위를 뜻하므로 돌과 관련된 이탈리아 지역에는 싸쏘나 싸씨라는 이름이 많다. 그러나 마떼라의 싸씨가 가장 유명하니까 싸씨라고 하면 마떼라를 말한다. 6000년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도 교회, 카페, 호텔, 선물가게,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화 제작의 현장이고, 아름다운 호텔, 카페, 선물가게, 교회 등이 있으니까 화려한 모습으로 비쳐지지만 석굴 생활은 위생에 좋지 않다. 한국의 도시로 말하자면 판자집들, 토굴이 닥지닥지 모여 있는 달동네와 같은 곳이다.

마떼라의 싸씨는 가난한 농민들의 집이다. 지금도 마떼라 싸씨의 두 곳은 농민들의 생활을 전시하는 민속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각기 2유로씩 받으니 좀 비싸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싸씨의 생활 현장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입구는 하나이지만 석굴이 여러 개의 층으로 되어 있고 크고 작은 방들이 여러 개 있다. 부엌은 물론이고 마굿간도 있다. 각종 다양한 총기류를 보관한 창고도 있고 곡식 창고도 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상영 이후 마떼라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곳에 가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유명 관광지 치고는 교통이 좋은 편이 아니다. 남부 이탈리아의 바질리까타 주에 있으니까 기차나 비행기로 뿔리아 주의 브린디시(Brindisi)까지 가서 자동차로 가야 한다. 나는 브린디시까지 비행기로 가서 자동차를 렌트했다.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 마떼라(Matera)의 숙소를 쉽게 찾았다.


저녁을 먹고 도메니꼬 리돌라 길을 따라 국립박물관이 있는 빨라죠 란프랜끼(Palazzo Lanfranchi)로 갔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다가가 박물관 반대편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박물관 언덕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집들은 물론이고 왼쪽으로 건너 두오모 쪽 언덕의 싸씨, 전등 불빛 속에 빛나고 있는 마돈나 데 이드리스(Madona de Idris) 교회 쪽 싸씨, 모두 장엄하고도 화려했다.

석굴이 유명하다니까 석굴 한두 개 있으리라 생각하면 잘못이다. 마떼라에는 깊은 계곡이 있고 계곡 양 쪽 언덕을 따라 아파트 단지 모양으로 석굴들이 촘촘히 있다. 2019년 유럽 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지정될 정도로 ‘큰’ 타운이다.

이른 아침에 언덕 쪽에서 마떼라를 보는 것도 장관이고, 해 진 무렵 언덕의 돌담에 기대 앉아 싸씨의 불빛이 하나 둘 밝아지고 마침내 크리스마스 장식 모양 온 언덕이 수 만 개의 불빛을 자랑할 때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이 때 그 감동을 더 해주는 것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생각나게 하는 성당 종소리이다.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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