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문학공부 하던 날
[Essay Garden] 문학공부 하던 날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5.09.02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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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 토요일 이른 아침, 장거리 운전을 함께 하며 갈 딸을 깨워 밥도 못 먹고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알 수 없는 고속도로의 정체시간도 걱정이지만 강연장 호텔의 파킹장도 궁금했다. 70~80 마일로 달려 세 시간 쯤 걸려 도착하니 발레파킹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평생대학이라는 강의실이 사방에 있어 문학을 공부할 수 있지만, 해외동포는 대부분 생업하며 살아가기에 여건이 매우 어렵다. 나도 대학 때부터 독학으로 글을 써왔다. 미국에 사는 동안은 한국에서 발행되는 여러 문학지와 수필평론과 강론 등의 책을 구입하며 공부해오고 있지만, 항상 문학에는 목이 마른다. 로스앤젤레스에도 크고 작은 여러 모임이 결성돼 문학의 붐이 일어 난지 오래이다.

올해행사는 뱃장이 두둑한 여류시인 장효정(미주문인협회) 회장이 주관하는 행사여서일까? 강의 장소도 넓어 예년과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재미수필가, 재미시인, 미주한국 수필가 협회인 네 단체가 지난해부터 마음을 합쳐 이루어내는 연중 큰 문학행사이다.

내년에는 재미수필가협회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백여 명이 넘는 분들이 모였다. 비행기와 자동차를 타고 타주와 타시에서도 참석했다고 한다. 반가운 문인들의 얼굴이 여기저기 보이고, 무대 위에 걸려있는 다정한 현수막의 글 ‘미주문학인의 큰 뜻, 큰 만남’이 내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첫 강사는 한국에서 한국수필가 협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많은 저서로 이름이 알려진 유혜자 여류수필가이다. 1970년대 문화방송 제작부에서 활동하기도 한 그는 최근에 발행된 음악에세이 책을 독자들이 좋아한다며 오래 된 자신의 글쓰기 이야기로 시작했다.

강의록을 펼치니 ‘한국 현대수필 50년의 변화와 발전방향’이라는 큰 제목이 다가온다. 우리 고전에도 수필은 시작됐지만, 1970년대에 전문수필가들이 모여 수필문학이 정립되기 시작했으며 71년에는 한국수필가 협회(회장 조경희)가 창립됐다고. 이어 72년 3월에는 김승우, 김효자 교수부부가 월간 수필문학을 창간하여 많은 분들이 수필작품을 발표하며 활동했던 시간도 다시 기억해주었다.

그 외에도 작고한 양주동, 안병욱, 김소운, 전혜린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들의 활동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필 문학의 화려한 존재를 미주문인들에게 돌아보게 해주었다. 또한 최근 한국에서는 석사과정으로 문학치료학과도 개설됐으며 ‘웰빙 시대의 수필치료’라는 정목일 수필가의 논문을 소개하며 가장 효과적인 문학 장르가 수필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모든 수필은 때론 쓰는 사람은 물론 읽는 사람에게도 병을 고치는 치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락을 먹는 점심시간에는 재주꾼인 김화진 수필가가 기타를 매고 나와 여준영 수필가와 함께 흥겨운 노래와 몸짓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오후에는 기대되는 문예창작과 교수인 두 분의 강의가 이어졌다. 시인이며 경희사이버대학의 김기택 교수는 ‘시는 무엇을 어떻게 묻는가?’라는 제목으로 어떤 시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짧은 시간에 잘 요약해주었다.

이수지 작가의 글자 없는 동화책을 읽고 느낀 감동이야기를 영상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순간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어떻게 독자에게 자극해야 하는지를. 독자의 몸과 마음에서 감동을 발생하게 하는 시는 설명이 아니라 물어야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다른 여러분의 시도 소개했지만, 특히 정현종의 시 ‘한 꽃송이’와 ‘생태기’ 등를 예로 무엇을 묻는가를 강의했다. 강의록에 소개된 김기택 교수의 시 ‘얼굴’을 읽으며 나는 미래의 해골이 아닌 지금, 감각이 마비돼 사는 바보인 나의 해골에게 잠시나마 진지하게 물어보아야만 했다.


감정의 설명이 아닌, 또 답을 말하지 않고 독자에게 묻는 시를 과연 우리는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를 골돌히 생각해야만 했다. 여태 나는 감히 시를 쓸 엄두를 못 내었지만, 진정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하는 절심함과 사무침을 느끼게 해준 강의였다.

마지막 강의는 부록이라면서 졸리는 분은 주무셔도 된다며 너그러운 우스갯소리로 연단 아래서 방현석 교수가 우리들의 나른함을 번쩍 깨우며 시작됐다. 문학이 어디서 생겨나 어떻게 왔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강의는 한마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었다.

스토리텔링이 없는 역사와 인류는 하나도 없단다. 어떤 이는 문학의 열정이 인터넷에 밀려나갈까 걱정하기도 하지만, 약 두 시간에 펼쳐진 그의 명 강의 안에는 문학이 펄펄 살아있었다. 왜? 오래전 인류가 바위에 남긴 암각화처럼 사람들은 이야기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장구한 역사속의 스토리텔링은 계속돼질 것이란다.

우리나라 역사 속의 인물을 통하여, 또 소설 ‘백년보다 긴 하루’라는 책 속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노예(만쿠르트)의 슬픈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정체성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라고 방 소설가는 강조했다. 우리 한국의 전통 풍습인 제사도 추억하며 사람들이 모여 스토리텔링 대회를 여는 자리라며 밤과 대추, 감이야기로 뿌리를 잃어버리고 사는 우리를 은근히 반성케 해주었다.

이 행사에 참석한 박경숙 소설가는 오랜만에 문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기뻤고, 스토리텔링이 문학이라는 큰 고리로 우리 삶과 연결되는 관계를 새삼 배울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인류가 소멸하지 않는 한 문학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준 방교수와 두 분의 강의가 한동안 나의 뇌리에 화두로 남아있을 것 같다.

일상에서 하는 말은 사라지지만 가치 있는 글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정체성 있는 사람이 돼 생각하면서 마음을 정리한 후, 어떤 문학 장르의 글을 써야 할 것인가를 인류를 향한 꿈과 사명감으로 즐겁게 고민해야겠다.

최미자의 미주문학서재
http://mijumunhak.net/mi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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