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외개척기⑩] 채풍석 회장 "탄자니아에 170억불 진단시약 계약"
[나의 해외개척기⑩] 채풍석 회장 "탄자니아에 170억불 진단시약 계약"
  • 채풍석 전 탄자니아한인회장
  • 승인 2015.09.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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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설득한 끝에 첫 계약...아프리카 비즈니스에는 '기다림'이 묘약

▲ 채풍석 회장
2001년, 밀레니엄을 시작하고 첫해를 맞은 4월에 탄자니아라는 나라를 찾게 되었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아 1주일간의 여행을 핑계로 찾은 탄자니아는 그후 15년 동안 나를 묶어두었고,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프리카는 예상했던 것보다 어쩌면 더 혹독한 땅일지도 모른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생각해보니 지난 15년 세월동안 아프리카에 배운 것은 길고 긴 기다림이었다. 금광을 찾아오신 분들도 있고, 자원을 찾아오신 분들도 있겠지만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모두에게 똑같이 평등하게 기다림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 곳의 태양은 지칠 줄 모르기 때문에 사람도 끊임없이 기다려야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할지도 모른다.

‘빨리빨리 해봐야 결국 되돌아온다'는 아프리카의 말은 ’하라까 하라까 하이나 바라까‘라고 한다. 어찌 보면, 내가 이 말의 뜻을 진정으로 깨닫는데 15년의 세월이 걸린지도 모르겠다. 탄자니아 말로 ’깨쇼‘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내일‘이라는 뜻인데 탄자니아의 내일은 일주일도 되고 한 달도 되며 심지어 1년이 되기도 한다. 나는 농담 삼아 현지인들에게 ’깨쇼 바이러스‘로 인해 죽을 지경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탄자니아는 원조를 받는 수혜국이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650불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이며, 케냐와 우간다를 국경으로 하며 빅토리아 호수가 있으며 킬리만자로산이 있는 나라이다. 남북한 대사관이 있으며 과거에는 북한과 더 친밀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이렇게 간단한 정보를 알기까지도 사실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내가 탄자니아의 1주일을 보내게 된 것은 진단시약 때문이었다. 처음 말라리아, 에이즈 등의 진단시약을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수주할 수 있을 까하는 사업구상으로 탄자니아를 찾은 후, 이른바 ‘깨쇼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15년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외국 사람으로 현지에서 사업을 빨리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사업의 규칙은 경비를 절약하고, 수익을 늘이기 위해서 빨리 일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자명한 상식이다. 그러기 위해 많은 사업가들이 높은 관리에게 줄을 대기도 하고 로비도 하며 다양한 인맥을 동원하여 사업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탄자니아에서는 이런 일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때가 더욱 많다. 아프리카는 탄자니아뿐 아니라 그 어느 곳에서라도, 대체적으로 비슷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우리 교민들이 공통된 경험이니 검증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의 이런 경향을 이용하는 사례가 종종 있으며, 의외로 많은 한인들이 이런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랫 사람들에게 윗사람의 지시를 강요하는 문화가 없다. 기왕에 직분이 주어졌다면 그 직분에 있는 자가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강제하거나 서둘러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내일, 다음 주, 다음 달에 된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기 때문에 아무런 약속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1주일은 어느새 15년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문화와 예의는 아무것도 강요하거나 강제하여 일을 시키는 일이 없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나는 이런 아프리카에 적응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는 모든 것을 강점으로 만드는 성향이 있다. 처음 1주일을 목표로 한 나의 사업구상이 1년, 2년이 지나면서 초조해졌지만, 나는 매일같이 탄자니아의 보건부를 찾아갔다.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더라도 찾아가 인사하고 또 찾아가 인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목표한 계약을 이룬 것은 탄자니아 보건부의 고양이도 나를 알아보고는 인사할 정도로 친해졌을 때였다. 탄자니아에서 5년을 보내고서야 첫 계약에 도달 할 수 있었으니, 놀랍지만, 탄자니아에서 첫 1주일은 5년이 지나서야 지나갔다고 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 1주일을 포기했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탄자니아에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들어와 사업을 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현지에서 창업하지만 한국인이 성공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 눈에 보이는 일도 있다. 아마도, 그 첫 번째는, 한국인의 대표적 인간관계인 ‘정’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인 식당에서 일하는 현지인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한국인 사장님은 평소에는 무척 친절하고 자상하지만 일을 할 때는 심하게 무안을 주거나 질책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욕설을 하며 나무라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손님이 찾아와서 자리에 앉아서 물 한잔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을 때, 현지인 종업원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물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럴 때 한국인 사장님은 바로 현지인 종업원을 질책한다.

반면에 유럽인 식당 사장님은 현지인을 불러서 물을 지금 가져다 줘야 하는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럽인 사장님은 평소 한국 사장님처럼 정을 잘 나누지 않고, 사적인 친밀관계를 잘 맺지 않는다는 것이다. 굉장히 다른 차이지만 아프리카에서 한국인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사례라고 할 있다. 한국인의 이런 기질적인 성향이 아프리카에서 한국인의 성공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라는 생각을 가끔씩 나도 하게 된다.

너무나 빠른 결과를 바라는 사람들은 대개 실패와 실수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아프리카에서 ‘다음 기회’란 말은 한국인에게는 ‘포기’로 이어지기가 쉽다. 아프리카는 불편함과 어색함이 익숙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

아프리카에서 살다보니 많은 한국 지인들이 여행을 온다. 이들이 여행을 와서 차량으로 이동하다가 자동차가 펑크라도 나거나 고장이 나면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여행에 차질을 빚게 되어 화가 나겠지만 여행은 말 그대로 여유로움을 필요로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한 번은 아프리카로 사파리 단체여행을 온 관광객이 여행사를 상대로 화를 내고 욕설을 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사파리 여행을 왔는데, 사자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자는 개체수도 많지 않고 아프리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얼룩말도 기린도 보았지만 백수의 왕 사자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드넓은 아프리카의 초원을 보는 것만으로는 한국 여행객들에게는 화가 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한국인의 기질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놀라운 국가발전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아마도 실패와 좌절에 직면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진실이다.

탄자니아에서 진단시약 판매 계약을 맺지 못하고 5년째 보내다보니 나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에게 양치기 소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 내일 계약될 거야” “어, 다음 주에 꼭 된데” 이렇게 내일 모레를 기약하며 흐른 세월이 5년이 되다보니 현지에서 내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사실, 나는 탄자니아에서 차를 세 번이나 팔고 살만큼 ‘깨쇼 바이러스’에 중독되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진단시약의 샘플이 탄자니아 보건부 검사를 통과했고 그 평가에 따라 판매권을 받을 수 있다는 답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5년 만에 받은 이 통지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우리 회사인 SD Africa와 현지 탄자니아인이 오너로 있는 오리엔트 트레이딩 컴퍼니, 이 두 개 회사가 한국본사의 독점적 판매권을 동시에 주장하고 나서는 바람에 탄자니아 보건국은 한국 대사관에 질의서를 보내 “어느 회사가 현지의 독점적 대리권을 갖고 있느냐”고 확인 요청을 했다. 당시 한국 대사관 직원은 5년간의 나의 활동내용과 회사 내용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확답을 피한 채 “서울로 알아보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아무튼, 현지인을 존중하는 한국 대사관의 대처로 인해 1주일은 또다시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같은 한국인인 내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외면하는 대사관의 태도에 못내 섭섭했지만, 결국 이 계약은 성사되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했는가. 이제 물건을 납품해야 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지난 5년을 계약 성사 없이 지내다 보니 수중에 자금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양치기 소년처럼 ‘늑대가 나타났다’를 몇 번이나 반복한 처지여서 한국에서의 신용도 이미 바닥에 도달, 더 이상 자금이 없는 상태였다. 한국 본사에선 진단시약의 선입금을 요구한 것이다. 170만불을 어떻게 갑작스럽게 마련해야 할지 도대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죽자고 달려왔더니 목적지가 막다른 골목이라는 생각에, 죽음 앞에 도달한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이다.

탄자니아는 한국말로 나쁘게 좀 말한다면 ‘베알이 없는 나라’라고 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배려가 깊다. 탄자니아 국민들 중에서는 북한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도 많다. 그들은 한국이 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죽이고 싸워서, 국가가 갈라서 원수처럼 지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말로 역사적 배경을 들이대며 설명해줘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갸우뚱댄다.

절망의 끝에서, 끼니를 걱정할 만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나에게 탄자니아 현지인 친구들이 묻기 시작했다. 얼굴이 창백하고, 낯빛이 어둡다면서 아프냐? 괜찮으냐? 안부를 물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한동네에 살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고생했으며 현재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용기를 북돋으며 잘 될 거다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며, 때로는 감자를 들고 오기도 하고, 때로는 야채거리도 가져온다. 심지어 기름값이 없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내가 돈을 빌려주기 했다.

170만불을 구하지 못해서, 이제는 끝났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 때에, 절망 속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이었다. 어느 날 현지인 친구에게서 한사람을 소개 받게 된 것이다. 이 현지인은 “굉장히 돈이 많은 친구를 알고 있는데 가서 한번 빌려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한 자락 불빛이라도 기대야겠다는 심정으로 무턱대고 그와의 만남을 위해 달려갔다. 그곳은 해안가의 어느 요트클럽이었고, 그 자리에서 나는 5년째 탄자니아에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어떻게 살아왔으며, 이제야 계약을 성사시켰는데 물품을 가져올 금액이 없어서 죽기 직전이라고 솔직하게 털어 놓게 된 것이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그의 대답은 ‘You’re my commando'였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에게 그가 설명한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외국인으로서 아프리카에서 5년여를 기다리면서, 이 주문을 성사시킨 것은 대단한 전투능력이며, 믿음을 주는 행위라는 말이었다. 나는 감동을 받았고, 아마도 내 인생의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날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마도 정말 속절없이 계속 울고 또 울었던 것 같다. 그는 내가 우는 것을 이해하는 눈치였다. 특별히 우는 것을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곧이어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어보았다. 한참을 고민 끝에 20만 달러를 제안했다. 이 정도면 우선 급하게 시약을 들여와서 납품을 하며 잔금을 지불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아마도 170만 달러를 다 말했어도 빌려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아무런 고민 없이 “내일 주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돌아오며 또 다시 ‘내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탄자니아에서 ‘내일’은 기약 없는 ‘내일’임을 5년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그 하루는 정말 길었다. 그 첫 번째 ‘내일’은 3일이 지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약속한 ‘내일’이 삼일이나 지났지만 기다리던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전화를 걸고 말았다. 기다려야 한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전화속의 그의 목소리는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말만은 “미안하다”며 현지은행의 환전 등의 이유로 외국계 은행을 이용하느라 늦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다시, ‘내일’은 반드시 입금될 것이라 말했고, 전화는 끊어졌다. 그리고 ‘내일’은 다시 3일이 지나고 있었다. 다행히 그가 말한 ‘내일’은 더 이상 3일을 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내일’은 결국 1주일 만에 입금되어 수중으로 들어왔다.

은행에 입금된 숫자를 확인하고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돈이 정말 돈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유치하고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통장을 들고 은행으로 달려가 현금으로 돈을 얼마간 찾아보았다. 분명히 현지 은행은 현금을 나에게 지급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믿기지 않았다. 결국 이 돈을 시험해보기 위해 가까운 마트로 달려가 대충 이것저것들을 사고 계산하였다. 점원이 거스름돈을 주는 걸 보면서 ‘이것이 정말 돈이구나, 이건 확실한 돈이야’라는 믿음을 갖게 될 정도였다. 탄자니아의 잔인한 하루가 가는 순간이었다.

진단시약은 병을 진단하는 데 사용된다. 현지 정부가 에이즈로 죽어가는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계속해서 계몽했다. “에이즈는 병이 아니라서 죽지 않는다. 관리를 정확히 하고 안전수칙 등을 지킨다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학술적으로 발표된 내용이 믿음으로 확산되면서 진단시약 시장은 아프리카에서 시장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게 된다. 나는 탄자니아에서 학술세미나 등에 참여하며 에이즈 확산을 줄이는 방법 등을 강연하였다. 이런 활동을 통해 진단시약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계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아프리카로 진출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이러한 조심스러운 격려에 걱정과 우려를 함께 전하고 싶은 것도 있다. 한국에서 아프리카로 진출하는 젊은이들의 첫 번째 마음가짐은 기다리는 마음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프리카에 일확천금은 없다는 것이다. 금광, 다이아몬드 등 자원을 빌미로 엄청난 돈을 벌 것처럼 속이거나, 속여서 아프리카로 오신 분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안타까운 경험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미국에 가서 밤늦은 아르바이트해가면서 공부해야지, 아프리카나 중동에 가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놀라서 반대할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 독일에 진출한 한국인의 직종은 다양하지 않다. 그들의 선진국에 진출하여 영유할 수 있는 직업군은 마켓이나 식당, 아니면 세탁소 등의 한정적인 분야로의 진출 등이 대부분이지만, 아프리카나 중동에서는 엔지니어 및 기계 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 이것이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줄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부모들이 아프리카나 중동을 진출하는 것을 말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자신의 젊음과 청춘을 바치는 것은 놀라운 도전이며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평범한 한국의 부모세대이다. 생각해보니 우리 세대의 많은 책임중에서 다음 세대들에게 직업의 귀천을 가르치고 세상을 편협하게 사는 법을 가르친 것이 가장 으뜸가는 잘못이라는 생각을 여기 아프리카에서 알게 되었다. 탄자니아의 삶의 가치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직업적 귀천을 가르쳐 그 차별을 강요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 탄자니아에서도 세월호처럼 배가 침몰하여 600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일이 있었다. 이 배는 너무 노후하여 더 이상 운행할 지경에 이르지 못해 침몰했다. 한국의 세월호는 과적을 위해 불법으로 개조하고, 이익을 위해 위험하게 운항하도록 하여 침몰했다. 이것을 비교해보면 가난함보다 못한 것이 분명이 우리에게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아프리카는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한국에 팽배해 있다. 온갖 질병과 범죄와 전쟁으로 얼룩진 나라라는 인식으로 아프리카를 차별하는 한국인들조차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을 같은 민족인 한국인이 무시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물론, 아프리카에도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나라의 사례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하거나 놀라운 수치가 아니라는 것도 한국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 J씨가 탄자니아에 다녀간 적이 있었다. 당시 경비행기를 같이 타고 세렝게티 등을 관광할 기회가 있었는데 경비행기를 타는 외국인의 반응과 한국인의 반응이 상당히 다른 것에 놀랐다. 한국인은 경비행기 운항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계심을 먼저 드러내지만, 외국인은 창공의 자유로움과 바라보게 될 경이로운 풍경을 먼저 이야기한다.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이처럼 경비행기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에 버금하다는 사실이 한국 청년들의 아프리카 진출을 막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나와 같은 어른들이 이를 방조하거나 조장한 것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해외 동포사회에서 성공담이란 별다른 게 아니다. 해외동포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정착한 나라의 문화와 습성을 배우고, 그 사람들과 시간을 가지고 진지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한인 사회에서는 습관적으로 외국에서의 성공에만 집착하는 방법을 찾다보니, 한국에서처럼 줄을 찾아가고, 뒷배를 찾아내서 무언가를 빨리 이루려하는 노력을 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서두르지 않으며 신용을 쌓다보면 성공은 반드시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은 외국에서 사는 모든 한인들이 배워야 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첫 번째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라는 것이 지식만을 전승하는 쪽으로 편향되어 있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다. 역사와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은 사회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공부해야 하는데, 한국적 교육으로 인해 세계인으로 나가는 일이 더디게 될 것이다. 사람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일은 스스로에게도 힘들고 버거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나눔을 주는 것이 행복해져야 하는데 경쟁을 선호하다 보니, 아이들의 사고가 세상을 위한 가치관에 중심을 두지 못하게 되는 것이란 생각에 이르게 된다. 목표에 집중하는 삶이 행복해지지 않다면, 저 아프리카의 가난한 탄자니아에 흑인들에게서 느끼는 행복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이 곳의 모든 한인들의 한결같은 바람인 것이다.

최근 나는 탄자니아를 비롯하여 케냐 등 아프리카 등지에서 170억원의 계약을 수주했다. 한국 업체를 통해 우선 30억원 물량을 납품했다. 나머지 계약분을 납품해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한국업체로부터 2011년 9월에 납품된 샘플이 잘못 보내졌던 것이다. 게다가 한국 본사는 미국회사에 팔려나가게 된 것이다. 이 업체를 인수한 미국회사는 한국업체와 비슷한 진단시약을 만드는 회사였기 때문에 원래 납품했던 시약을 유사한 다른 시약으로 제공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로써 나는 또 한번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탄자니아의 고급관료들은 원조를 받는 나라이기 때문에 강대국의 불법 등에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강대국 국민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조금씩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는다. 나의 장점은 오랜 시간동안 단련된 명확한 업무 능력에 있다고 자부한다. 분명한 계약서와 명확한 사무 정리는 아프리카에서 스스로의 사업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무기이다. 최근에 탄자니아로부터 다른 시약으로 대체하는 것을 허가받아 겨우 나머지 계약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오랜 기다림에서 얻는 것은 정확하고 분명한 정리와 확실한 믿음이다. 아프리카 지인들은 중국 물건의 불량함을 지적한다. 샤워를 하는 중에 급수되는 물이 일정하지 않는 등의 불량품을 보면 반드시 중국 제품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찾는 아프리카인들에게 나는 “저급하게 만들어서 납품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믿음을 주고자 했다.

이제 한국은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나라다. 탄자니아는 중국과 미국으로 많은 관료와 기술자들을 보내서 배우고자 한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틈틈이 소개하고 있다. 내가 그들을 초대하고 한국에 자주 부르는 것은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과 우리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서로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 탄자니아는 세렝게티대평원으로 유명하다

 

▲ 세렝케티대평원의 사자들
▲ 탄자니아의 전사들
▲ 응고롱고로분지의 호수는 하마의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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