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외개척기⑨] 심현섭 쿠웨이트한인회장 "쿠웨이트국영정유회사(KNPC)에 38년 6개월 근무"
[나의 해외개척기⑨] 심현섭 쿠웨이트한인회장 "쿠웨이트국영정유회사(KNPC)에 38년 6개월 근무"
  • 심현섭 쿠웨이트한인회장
  • 승인 2015.09.13 15: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4년 정년퇴임해 올부터는 '참존화장품'으로 중동시장 개척
▲ 심현섭 쿠웨이트한인회장

쿠웨이트 면적은 경상북도보다 조금 작다. 인구는 350만 명이나 이중 70%는 외국인으로 자국민은 100만 명 정도이다. 작은 나라이지만 1인당 GDP는 4만5천 달러로 우리보다 두 배 가깝게 높다. 통계상으로는 세계에서 20위권이지만 실제로는 세계 최고 부자 나라 중의 하나이다.

쿠웨이트 부의 원천은 석유다. 석유 채굴은 1936년에 시작됐고 1938년에는 쿠웨이트가 석유 위에 떠 있는 지대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석유 채굴이 중단됐지만, 전쟁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석유를 생산하면서 쿠웨이트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향상됐다. 석유로 부유해지면서 보건, 교육과 일반 생활의 질도 급속히 향상됐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61년 6월 19일이었다.

내가 쿠웨이트로 간 것은 1977년 2월이었다. 30살 때로, 대학을 졸업하고 호남비료에서 2년 일하고 경인에너지에서 5년간 근무한 뒤였다. 호남비료는 충주비료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비료공장으로, 외국자본 없이 순수 국내 자본으로 세워진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시발점이었다. 경인에너지는 현재 SK인천석유화학으로 바뀌었으나 지금도 인천 사람들은 경인에너지라고 부른다.

좋은 회사에 잘 다니고 있었는데 굳이 중동으로 간 것은 역시 급료였다. 당시 경인에너지에서 월급을 17만원 받았는데, 쿠웨이트국영정유회사(KNPC)는 내게 50만원을 제시했다. 월급이 3배로 뛴 것이다.
나는 해외근무를 위해 해외개발공사에 일찍 등록해놓았다. 처음에는 미국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쿠웨이트석유공사 인사팀과 기술자 6명이 한국에서 인터뷰를 한다기에 응시한 것이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는데 대학 때 실무영어(technical english)를 익힌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들은 내가 경인에너지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1976년 5월에 인터뷰하고 10월에 고용허가가 떨어졌다. 그리고 이듬해 2월에 쿠웨이트로 건너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쿠웨이트국영정유회사에서 내가 처음 맡은 일은 화공 엔지니어였다. 그곳에서 기술직으로는 최고위직인 멘토링 엔지니어에 이르기까지 38년 6개월간 일하고 2014년에 정년퇴직했다. 35년 근속상도 받았다.

KNPC는 직원수가 7천명에 이르는 쿠웨이트 제1의 회사다. 쿠웨이트의 주 수입원은 석유로 원유 수출이 60%, 원유 가공수출이 40%인데, KNPC는 원유가공을 하는 회사다. 석유 완제품을 만들어 중동이나 아프리카로 수출하는 것이다. 원유수출을 맡고 있는 곳은 쿠웨이트석유회사(KOC)로, 이 두 회사가 쿠웨이트 경제의 축이다.

쿠웨이트의 수도는 쿠웨이트시티다. 1년 평균 기온이 섭씨 46도로 세계에서 가장 더운 도시 중의 하나다. 4월부터 10월까지는 낮에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이고, 6∼8월에는 섭씨 50도가 기본이다. 요즘에야 에어컨이 있어서 건물 안에 들어가 있으면 더위를 잘 못 느끼지만 초기에는 잠시 세워둔 차의 시동을 걸려다 운전대에 손을 데기도 했다.

중동의 이미지는 지금도 덥고 불편하다는 인식이 많다. 음식과 문화, 종교와 관습이 달라 불편할 수 있다.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견디기 어렵다. 오래 살려면 동화해야 하고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쿠웨이트는 사랑방 문화가 발달돼 있다. 우리는 사람을 음식점이나 커피숍에서 만나지만 거기서는 누구네 집 사랑방에서 만난다. 사랑방에서 인사하고 사람을 소개받고 정보를 교환한다. 이렇게 인맥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슬람에는 라마단(Ramadān)이라는 고행 시기가 있다.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가르친 신성한 달로, 이슬람교도는 이 기간 일출에서 일몰까지 의무적으로 금식하고, 날마다 5번의 기도를 드린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뿐만 아니라 담배, 물, 성관계도 금한다. 식사는 저녁 예배(maghrib)를 마친 다음에 하고, 밤늦은 시간에는 좀 더 성대한 식사를 한다. 그런데 이 기간에 사랑방을 찾아주면 자신을 위로해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굉장히 고마워한다.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면 형식적인 사교 모임보다 사랑방 모임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처음 내가 맡은 일은 기계 체크였다. 공정관리이다 보니 기계만 쳐다볼 뿐 사람 만날 일이 없었다. 사람과의 대화를 하고 싶어 산업안전환경 담당으로 부서를 옮겼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어드바이저(advisor)였다. “이건 이렇게 해봅시다.” “이렇게 하면 이익이 날 것 같은데요.” 등의 말을 달고 살았다. 사람을 만나다보니 운영 지침서도 만들게 됐다. 인간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결코 일이 쉽지 않아, 나는 사람 만나는 일에 더 열중했다.

그 무렵 산업 현장에도 환경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제품이 환경에 유해하지 않은가, 인체에는 해가 없는가 등을 검토해야 했다. 국제공인(ISO)을 받아야 했고, 유엔의 기준치를 만족시켜야 했다. 모두 돈이 드는 일이나 다행히 쿠웨이트는 부자 나라여서 돈은 문제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등은 모두 석유 부국이다. 일을 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쿠웨이트는 세금이 없다. 의료비는 과거 무료였으나 지금은 실비만 받는다. 자국민은 교육비도 전액 무료다. 건조한 기후여서 잔 질병이 없다. 콜레라 등 수인성 전염병이 없고, 모기도 없다. 물웅덩이가 없으니 모기가 있을 리 없다. 누구나 최소한의 생활을 하므로 좀도둑 등 잡범도 없다. 이곳 역시 회교 국가여서 율법을 엄격하게 시행한다. 범죄를 저지르면 가혹한 형을 각오해야 한다.

산유국답게 기름값은 1L에 200원이다. 농수산물 가격도 싸다. 한국에서는 1만원으로 장을 보면 과일 몇 개, 채소 한두 단으로 끝이지만 여기선 각종 과일과 채소를 수북하게 살 수 있다. 의료 서비스도 좋다. 부부 두 사람의 보험료가 1년에 100디나르(약 37만5000원) 정도인데 이 돈만 내면 사실상 무상 의료다. 내가 잘 아는 분의 부인이 몇 년 전 유방암과 담석증 수술을 받았는데 추가 비용이 전혀 없었고 경과도 훌륭했다. 술과 유흥을 엄격히 금지하는 아랍문화의 특성상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달리 이곳은 여자들이 차도르를 뒤집어쓰지 않는다. 아라비아반도에서 사우디를 제외한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은 모두 차도르를 쓰지 않는다. 이란과 달리 여자들이 축구경기를 구경해도 상관없다.

쿠웨이트 거주 한인은 약 1,500명 정도다. 엔지니어링 계통이 많고, 건설 관련 요식업(케이터링)이나 자재 공급 등을 하는 사람들이다. 단순 노무자는 거의 없다. 과거 1970~80년대 중동 붐 당시는 쿠웨이트에만 한국인들이 1만5천명에 이르렀다. 당시는 한국인들이 노무자로 많이 일했지만, 지금은 엔지니어들만 파견되기 때문이다. 즉 한국기업들이 과거에는 빌딩이나 도로 등을 건설했으나 지금은 공장플랜트와 같은 고급 프로젝트만 수행한다. 화공, 기계, 전기, 기기제어 등의 인력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990년 8월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쿠웨이트가 국경에 유전을 설치하자 이라크군은 1990년 8월 2일 새벽 2시에 쿠웨이트 국경을 돌파, 침공을 개시해 단숨에 쿠웨이트 시를 점령했다.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시를 점령하자 자베르 3세 국왕과 왕족들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고, 8월8일 이라크는 쿠웨이트 합병을 선언했다. 한편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을 무효로 선언했으며 이라크산 석유 수입과 대 이라크 교역 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했다.

당시 이라크와의 갈등을 흔한 주변국과의 분쟁 정도로 생각하고 전쟁은 생각치도 않던 쿠웨이트군은 전쟁준비가 안 돼 있었던 데다 급작스런 기습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했다. 물론 전면전 상황이라는 사실을 파악해도 승리할 수는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3만에 달하는 쿠웨이트군은 곳곳에 분산된 채 각개 격파당하고 항복했다. 전쟁은 일방적으로 끝났고 쿠웨이트 거주 외국인은 모두 억류됐다. 그런데 한국인은 8월17일 출국허가를 받았다. 이라크 바그다드를 거쳐 요르단으로 철수할 수 있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반년 뒤인 1991년 2월19일부터 26일까지 미군의 주도하에 진행된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걸프전은 1주일 만에 끝났다. 쿠웨이트는 예전의 나라로 돌아왔고, 나는 1991년 10월부터 다시 쿠웨이트에서 일하게 됐다.

쿠웨이트의 공식 언어는 아랍어다. 현재 아랍어 사용국은 22개국으로 아라비아반도 전체와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에서 쓰인다. 이들 아랍권은 말이 같고 종교가 같다. 한 문화권이다.
아랍글자는 꼬불꼬불 어지럽게 생겼지만, 보면 볼수록 예쁘다. 배우면 크게 어렵지 않다. 의지만 있으면 회화도 몇 달 내에 배울 수 있다. 말을 배워야 이들과 교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아랍어와 영어를 쓸 수 있어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걸프전 이후 미국 백텔사가 복구사업을 맡았는데, 그들은 내가 아랍어를 쓰는 걸 보고 굉장히 부러워했다.

아랍 국가이다 보니 밤 문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외국인도 공개된 장소에서는 음주할 수 없다. 공항에서 마약과 술은 엄격하게 체크한다. 그러나 사회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은 이게 오히려 편할 수 있다. 요즘 동남아시아에서 말레이시아가 은퇴 후 거주지로 각광받는 것도 밤 문화가 없고 음주가 까다로운 점이 한 몫을 한다고 한다.

아랍 국가는 놀 게 없어 심심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있다. 이곳도 놀러갈 데는 많다. 나름대로 이슬람 유적과 유목민 유적 등 유적지가 많다. 파일라카(Failaka)섬은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 정복을 위해 머물던 대표적인 유적지다. 그리스인들은 파일라카에 두 세기 동안 살았는데 이 섬의 걸작은 신전이다. 쿠웨이트시티에서 북동쪽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시내 남쪽에 있는 아라비아 걸프 해협에서 매일 출발하는 배로 쉽게 갈 수 있다.

쿠웨이트 바다는 청정해역이어서 해양레저가 발달돼 있다. 요트, 바다낚시, 스킨스쿠버, 진주잡이 관람 등을 할 수 있다. 해산물이 좋고 가격도 싸다. 다만 생선회는 한국인만 먹고 현지인은 먹지 않는다. 유전지대와 석유산업 시설도 볼거리다. 1940년대~50년대의 쿠웨이트 원유 산업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진 알아마디(Al-Ahmadi)는 대표적인 석유 전시관이다. 알아마디는 당시의 왕인 아메드 수장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이 시설의 대부분은 쿠웨이트석유회사(KOC)의 재산이다. 그 외 낙타 방목장과 낙타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재미있다. 한국인들은 주말에 골프를 많이 즐긴다. 모래밭에서 치는 ‘사막골프’가 아니라 잔디에서 치는 정식 골프다. 관개시설이 잘 돼 있어 골프장에 나무가 울창하다. 18홀 그린피는 10만 원 정도.

나는 2남 3녀를 두었다. 아이들 모두 현지 외국인학교에서 아랍어와 영어를 배웠고, 한국으로 유학을 와 우리말도 능통하다. 딸 셋은 모두 한국에 있다가 시집을 갔다. 큰딸은 지금 중국에서 살고 있고, 둘째딸은 삼성SDS에서 싱가포르로 파견 나가 있다. 큰아들은 현대자동차와 제일기획을 거쳐 자기 사업을 구상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쿠웨이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999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 졸업 후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을 거쳐 현재는 중국 게임회사인 텐센트코리아에서 투자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둘째 아들 얘기는 서울에서 발행되는 세계한인사회 전문매체 월드코리안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쿠웨이트에는 나와 집사람 둘뿐이다.

2015년 4월 초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 방문 후 “대한민국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느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고까지 말하며 ‘제2의 중동 붐’을 말하자 오히려 청년들은 ‘니(네)가 가라, 중동’이란 말을 유행시키며 냉소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 구입을 포기한 소위 ‘5포 세대’에게 뜬금없는 청년고용정책을 내놓아 화를 돋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동은 기회의 땅일까.

중동은 내가 처음 온 1970년대에도, 지금도 변함없는 기회의 땅이다. 당장 쿠웨이트만 봐도 최근 몇 년간 신도시, 정유공장, 철도, 지하철 건설 등 대형 공사가 속속 발주됐고, 앞으로도 발주될 예정이다. 공사 규모도 기본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 이상이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한국인과 한국 건설업체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다. ‘불타는 한여름에 움직이는 건 한국인과 도마뱀뿐’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현재 쿠웨이트는 총 140억 달러에 달하는 쿠웨이트 신규 정유공장 건설 프로젝트(New Refinery Project·NRP)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쿠웨이트 NRP 사업은 전체 130억∼14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공사로 총 5개의 패키지로 나눠 발주가 이뤄진다. 이 가운데 올해 1월 발주된 '패키지5'에 현대건설·SK건설이 이탈리아 사이펨과 함께 참여한 컨소시엄이 최저 가격을 써내 사실상 수주가 유력하다. 현재 쿠웨이트 의회 승인 절차를 밟고 있으며 조만간 우선협상대상자로 계약체결을 앞두고 있다. 공사규모는 15억 달러 선이다.

정유공장의 주요 핵심시설이 밀집하는 패키지 1∼3은 공사규모가 약 100억 달러에 이르며, 컨소시엄 당 최대 2개 패키지로 입찰 참여가 제한된다. 전체 10개 컨소시엄 가운데 5개 컨소시엄이 사전적격심사(PQ)를 통과해 현재 최종 입찰을 앞두고 있다. 국내 건설사는 패키지 5 수주가 유력한 현대건설, SK건설을 비롯해 대림산업, 대우건설, GS건설, 삼성엔지니어링, 한화건설, 현대중공업 등 8개 건설사가 해외 엔지니어링 업체 등과 짝을 이뤄 5개 컨소시엄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어떤 컨소시엄이 공사를 따내더라도 국내 업체들이 공사를 수주하게 된다.

정부와 건설업계는 전체 130억∼140억 달러 가운데 50∼70%, 최소 70억∼90억 달러 규모의 지분을 국내 건설사들이 수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올해 발주될 것으로 예상되는 단일 해외건설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사실 쿠웨이트 NRP 사업은 지난 2008년 국내 건설사들이 전체 패키지를 '싹쓸이' 수주했다가 쿠웨이트 의회의 문제 제기로 수주가 취소됐던 아픈 과거가 있다. 우리 정부와 건설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쿠웨이트 순방으로 수주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화건설과 현대중공업,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건설 사업자로 선정된 쿠웨이트 국영 정유회사 알 주르 4차 정유공장도 빅 프로젝트다. 총 51억 달러 규모의 공사로 한국인의 쿠웨이트 진출이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이곳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쿠웨이트 건설현장에서 요즘 한국인들은 대부분 감독이나 행정 일을 한다. 업무 여건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졌다. 한국에 대한 인식도 매우 좋다. 코리안이라고 하면 모두 환대한다. 이 곳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말고 일단 한번 나와서 직접 판단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현재 쿠웨이트에서는 쿠웨이트시티에서 수비아 지역을 연결하는 36.14km의 해상교량을 건설하는 ‘쿠웨이트 코즈웨이 해상교량 공사’가 한창이다. 세계에서 세 번째 긴 다리로 쿠웨이트 공공사업성에서 발주해 현대건설과 현지 업체가 공동으로 수주했다. 26억 달러 규모의 큰 공사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에서 200명이 투입됐다고 하는데 나중에 협력업체까지 오면 더 많아질 것이다.

나는 지난 3월 쿠웨이트의 한글학교 학생, 한인청소년 및 학부모 등 총 35명으로 관람단을 구성해 ‘쿠웨이트 코즈웨이 해상교량 공사’의 홍보관을 관람했다. 우리 일행은 먼저 현대건설 관계자의 설명을 들은 뒤 홍보 영화를 시청하고 뒤이어 홍보관에 설치된 두 대의 망원경을 통해 공사 현장을 지켜봤다. 한국의 뛰어난 건설 기술력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현재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참존화장품 중동 아프리카 총괄본부장을 맡아 한국에서 교육도 받았다. 작년에 정년을 맞으면서 새 일을 찾던 중 한국인의 기존사업과 겹치지 않는 일을 찾다가 화장품사업에 눈을 돌렸다. 한국의 화장품을 들여오면 잘 될 것 같았다. 나는 호적상으로는 1948년생이지만, 원래 나이는 1946년생이다. 올해 70이다. 참존화장품 교육을 갔더니 한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그 나이에 어떻게 새 일을 찾느냐며 놀라워했다. 장군으로 예편한 친구가 있는데, 동기들이 다 놀고 있다며 일자리가 없다고 한탄했다. 새 일자리를 찾아보았는지 궁금하다.

예전에는 아랍권 사람들이 한국에 옷을 사러 많이 갔다. 요즘은 한국의 화장품이 인기다. 한국 화장품은 동물성 기름을 안 쓰고 식물성(허벌) 기름을 쓴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랍인들은 육식을 많이 하고 채소를 적게 먹어 주름살이 많다. 미백(美白)에 관심이 많아 한국 화장품이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핵협상을 타결하고 이란에 대한 금수조치를 해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회가 되면 화장품 사업을 이란으로 펼칠 생각도 갖고 있다. 쿠웨이트에서는 모발이식 비용이 한 올 당 2,800원 한다. 이란에서는 한 올 당 240원이다. 이란이 기회의 나라가 될 수 있다.

나는 2011년 2월부터 쿠웨이트 한인회장을 맡고 있다. 회장 임기는 2년인데 3번째 연임이다. 한인회장 선출은 경선이지만 막판에는 추대 형식으로 정리한다. 한인회의 목적은 한인회 정관에 회원 상호간의 상부상조와 함께 거주 국민들과의 유대강화라고 돼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한인회 목적은 좀 더 구체적이다. 우선 한인의 생명과 재산보호가 첫째다. 이를 위해서는 한인들의 동향파악이 중요하다. 둘째는 한국문화를 현지에 이해시키는 것이다. 문화교류에 힘써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나는 한인회가 현지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현지인과 함께 자선음악회를 연 적이 있다. 수익금을 어디에 쓸까를 놓고 왈가왈부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보내자, 아프리카에 보내자 등등의 의견이 쏟아졌다. 나는 이 돈을 이 지역에 쓰자고 말했다. 쿠웨이트 사회에 공헌해야 한인들의 장래가 보장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는 수익금을 쿠웨이트 부인유방암센터에 기부했다. 기부금 전달식 날 한국 학생을 데리고 간다고 했더니, 현지 문화청장이 자기네 나라 학생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나는 이런 일이 학생들에게 분명히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로 인해 쿠웨이트와 우리 사이가 퍽 가까워졌다고 자부한다.

쿠웨이트에서는 웬만한 거리도 자동차로 이동한다. 날씨가 더워 걸어 다니는 것은 힘들다. 자동차가 많다보니 운전문화가 다소 거칠다. 그래서 교민회 주관으로 모범운전 캠페인을 5일간 벌인 적이 있다. 이 행사 후 쿠웨이트 교통국에서 한국의 운전면허와 쿠웨이트 운전면허를 상호 인정하는 양국 협정을 제안했고, 곧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년전 쿠웨이트 총리는 청와대를 예방한 자리에서 한국인들은 법을 잘 지켜 참 좋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내친 김에 학교 앞 등하교 봉사를 실시할 생각이다. 어린이 등하교를 안전하게 돕는 일 만큼 귀한 일이 있겠는가. 이 나라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좋아할 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2011년과 2012년에는 교민들이 헌혈을 한 적이 있는데, 현지 방송에서 뉴스로 다룰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다. 현지사회에 대한 기여도 있지만, 큰 사고가 났을 때 우리가 도움을 받자는 뜻도 있다. 긴급하게 우리 국민이 수혈 받을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어디서 도움을 받겠는가?

나는 쿠웨이트인들과 교류를 위해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자선음악회뿐 아니라 쿠웨이트 기관들과 협조하여 다양한 캠페인을 개최할 예정이다. 교통안전, 금연, 해변 청소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행사에는 한인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쿠웨이트인과 한인들의 보다 활발한 교류를 위해 한국문화회관이 필요하다. 현재 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기금조성 방안을 결정하는 등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쿠웨이트시티 시가지

 

▲ 이집트를 찾아서
▲ 맨 오른쪽이 심현섭 회장 부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