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볼로네세] 체나꼴로, 과학과 예술의 만남
[볼로냐, 볼로네세] 체나꼴로, 과학과 예술의 만남
  • 한도현(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 승인 2015.09.3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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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그림 하나를 보는 시간이다. 예약된 날 싼따 델레 그라찌에(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에 도착해서 입장권을 받고 대기실에서 1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관람객들이 바로 입장하면 전시실 온도를 변화시켜 그림의 손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약→입장권 교환→입장대기실→전시실로의 이동과정은 ‘성-속’의 경계이동을 체험하는 종교적 프로세스 같다. ‘최후의 만찬’ 앞에서 모든 관람객은 미술 전문가가 되어 숨죽이면서 뚫어지게 그림을 본다. 15분 내에 관람객들은 무엇을 보는 걸까?

“그리스도는 모든 운동의 중심, 생명의 중심이다.” 이 말은 마라니(Pietro C. Marani)가 그의 2009년 책,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한 말이다. 최후의 만찬 즉 체나꼴로(Cenacolo)는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1495년~1498년에 그린 그림이다. 체나꼴로는 그리스도 양 옆으로 6명씩 12명의 제자들을 나란히 배치하고 있다.

그림 속의 제자들은 만찬장의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소란스런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스승의 죽음을 앞둔 최후의 만찬이라면 분위기가 엄숙하든가 비장함이 묻어 나와야 할 것이다.

성찬식에서 자주 인용되는 성경(고린도 전서 12장)에서는 최후의 만찬이 엄숙하고 비장하다. 제자들에게 떡을 나눠 주고, 포도주를 나눠 주면서 이것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식사라고 예수가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는 모습도 아니고 함께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아닌 다른 순간을 포착했다. 그 순간이란 마지막 저녁 식사의 식탁에서 예수가 너무 놀라운 말을 던진 순간이다.

“오늘 밤 너희 가운데 한 명이 (나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말 그대로 폭탄선언이다. 3년 간 동고동락한 동지들 가운데 1명이 배반하여 스승을 팔아넘긴다니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제자가 수 천, 수 백 명 되는 것도 아니고 아닌 달랑 12명인데 그 가운데 한 명! 그 사람이 바로 이 자리에 같이 식사하고 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다빈치는 제자들의 놀란 모습, 소용돌이치는 장내 모습을 스냅 샷 찍듯이 정확히 묘사하고자 했다. “접니까?, 저는 아니죠?”라고 외쳐대는 제자들의 목소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제자들의 황급한 몸놀림으로 식사자리에 대소동이 일어났다.

연두색을 입은 대 야고보의 격노한 모습은 그 배반자를 내 손으로 처치하겠다는 모습이다. 행동파의 험악한 얼굴이다. 파란옷의 베드로는 너무 놀란 나머지 직접 묻지 못하고 예수 옆에 있는 요한을 끌어당기며 다급하게 “누군지 선생님께 확실히 여쭤봐”라고 주문하는 것 같다. 베드로의 손에는 예리한 식칼도 들려있다. 대 야고보 뒤에서 예수를 바라보는 필립은 놀람과 비탄에 사로잡혀 있다. 맨 왼쪽의 바로톨로뮤는 잘 듣지 못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나운 매의 눈으로 예수 쪽을 바라본다.

언제든지 선생님 곁으로 달려갈 태세다. 이 그림에 나타난 13명은 모두 표정과 자세가 다르다. 다빈치는 13명의 심리상태를 각각의 자세와 표정 속에서 세밀히 묘사했다. 이 그림은 다른 화가들이 그린 최후의 만찬과는 다르다.


다빈치는 성찬식이라는 신앙의 메시지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그는 가장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자기의 예술이론과 과학을 이 그림 속에 집대성했다. 해부학, 기계역학, 골상학, 광학 등 여러 분야에서 자기가 쌓은 지식을 이 그림 속에 녹여냈다.

마라니는 그의 책에서 다빈치의 자연과학과 신체연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두골, 손, 발, 몸짓, 얼굴, 빛, 그림자 등을 인간의 감정 표현과 연결시키고자 한 다빈치의 노트들이 윈즈 궁 왕립도서관에 있다고 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다빈치는 같은 외부자극이라도 사람의 나이와 체중에 따라 다른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생리학적 이론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예술과 과학의 종합화를 실천한 체나꼴로에서 르네상스 인간의 전형인 다빈치의 모습을 본다.

필자소개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볼로냐 대학교 정치학과 교환교수, 코이카 지구촌 새마을운동 전문위원, Korean Histories 편집위원(Leiden Univ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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