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포틀랜드에 가다-1
[Essay Garden] 포틀랜드에 가다-1
  • 최미자<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5.10.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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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전에 최근 오레곤 주 로즈버그(Roseburg, Oregon)의 대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으로 안타깝게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빕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가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인간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거나 친척의 일, 또는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핑계 삼아 가끔은 집을 떠난다.

미국에서 평생을 의학연구에 기여한 나의 큰오빠가 드디어 은퇴하여 포틀랜드 윌라메트(Willamette) 강가에 정착하였기에 방문을 가게 됐다. 모처럼 영어하는 딸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 마음도 든든했고 처음 타보는 알라스카 비행기도 빈틈없이 승객으로 꽉 차 있었지만 소문처럼 좌석은 넓고 좋았다.

두 어 시간 직행으로 포틀랜드 공항에 도착하니 멀리 창 너머로 콜롬비아(Columbia) 강가에 병풍처럼 숲이 보여 이색적인 풍경이다. 공항대합실에는 커다란 뻐꾸기시계가 우뚝 서있다. 주위에 남녀 유학생인 듯 한국말 소리가 들려 나는 반가움에 인사말을 건넸다. 오빠 댁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며 나는 정수기가 필요 없는 포틀랜드의 신선한 물맛에 홀딱 반해버렸다.

또 부엌의 수도꼭지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지구가 병 들어감을 걱정하며 남가주에서 물을 엄청 절약하며 날마다 살아가는 나였기에 당장 오리건 주로 이사 오고 싶은 마음도 일어났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도 캘리포니아처럼 가뭄이란다. 그래서인지 공항의 화장실 손잡이에는 ‘물 절약’이란 딱지가 붙어있었다.

다음날 한인마켓에 들렸다. 비버톤(Beaverton Hillsdale Hwy) 길에는 간간이 한국어 간판들이 반갑게 보였다. 포틀랜드 인근의 작은 시였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두 마켓이 있는데, ‘거북이’ 라는 한인 마켓의 이름이 매혹적이다.

나는 초록빛갈의 야채 진열대로만 눈이 갔지만, 오빠는 발길을 재촉하니 잠시 구경했다. 풍성하게 보이는 아욱을 사서 된장국을 끓였다. 1960년대 유학 온 오빠는 52년 만에 맛보는 아욱국이란다. 나는 이런 말을 듣는 기쁨에 신이 나서 항상 요리하기를 좋아한다. 싱싱한 열무로는 물김치를 만들었는데, 날씨 때문에 떠날 무렵에야 맛이 들어 예정대로 다 먹지 못했기에 퍽 아쉬웠다.

시내구경을 나갔다. 샌디에고 시에서 보는 텅텅 비어있는 버스와 달리 사람들이 붐비는 아담한 전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도시가 참 포근하고 편리해 보였다.


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나의 미국인 올케는 자전거 애호가를 보호하는 자동차 번호판까지 설치를 했다. 전차를 타고 가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한 분 올라왔다. 딸은 한국에서처럼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양보했다.

우린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었고 나는 포틀랜드에 대하여 물었다. 중앙도서관 앞에 내려 길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 우린 바로 앞에 보이는 찻집으로 이동했다. 미국식으로 각자 차를 사서 마시며 앤 아주머니가 포틀랜드에서 사는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뉴저지의 토박이였다는 앤(Anne)은 남편 사별 후에 딸과 가까이 살려고 이사 온지 8년째란다. 그녀는 동성연애자인 딸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포틀랜드 생활이 만족하다고 했다. 오래 전 직장일로 한국의 제주도에도 다녀왔다는 그녀에게 한국의 역사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조금 알지만 한일관계의 질문에는 서로 이해하며 살아야 되지 않느냐며 미국의 남북전쟁을 예로 들었다. 앤은 무엇보다도 포틀랜드에 사는 이유는 시민이 직접 주민회의에 참여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장차 일어날지도 모르는 지진에 대비하는 자원봉사자 회의에 참석하려던 중이라고 말했다. 솔직하고 상냥한 성품의 앤 아주머니와의 만남은 미국의 투철한 시민 정신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주말에는 마침 중심가에 울창한 고목으로 둘러싸인 넓은 공원이 남북으로 두 개가 있는데, 그곳에서 특별한 예술 박람회(Art Fair)가 열리기에 가보았다. 우기에 접어들었지만 며칠 동안은 비교적 날씨가 좋았다.

그런데 전국에서 모여든 멋진 예술가들이 작은 천막 속에서 자신의 실력을 알리려는데, 부슬비가 오락가락 뿌리고 있었다. 우리는 놋쇠장식물을 만드는 아저씨들의 공방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 질문에 성심껏 답해주던 Greg와 John. 마음에 드는 꽃병 값을 물으니 삼백 달러인데 여기서는 전시만 하고 팔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을 찍으려니 아저씨는 내 머리 위에 아기 주먹만 한 놋쇠 모자 공예품을 얹어놓아 우리는 함께 깔깔 웃었다.

기발하고 섬세한 유리 공예품들은 얼마나 고운지. 딸은 우주의 은하계를 느끼게 하는 80 달러나 되는 작은 구슬 공예품을 사고 싶어 한참 만지작거렸다. 사나운 폭풍만 찾아다니며 전국을 누비는 사진작가(David Mayhew)도 만났다.


또한, 사진을 찍은 듯 연필로 섬세하게 자연을 그린 화가(David Bjurstrom)의 그림은 제법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그는 휴스턴에서 왔단다. 무한한 창의력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작품을 보며 나는 뛰어난 예술가들의 두뇌가 궁금해진다. 이 박람회는 참석수가 제한되어 있어 선발되기까지 행운도 있어야 참여한다고 했다.

여름옷만 입고 온 나는 혹시나 하고 기웃거리다 수공예로 염색하여 만들었다는 아름다운 실크 스카프를 만났다. 독일 이민자 부부(Birgit Moenig Designs)인데 몇 개 샀더니 남편이 만들었다는 금속 공예품을 내 딸에게 선물로 주었다.

우리는 마음이 통하는 선한 사람끼리 이심전심을 느꼈다. 전시회에 갈 때면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예술가들의 용기가 나는 늘 존경스럽다. 가끔은 나도 그들을 격려하고 싶어 큰돈을 내고 작품을 덥석 사줄 수 없으니 쓸쓸한 마음이지만, 고맙게 두 눈만 즐기고 온다.

집에 돌아 와 우리모녀를 환영해준 고마운 나의 올케 언니에게 초록빛 스카프를 선물했다. 포틀랜드에는 판매세금(Sales Tax)이 없다. 남가주에 살며 물건 하나하나에 많은 판매세를 내곤 하는데, 얼마나 신나던지 모른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난 메이시 백화점에 들려 입을 재킷을 구입하며 쇼핑하고 싶었지만, 비행기에 가방이 추가되면 비용을 고객이 내야하니, 그게 그 값이다.

동성애자와 집이 없는 사람들이 함께 거니는 거리는 비교적 평화스럽게 보였다. 마리화나를 파는 가게도 있고 담배 피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있으니, 흡연연기에 약한 우리 모녀는 이점이 매우 불편했다.

최미자의 미주문학서재
http://mijumunhak.net/mi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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